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모차르트와 겨룬 클레멘티… '음악 천재'도 라이벌 있었죠
황제 앞에서 즉흥곡·2중주 대결…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오랫동안 화제
베토벤에 덤빈 연주자는 중간에 도망, 리스트에 진 탈베르크는 이름 잊혔죠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벌써 9월 중순이에요. 학생들에겐 중간고사 말고도 여러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계절이죠. 특히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이맘때 각종 콩쿠르에 나가야 해 바쁘답니다. 콩쿠르는 수많은 연주자가 참가해 누가 가장 기량이 뛰어난지 가리는 대회예요. 예술에 점수를 매기는 게 꼭 필요한 일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지만, 자신의 음악 실력을 알리기 위해 학교와 사회가 세워놓은 일정한 기준을 통과하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해요.
그렇다면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옛날 음악가들은 어땠을까요? 그들도 시험을 치거나 대회에 나갔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황제 앞에서 '세기의 음악 대결'
위대한 작곡가들도 때론 왕이나 귀족들 앞에서, 혹은 음악회에서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아야 했어요. 누가 당대 최고 음악가인지 가려내기 위해,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 대결을 펼치기도 했지요. 오스트리아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Mozart·1756~1791)와 이탈리아 작곡가 무치오 클레멘티(Clementi·1752~1832)도 오스트리아 황제 앞에서 피아노 실력을 겨뤘어요.
이 대목에서 '어, 모차르트의 라이벌은 안토니오 살리에리(Salieri·1750~1825) 아니었어?' 하는 분이 계실 거예요.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보다 여섯 살 위예요. 모차르트와 같은 시대에 빈에서 활동한 작곡가예요. 노력형인 살리에리가 천재형인 모차르트를 질투하며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아마데우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영화 내용과 달리 현실의 살리에리는 남에게 잘해주는 인자한 성격이었다고 해요.
실제로 모차르트와 맞겨룬 라이벌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클레멘티였어요. 피아노 학원에 다녀본 친구들이라면 '소나티네'라는 연습곡집을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클레멘티도 '소나티네'를 많이 지었어요.
- ▲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왼쪽)도 라이벌이 있었답니다. 바로 클레멘티(오른쪽)예요. 이 둘은 결국 황제 앞에서 ‘음악 대결’을 펼쳤습니다. /위키피디아·게티이미지코리아
클레멘티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영국으로 건너가 연주자 겸 작곡가로 유명해졌어요. 1781년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클레멘티의 명성을 듣고 빈에 초청해 모차르트와 '음악 결투'를 벌이도록 했어요. 두 사람이 각자 자작곡을 연주한 뒤 즉흥 연주를 선보이고, 마지막에는 피아노 두 대에 나란히 앉아 2중주를 했어요.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두 사람의 불꽃 튀는 대결은 승패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화제가 됐어요. 경연을 마친 뒤 클레멘티는 "모차르트가 우아하고 부드럽게 연주해 큰 감동을 받았다"고 상대를 칭찬했어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클레멘티의 연주는 기교만 화려하고 감정 표현이 부족하다"고 상대를 흉봤다고 해요.
◇베토벤에게 덤볐다가 도망간 음악가
인기만 믿고 우쭐해 하던 연주자가 진짜 실력자를 만나 코가 납작해진 일도 있어요. 1800년 봄, 다니엘 슈타이벨트(Steibelt·1765~1823)라는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가 빈에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Beethoven·1770~1827)과 맞붙었어요.
슈타이벨트는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 영국과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었어요. 몰아치듯 빠른 속도로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는 '트레몰로' 기법이 장기였어요. 슈타이벨트가 먼저 즉흥 연주를 했어요. 기교는 화려했지만, 깊은 감성이 담긴 연주는 아니었어요.
뒤이어 베토벤이 무대에 오르더니, 슈타이벨트가 작곡한 멜로디를 뒤집어서 더욱 아름답게 연주했어요. 슈타이벨트는 베토벤의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뒷문으로 도망쳤다고 해요.
◇라이벌에게 한 수 배운 리스트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라이벌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어요. 그중에서도 183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란츠 리스트(Liszt·1811~1886)와 지기스몬트 탈베르크(Thalberg·1812~1871)의 피아노 경연이 유명해요.
지금은 잊힌 음악가가 됐지만, 탈베르크도 당대에는 유럽 최고의 연주자로 유명했어요. 특히 화음을 이루는 여러 음을 한 번에 치지 않고 차례로 누르는 '아르페지오' 기법에 능했지요. 마치 손이 세 개 있는 사람처럼 연주하는 느낌이라, 사람들이 탈베르크의 손을 보려고 건반 앞으로 모여들기도 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공주가 마련한 경연장에서 리스트와 탈베르크는 환상곡 연주 대결을 펼쳤어요. 탈베르크의 기량도 훌륭했지만, 리스트는 화려한 기교를 넘어 청중의 마음을 울리는 연주를 선보였어요. 현대인들이 탈베르크는 잊었지만 리스트는 기억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요? 다만 경쟁자를 깔보던 모차르트와 달리, 리스트는 이날 자기와 경쟁한 탈베르크를 가리켜 "피아노에서 현악기가 내는 아름다운 음색을 뽑아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칭찬했다고 해요.
음악가들은 같은 시대를 사는 라이벌들과 교류하고 대결을 펼치며 성장해갔어요. 라이벌은 우리가 더 높은 목표를 이루게 도와주는 상대가 아닐까요?
[모차르트 경쟁자 살리에리, 베토벤에겐 스승이었어요]
클레멘티뿐 아니라 안토니오 살리에리도 모차르트의 라이벌로 유명해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해 괴롭혔다는 이야기는 떠도는 소문에 가깝다고 합니다.
살리에리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같은 음악가들의 선생님이었어요. 베토벤에게 오페라와 성악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지요. 베토벤이 남긴 편지에서도 스승 살리에리를 존경하는 마음이 묻어납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 천재 피아니스트 리스트도 살리에리가 가르쳤어요. 일곱 살이던 슈베르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빈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살리에리예요. 슈베르트가 커서도 음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