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헤어진 지 69년… 양안, 정통성 놓고 여전히 대립중이죠

입력 : 2018.10.05 03:07

중화인민공화국 탄생(1949)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날로 거세지고 있어요. 무역을 둘러싼 갈등에서 시작해 이제는 군사 분야에서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요. 특히 최근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수출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어요. 중국은 왜 대만에 무기를 파는 데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답은 역사 속에 있어요.

◇중국 국민당·공산당의 1차 합작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을 무렵, 중국에서는 아시아 최초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등장해요. 300년 가까이 이어지던 청나라가 멸망하고 국민이 주권을 가진 근대국가가 들어선 것이지요. 이 사건을 신해혁명(1911)이라고 합니다. 혁명 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중화민국을 지키려 노력한 정당이 중국 국민당입니다.

하지만 중화민국이 등장한 뒤에도, '군벌'이라고 하는 독립 무장 세력이 중국 곳곳에서 청나라 땅을 나누어 다스리며 활개를 쳤어요. 혼란스러운 시대였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혁명가들이 동아시아 여러 곳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어요. 도시 노동자들이 호응했지요. 중국 국민당이 중화민국을 세운 지 9년 뒤, 혁명가들이 상하이에 모여 중국 공산당을 창당합니다.

처음에 국민당과 공산당은 "군벌들이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고, 힘을 합쳐 군벌을 물리치려 했어요. 이를 제1차 국·공 합작이라고 합니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중국 남쪽 군벌들을 차례로 제압하는 데 성공했어요.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 격인 소련이 이들을 밀어줬지요.

하지만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조금씩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국민당이 공산당보다 컸지만, 공산당이 점점 세력을 키워 국민당을 이끄는 장제스(蔣介石)를 위협할 정도가 됐어요. 그러자 장제스가 상하이에서 공산당을 공격합니다. 공산당은 큰 피해를 보지요. 이어 장제스는 베이징을 점령해 중국 본토를 통일해요.

◇대장정 나선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의 공격으로 피해를 본 공산당은 마오쩌둥(毛澤東)을 중심으로 중국 곳곳에 자기들이 통치하는 지역을 세우고, 넓혀갔어요. 이를 중심으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했지요. 중화소비에트공화국에선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기 위해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했어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분열도 일어났어요. 중국 국민당도 공산당을 계속 공격했고요.

하지만 마오쩌둥은 국민당에 맞서 공산당을 지켜냅니다. 살아남은 공산당을 이끌고, 추격해오는 국민당에 쫓기면서, 중국 동남부에서 서북부로 1만 5000㎞를 이동하는 데 성공한 거예요. 이 행군을 대장정이라고 부르는데요, 산 18곳을 넘고 강 24곳을 건너는 행군에 많은 중국 청년이 감명받아 공산당에 들어갔어요.

1945년 9월 중국 국민당 장제스(왼쪽)와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이 나란히 서 있어요.
1945년 9월 중국 국민당 장제스(왼쪽)와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이 나란히 서 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국민당과 공산당 싸움이 점점 치열해지던 이 시기는 일본이 침략 전쟁을 확대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일본이 만주에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부를 세우고 본토를 넘봤어요. 중국 국민은 중국 정부와 국민당이 일본에 대항해 싸우길 바랐지만,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일본보다 공산당이 중국에 더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군벌 출신 부하 장쉐량이 이 점에 불만을 품고 장제스를 감금합니다.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일본과 적극적으로 싸울 것을 요구했고 결국 장제스는 다시 한 번 공산당과 손잡고 일본에 대항해 싸웠지요. 이 사건이 제2차 국·공 합작입니다.

◇중일전쟁 승리와 국공 내전

1937년 일본이 본격적으로 본토 침략을 시작해 중일전쟁이 일어났어요. 중국은 큰 피해를 보았지요. 전쟁이 끝난 뒤 국민당 정부가 피폐해진 경제를 다시 일으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국민당과 공산당의 갈등도 계속됐고요. 결국 미국의 중재에도 다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시작됐어요.

내전 초기엔 국민당이 우세했어요. 국민당은 미국 지원을 받아 병력도 장비도 월등했거든요. 하지만 예전처럼 공산당을 압도하지는 못했어요. 공산당이 그동안 세력을 키워왔기 때문이었어요. 국민당 내부의 부정부패가 워낙 심해, 국민의 불신도 심각했어요. 미국이 공산당과 싸우라고 국민당에 물자를 대줬는데, 그게 공산당에 흘러들 정도였어요.

국민당은 공산당에 밀리기 시작합니다. 중국 본토 전체를 공산당이 차지하자, 장제스와 국민당은 대만으로 옮겨갔어요. 중국 본토를 통일한 공산당은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고요. 이게 바로 지금의 중국이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양안 문제

사실 대만의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이에요. 대만은 중화민국을 이루는 가장 큰 섬 이름이죠.

중국 본토를 내주고 대만으로 쫓겨간 장제스는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당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지만 커다란 본토를 되찾기는 점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정세도 바뀌었어요. 1970년대가 되자, 결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던 미국과 중국이 수교했어요. 국제연합(UN) 상임이사국 지위도 대만이 아닌 중국으로 넘어갔지요. 뒤이어 일본과 한국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 정부로 인정했어요.

중국이 거대해진 지금도, 중국과 대만 사이엔 어느 쪽이 정통성을 가진 정부인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어요. 서로 자기들이 정통이라 주장하고 있지요.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팔자 중국이 발끈한 것도 그래서예요. 중국과 대만의 이런 복잡한 관계를 '양안 문제'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외교 원칙이 '하나의 중국'이에요. 중국 본토, 대만, 홍콩, 마카오는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 정통 정부는 하나여야 한다는 사상이죠.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 또는 중화민국(대만)과 수교하고자 하는 나라는 둘 중 한 정부하고만 할 수 있으며 다른 정부는 중국 정식 정부로 볼 수 없단 거예요.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자신과 외교 관계를 맺는 나라들에 대만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해왔어요.




안영우·명덕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