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일본계 이민 2세에서 대통령 됐지만 부패로 끝내 옥살이

입력 : 2018.10.26 03:07

후지모리 前 페루 대통령

반인권·부패 등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12년간 복역하다 지난해 말 사면된 알베르토 후지모리(Fujimori·80) 전 페루 대통령에 대해 페루 대법원이 최근 사면을 취소했어요. 애초에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사면한 게 불법이었다는 이유였어요.

후지모리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집권한 페루 역사상 첫 일본계 대통령이에요. 재임 시절 학살, 납치 같은 반인륜 범죄와 횡령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2010년 페루 대법원이 징역 25년형을 확정했죠. 아메리카 원주민과 혼혈인이 다수인 페루에서 어떻게 아시아계 대통령이 나왔던 걸까요?

◇에스파냐 식민지 된 잉카 제국

페루의 인종 간 대립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아메리카 고대 문명이 있던 16세기로 거슬러 가야 해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기도 하는 안데스 산맥의 요새 도시 마추픽추를 아시나요? 1911년 미국인이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해발고도 약 2400m에 세운 공중도시예요. '안데스의 신비'라고 불리지요. 마추픽추를 세운 잉카 제국은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현재의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 지배하며 번영했어요. 그러다 16세기 에스파냐(현재의 스페인)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지금의 페루 수도인 라마를 세웠어요. 에스파냐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와 남아메리카를 식민 개발했어요. 포토시 은광, 우앙카벨리카 수은광을 개발해 남아메리카의 광물을 에스파냐로 실어 갔죠. 사탕수수나 커피를 경작하려고 원주민들을 착취하기도 했어요.

에스파냐의 식민 통치는 남아메리카를 뼛속까지 바꿔놨어요. 우선 페루 지역의 인종이 다양해졌어요. 에스파냐 사람과 잉카 사람이 결혼해 혼혈인 메스티소(Mestizo)가 태어났지요. 또 천연두 같은 전염병 때문에 원주민 수가 줄자, 에스파냐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사오기 시작했어요.

에스파냐가 지배한 식민 시대를 지나면서 백인과 원주민, 또는 백인과 메스티소 사이에 갈등도 늘고 경제적 격차도 심해졌어요.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과 신생국 페루

백인들의 착취와 학대,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던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19세기 초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어요. 남아메리카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에스파냐계 백인 크리오요(Criollo)들이 독립운동을 이끌었어요.

아르헨티나에서 에스파냐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산 마르틴은 1812년부터 남아메리카 독립을 위해 혁명군을 지휘했어요. 그가 이끄는 혁명군은 에스파냐 정부군을 격파하고 1821년 페루 독립을 선언했어요. 산 마르틴은 '페루의 보호자'라 불리며 페루 군사·정치의 최고 지도자가 됐지요. 그는 원주민의 광산 노동을 금지하고 금·은 수출을 중단시켰어요. 하지만 식민지 시대 기득권층과 마찰이 생기면서, 산 마르틴은 페루를 떠나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독립 후 페루에 바로 평화가 찾아온 건 아니었어요. 인종 간 대립이 아직 남아 있었죠. 특히 안데스 산간지역과 아마존 밀림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 해안 지역에 살고 있던 백인 지배 계층 사이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했어요.

20세기 들어서도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어요. 지도자가 강력한 지배권을 갖는 권위주의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두 체제가 5~12년마다 번갈아 가며 나타났어요.

◇일본계 이민 2세, 페루 대통령이 되다

이렇듯 계층과 인종의 대립이 심한 페루에서 1990년 일본계 페루인이 대통령으로 뽑혔어요. 바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죠. 부유하게 살아가는 백인들 후손과 어렵게 사는 원주민들 후손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아시아계인 후지모리가 제3자라는 입장을 잘 이용했다는 분석이 있어요.
지난해 말 사면된 후지모리(왼쪽 사진) 전 페루 대통령이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고 있어요. 그의 사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1월 페루 리마에서 시위하고 있어요(오른쪽 사진).
지난해 말 사면된 후지모리(왼쪽 사진) 전 페루 대통령이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고 있어요. 그의 사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1월 페루 리마에서 시위하고 있어요(오른쪽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일본인의 이민 2세대인 후지모리는 다인종 국가 페루에서도 소수자에 속했어요. 후지모리는 오히려 이 점을 선거에서 이용해 원주민과 메스티소들의 지지를 받았죠. 그는 "가난한 자의 혁명"을 외치며 민중 편에 섰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이 원주민과 다르다는 점을 열심히 드러냈어요. 사무라이 복장을 한 채 찍은 사진을 선거 운동에 쓰는 식이죠. 기득권층인 백인들에겐 자신은 원주민이나 메스티소와 다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고 해요.

국민은 대통령이 된 후지모리가 사회를 개혁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길 기대했죠. 그러나 후지모리는 독재를 하며 정반대 길을 걸었어요. 후지모리는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명분을 내걸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어요. 부작용으로 빈부 격차가 커져서 후지모리에 반대하는 세력이 힘을 얻었지요.

그러자 후지모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 기능을 정지시켰어요. 1996년엔 자신이 2000년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있도록 장기 집권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어요. 이후에도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면서 정권을 유지하려 했고요. 결국 후지모리는 2000년 3선에 성공했어요. 하지만 취임식 당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어요. 후지모리는 일본으로 도피한 뒤 사임했어요. 2005년 페루로 돌아왔다가 체포됐고, 2010년 비리와 민간인 학살, 인권침해 등의 혐의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어요.

지난해 12월 파블로 쿠친스키 전 페루 대통령이 후지모리를 사면했어요. 하지만 후지모리를 사면한 쿠친스키도 넉 달 뒤 부정부패로 탄핵을 당했어요. 당시 부통령이던 마르틴 비스카라가 지금 페루 대통령이죠. 페루가 양극화를 극복하고 사회 안정을 이루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요? 아직도 페루 민주주의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윤서원·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