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장소] 지중해에 있는 '사랑의 섬'… 터키·그리스계 갈등은 진행중

입력 : 2018.09.05 03:00

키프로스

터키 리라화가 올해 초에 비해 40% 이상 급락했다고 해요. 미국과의 외교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 제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인데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를 '터키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미국을 비난하고 있어요. 터키와 미국은 사실 최근 들어 사이가 틀어진 것이지 원래는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함께 속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터키의 가장 오래된 라이벌 국가는 그리스예요. 터키와 그리스의 갈등을 상징하는 장소가 바로 키프로스랍니다.

키프로스 해안 도시 아야 나파에 있는‘사랑의 다리’예요.
키프로스 해안 도시 아야 나파에 있는‘사랑의 다리’예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중해에 있는 이 섬나라는 그리스 동쪽으로 400㎞, 터키 남쪽으로 75㎞ 떨어져 있어요. 터키에 더 가까이 있지만 인구 구성은 그리스계(77%)가 터키계(18%)보다 훨씬 많아요. 우리나라 경기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9251㎢)에 119만명이 살고 있는 작은 나라죠.

키프로스는 '사랑의 섬(Island of love)'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키프로스 연안의 물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요. 키프로스에 가면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볼 수 있고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지중해성 기후를 느낄 수 있답니다. 그래서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있으며 키프로스 정부에서도 '사랑의 섬'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널리 알리고 있어요.

키프로스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도시국가가 번성했고, 기원전 13세기에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지중해 해상무역의 거점이 됐어요. 교역로에 위치해 있어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왔어요. 그리스, 페니키아, 이집트,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에 이어 16세기에는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어요. 주민 다수는 초기 그리스 이주민이었는데,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면서 터키계 이주민들이 들어오게 됐어요. 1878년 이후 키프로스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1960년 8월 '키프로스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 종교, 관습을 가진 두 집단이 하나가 되기는 어려웠어요. 결국 1974년 그리스 군사정권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민족주의자들이 키프로스섬을 그리스에 병합하려는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이에 터키는 터키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해 키프로스 북쪽을 점령했지요. 그리스도 군대를 파견하자 키프로스는 터키와 그리스의 전쟁터가 됐어요. 이 사건으로 난민 수천 명이 생겼고, 키프로스는 터키계 북키프로스와 그리스계 남키프로스로 분단됐어요. 이후 통일 분위기기 여러 번 조성됐지만 '키프로스인'이라는 공통점보다는 '그리스인'과 '터키인'이라는 차이점이 부각되며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박의현 창덕여중 지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