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이스라엘에서는 왜 바그너 음악을 안 들을까요?

입력 : 2018.09.14 03:07

오페라 걸작 남긴 당대 최고 작곡가… 유대인 혐오하는 글 쓰기도 했어요
바그너에 심취한 독재자 히틀러, 나치 선전하는 데 그의 작품 이용했죠

바그너
바그너
얼마 전 이스라엘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1813~1883) 음악을 틀었다가 청취자들 항의가 빗발쳤어요. 결국 방송사는 바그너 곡을 틀지 않겠다며 사과까지 했지요. 이스라엘에선 바그너 음악을 연주하는 건 금기에 가깝거든요.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는 바그너 음악을 아주 좋아해, 나치를 선전하는 데 이용하곤 했어요. 하지만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서 그와 만난 적도 없어요. 대체 바그너가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당대 최고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는 18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어요. 바그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새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새아버지 루트비히 가이어는 연극배우이자 시인, 가수였어요. 가족들 모두 연극을 좋아했어서 바그너도 어린 시절부터 극작에 관심이 많았지요.

그는 열여덟 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음악과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어요. 특히 바그너는 오페라 작곡에 빠졌는데요, 작곡뿐 아니라 문학적 재능도 뛰어나 오페라 대사들을 직접 쓰곤 했어요. 또 정치와 철학 에세이도 많이 남겼지요.

바그너는 당시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가 적극적으로 후원할 정도로 당대 최고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어요. 바그너가 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한데요,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등은 지금도 걸작으로 평가받는답니다.

바그너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지만, 그가 쓴 글이나 오페라에는 유대인을 미워하는 감정이 묻어나요. 1850년 바그너가 발표한 글에는 "유대인은 예술적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문장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에세이에서는 "항상 유대인과 만나면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낀다"고도 했어요.

바그너 오페라 중 하나인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는 이러한 생각이 반영돼 있어요. 극 중 인물 한스 작스는 "신성로마제국이 사라져도 신성한 독일 예술은 살아남을 것이니 진정한 독일 정신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해요. 독일인이 하나로 뭉치는 걸 뜻하는 '독일 정신'은 훗날 히틀러가 강조했던 사상이에요. 또 다른 등장인물 베크메서는 극 중에서 유대인을 풍자하고 유대교 성가를 웃음거리로 삼아 바그너가 유대인을 싫어한다는 의심이 더 짙어졌지요.

◇바그너를 사랑했던 히틀러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바그너에게 친근함을 느꼈을까요? 히틀러는 바그너 오페라의 '광팬'이 됐어요. 바그너가 쓴 글도 열심히 읽었지요. 히틀러는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바그너 오페라 '리엔치'를 보고 이 작품에 깊이 빠져들었어요. '리엔치'는 14세기 로마 귀족에 맞서 싸우는 시민 영웅 리엔치에 관한 이야기예요. 과거 로마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는 리엔치 모습에 히틀러가 깊이 공감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와요. 히틀러는 게르만족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에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게르만족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유대인을 학살했던 독재자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했어요.
유대인을 학살했던 독재자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히틀러는 1923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 즉 나치당 집회에서 바그너를 본받아야 할 인물로 꼽고 다음과 같이 말해요. "바그너라는 예술가를 우리가 위대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가 모든 작품에서 영웅적인 민중, 독일 정신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드러나는 독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독일 민족을 똘똘 뭉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거죠. 뉘른베르크에서 매년 나치 정당대회가 열릴 때마다 바그너 오페라가 상연됐고, 개막식에서는 '리엔치' 서곡이 항상 연주됐어요.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을 통해 독일 민족이 우수하다고 알리고 이를 과시하려 했어요.

독일 바이에른주 소도시 바이로이트에서는 1876년부터 매년 여름 바그너 오페라를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열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축제지요. 바그너가 바이에른 왕국 루트비히 2세 지원을 받아 오페라 극장을 세우고 '니벨룽의 반지'를 연주한 게 시초예요. 현재까지도 바그너 작품만을 선보이는 원칙을 지키고 있어요.

바그너가 죽고 난 후엔 그의 가족들이 페스티벌을 이끌었어요. 바그너의 아내, 아들에 이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맡게 된 며느리 위니프레드는 히틀러와 친분이 두터웠다고 해요.

히틀러는 매년 여름이 되면 바그너 음악을 듣기 위해 나치 고위 당원들과 함께 바이로이트를 찾았어요. 제2차 세계대전 중엔 군인들을 위로한다며 그들을 바이로이트 축제에 보내주기도 했지요. 음악 축제가 나치의 전쟁을 돕는 역할을 한 셈이에요.

일부에선 히틀러가 바그너를 광적으로 좋아했던 건 취향일 뿐, 바그너 작품을 유대인 학살과 직접적으로 연결하긴 힘들다고 말해요. 이미 1883년에 세상을 떠난 바그너가 나치의 만행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이스라엘에선 히틀러는 물론이고 바그너에 대해서도 반감이 심했죠. 몇몇 음악인들이 바그너 곡을 연주하려 할 때마다 청중이 항의하며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했어요. 2011년 이스라엘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국민적 비난을 무릅쓰고 독일에서 바그너 곡을 연주한 적이 있어요. 당시 지휘자 로베르토 파테르노스트로는 "바그너 사상과 반유대주의(유대인에 적대적인 이념이나 행위)는 끔찍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그너는 위대한 작곡가였다"면서 바그너라는 인물과 그의 음악 사이에 명백한 선을 그었습니다.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에 빠져들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을 개인의 취향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유대인 탄압과 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은 끝까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까요?


윤서원·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