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30년 전 냉전 허문 예술… 젊은 작가들과 함께 돌아왔죠

입력 : 2018.10.06 03:07

올림픽 조각 프로젝트-Post 88 展

지금부터 30년 전,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세계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스포츠 잔치가 우리나라에서 열렸어요. 제24회 서울올림픽이죠. 서울올림픽에서는 '손에 손 잡고'라는 주제에 걸맞게 당시 정치적 이념으로 대립하고 있던 나라가 다 같이 참가해 멋진 경쟁을 벌였어요.

사실 그 무렵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세계 전체가 소련(러시아의 옛날 이름)이 이끄는 공산국가와 미국이 이끄는 자유국가로 나뉘어 냉전을 벌이고 있었거든요. 22회 모스크바올림픽 때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는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참가를 거부해 '반쪽 올림픽'이 두 번이나 이어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다음 올림픽이 남북으로 나뉜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었어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그동안 냉랭했던 국가들이 다시 평화롭게 한데 모였거든요.

이를 응원하고자 전 세계 예술인들이 힘을 합쳤어요. 잠실에 올림픽 경기장을 지으면서 근처에 도심 공원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전 세계 유명한 조각가들이 흔쾌히 손을 보탰어요. 정치적으로는 한마음이 아닐지라도, 예술 작품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나란히 또는 마주 볼 수 있으니까요. 이로써 66국 작가 155명의 조각품 200여 점이 모인 세계적 규모의 야외 조각 공원이 탄생했어요.

서울 소마미술관에서는 이때 참여한 조각가들을 기리고, 작품이 지닌 화해 의미를 되새기고자 '올림픽 조각 프로젝트―포스트 88'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내년 2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에요. 전시장에 가면 당시 우리나라 대표로 참가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어요.
작품1 - 백남준, ‘금관’, 2004.
작품1 - 백남준, ‘금관’, 2004. /소마미술관, ‘올림픽 조각 프로젝트-Post 88’展
작품1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작품으로, TV 모니터 여러 대를 이용해 만든 '금관'입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훌륭하게 싸운 선수들에게 이 금관을 씌워주면 어떨까요? 어두운 방에서 TV 화면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고 작품 맨 꼭대기에는 백제 시대 금관 무늬가 보입니다. TV로 대표되는 현대 기술과 백제 금관이라는 우리 전통 예술이 만났다고 할 수 있지요.
작품2 - 정승, ‘Circling Complex’, 2010.
작품2 - 정승, ‘Circling Complex’, 2010.
작품2는 여러 사람이 모여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전거 타는 수많은 선수가 트랙을 빙글빙글 도는 광경을 작은 인형들로 만들었는데요. 일종의 '키네틱(kinetic·운동) 조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키네틱 조각은 여러 방식으로 움직이는 조각품을 말해요. 물이나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전기로 작동하기도 하지요. 때로는 빛을 활용해 움직이는 효과를 내기도 한답니다. 이 작품을 한참 보고 있으면 힘겨운 훈련을 반복하는 선수들의 고통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형들은 어지럽게 돌면서 끝도 보이지 않게 자기와 싸우고 있어요.
작품3 - 박선기, ‘조합체 20170207’, 2017(왼쪽). 작품4 - 이동재, ‘아이콘_김연아’, 2018(오른쪽).
작품3 - 박선기, ‘조합체 20170207’, 2017(왼쪽). 작품4 - 이동재, ‘아이콘_김연아’, 2018(오른쪽).
이번에는 속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설치 작품을 볼까요? 작품3에서는 둥근 것들이 질서 있게 매달려 초록색을 내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탁구공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 차 있는 공 사이를 걸으면 마치 컴퓨터 속에 들어간 듯 특이한 기분을 맛볼 수 있어요. 신비로운 형광 때문에 현실 느낌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공간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지요.

작품4 역시 빛나는 알맹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얼음처럼 투명한 유리구슬 수백 개가 나타내는 얼굴 주인공은 김연아 선수네요. 작가는 올림픽에서 우리에게 감격을 안겨 주었던 스타들의 얼굴을 때로는 쌀알로, 때로는 유리구슬로 점을 찍듯 만들었어요. 어쩌면 이 점들은 빛나는 영광을 위해 선수들이 하루하루 흘린 땀방울인지도 모릅니다.

88올림픽 주제곡 가사 중에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노래가 전 세계인 가슴속에 울려 퍼졌던 걸까요. 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에는 독일을 둘로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희소식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와 북한 사이엔 아직 벽이 남아 있지요.

그런 정치적 벽 말고도 세상에는 넘어서야 할 벽이 참 많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미움과 의심의 벽, 편견의 벽이 그 예지요. 30년 전에도 그랬듯. 예술은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