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바흐가 쓴 백작의 자장가… 하나의 멜로디 서른 개로 변주

입력 : 2018.09.29 03:00

작곡가 상상 더해 수십 개로 변화 줘
80분짜리 바흐 곡은 길고 화려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부드러운 음악을 조용하게 들을 수 있는 공공장소가 많아졌어요. 서울 예술의전당 주차장에 내리면, 음악회장으로 들어가기 전 관객을 반겨주는 음악이 있어요. 바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Bach·1685~1750)가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멜로디가 아름답고 변주도 다채로워서 곡의 전개가 흥미롭지요.

변주곡(Variation)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작곡가가 리듬이나 멜로디, 화음 등을 다양하게 바꿔 가며 여러 번 반복하는 작품 형태예요. 주제는 짤막한 몇 개 음이 될 수도 있고 여러 마디에 걸친 선율이 될 수도 있어요. 작곡가가 직접 만들거나 다른 사람의 작품, 혹은 작곡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변주곡은 아예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하고, 교향곡이나 소나타 중간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작곡가의 구상에 따라 수십 개의 변주가 있는 긴 곡이 탄생하기도 해요.

◇백작의 '자장가'

앞서 소개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연주 시간이 매우 깁니다. 악보대로 연주하면 80분 정도가 걸리죠. 작품이 이렇게 긴 이유엔 뒷얘기가 숨어 있답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프러시아 황제 프레데릭 2세 앞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프러시아 황제 프레데릭 2세 앞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바흐는 18세기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1741년 독일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로 일하고 있던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이 바흐와 만나 불면증에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바흐는 젊은 시절 자기에게 여러 도움을 준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변주곡을 만들었죠. 작품 제목은 카이저링크 백작이 고용하고 있던 젊은 쳄발로 연주자 요한 고틀립 골드베르크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쳄발로는 피아노의 선배 격인 건반악기예요. 백작은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해서 잠자리에 들 때면 골드베르크를 시켜 이 곡을 연주하게 했어요. 물론 전보다 편히 잤고요. 백작이 잠들기까지 시간이 걸려 곡이 이렇게 길어졌는지도 몰라요.

이 곡은 세 박자로 된 주제와 거기에 이어지는 30개의 변주로 이뤄져 있어요. 주제 부분이 아주 유명한데 느린 템포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표현해 '아리아(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요. 바흐는 이 멜로디를 리듬과 속도와 분위기를 바꿔가며 여러 번 변주합니다. 변주 세 개마다 카논(돌림노래) 형식을 넣어 변화를 주고 있어요. 음악 시간에 돌림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을 거예요. 첫 그룹이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다음 그룹이 조금 사이를 두고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죠. 같은 노래를 시차를 두고 부르는데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화음이 생겨요.

이 중 16번째 변주에는 특별히 '프랑스풍의 서곡'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요. 곡 중간에 들어 있어 마치 마라톤 경주의 반환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길고 화려한 작품은 맨 처음 시작할 때 나왔던 아리아를 다시 한 번 연주한 후 끝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 후 피아노는 물론이고 현악기를 위한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용으로도 편곡돼 널리 퍼졌어요. 원래 건반이 두 단인 쳄발로로 연주하는 걸 염두에 두고 쓴 곡이라 건반이 한 단뿐인 피아노로 치기에 무척 어렵지요. 그래도 워낙 훌륭한 작품이라 오늘날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이 작품에 도전하고 있답니다.

◇작곡가들 개성 드러난 '디아벨리 변주곡'

루트비히 판 베토벤(Beethoven·1770~1827)이 만든 '디아벨리 변주곡'도 작품 길이로는 만만치 않아요. 1시간 정도 걸리는 이 작품은 피아노 연주를 위해 만든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이름도 사람 이름에서 따왔어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판업과 작곡을 하던 안톤 디아벨리가 주인공이죠. 1819년 디아벨리는 재밌는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냈어요. 자신이 만든 주제를 빈의 저명한 작곡가 50명에게 나눠주고 그들이 만든 변주를 한 곡씩 모아 작품을 발표하기로 한 거예요.

베토벤은 처음에 디아벨리가 준 주제를 받아들고 이렇게 불평했어요. "이 주제는 구둣방에서 수선할 때 쓰는 천 조각 같다." 하지만 이내 영감이 떠올라, 디아벨리가 준 주제를 토대로 변주를 33개나 붙였습니다.

주제는 속도가 빠른 왈츠풍으로 되어 있어요. 여기에 이어지는 변주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마지막 부분은 대규모 푸가가 나와요. 푸가는 바흐가 활동하던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던 형식이에요. 여러 성부를 한꺼번에 등장시켜 점점 곡을 발전시키죠. 베토벤은 이 곡을 포함해 여러 후기작에 푸가를 넣어 바흐를 비롯한 선배 작곡가들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어요.

디아벨리가 보낸 주제를 받은 다른 작곡가들은 누가 있을까요? 슈베르트, 체르니, 리스트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곡가들이 주제를 받고 디아벨리에게 변주곡을 써서 보냈답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친 '디아벨리 변주곡'은 짤막한 변주들마다 작곡가들 개개인의 개성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요.

작고 단순한 주제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거대한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변주곡, 아주 멋지죠? 바흐와 베토벤의 이 웅장한 변주곡을 들어보면 두 사람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무한한 우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쳄발로는 어떤 악기일까요?]

쳄발로
/게티이미지코리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쳄발로〈사진〉로 연주하기 위한 곡이에요. 쳄발로는 하프시코드, 클라브생, 클라비쳄발로 같은 여러 이름을 갖고 있죠. 얼핏 피아노와 비슷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피아노처럼 현을 두드려 소리 내지 않고 현을 튕겨 소리를 내 찰랑거리는 음색이 독특하죠. 또 건반이 2단으로 되어 있기도 해요.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