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미국·프랑스가 경매 전쟁 벌인 걸작… 삶의 가치 담았죠

입력 : 2018.09.01 03:07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한 해 8000만명 넘게 관광객이 모여드는 나라예요. 와인을 마시러 가는 사람도 있고, 경치를 즐기러 가는 사람도 있지만, 예술을 즐기러 가는 사람이 가장 많을 거예요.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수백 년 동안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어요.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조각이 서 있고, 크고 작은 미술관마다 명작이 즐비하지요. 19세기를 풍미한 신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인상주의, 20세기를 뒤흔든 야수파·입체파·초현실주의…. 미술사에 새로운 '장(章)'을 더한 수많은 미술사조가 프랑스에서 태어났어요.

자연히 프랑스 사람들은 '숱한 예술가를 길러낸 최고의 문화예술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해요. 프랑스는 앵그르, 모네, 마네, 드가, 고갱, 르누아르처럼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를 수없이 배출했지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장 프랑수아 밀레가 1위, 2위를 다툴 거예요. 왜 그럴까요?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작품1〉에 나온 남자가 밀레예요. 30대 초반에 밀레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죠.

밀레는 가난한 농민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캔버스에 담았어요. 추수를 마친 남녀가 해 질 녘 들판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만종'〈작품2〉이 특히 유명하지요.

작품1 - ‘30대 자화상’, 1845~1846년(왼쪽). 작품2 - ‘만종’, 1857~1859년(오른쪽).
작품1 - ‘30대 자화상’, 1845~1846년(왼쪽). 작품2 - ‘만종’, 1857~1859년(오른쪽).

'만종'은 원래 미국 사업가의 주문을 받아서 1859년에 완성한 그림이에요. 그림 주인이 미국 화가에서 벨기에 화가로, 다시 프랑스의 미술수집가로 여러 번 바뀌었지요. 1889년 이 그림이 다시 한 번 경매에 나왔을 때, 미국미술협회와 루브르미술관이 서로 사겠다고 경쟁을 벌였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밀레의 걸작이 미국으로 팔려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국가적 차원에서 모금 운동까지 벌였어요. 하지만 결국 미국미술협회가 이겼어요. 미국미술협회가 루브르를 누르고 55만3000프랑에 그림을 사들였지요.

하지만 프랑스도 가만있지 않았어요. 이듬해 프랑스의 부유한 사업가인 알프레드 쇼샤르가 75만프랑에 그림을 되사서 루브르미술관에 기증했어요. 그 후 '만종'은 오르세미술관으로 옮겨져 최고 인기 소장품으로 관람객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지요.

프랑스 사람들은 왜 이 작품을 국보처럼 아끼는 걸까요? 밀레 이전의 화가들은 농촌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밀레는 달랐어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농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지요. 밀레는 어렸을 때 농사짓기가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자랐어요. 농민들이 힘들게 일하면서도 진심으로 땅을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런 마음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았어요. 가난한 프랑스 농민의 일상을 통해, 현실이 비록 힘들고 고달프지만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긍정의 힘'을 감동적으로 보여줬어요.

작품3 - ‘키질하는 사람’, 1847~1848년(왼쪽). 작품4 - ‘가을, 건초더미’, 1874년(오른쪽).
작품3 - ‘키질하는 사람’, 1847~1848년(왼쪽). 작품4 - ‘가을, 건초더미’, 1874년(오른쪽).

〈작품3〉을 감상하면 밀레가 왜 위대한 농민 화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어요. 한 젊은 농부가 어두운 곳간에서 온 힘을 다해 키질을 합니다. 옛날에 농촌에서는 추수를 마친 뒤 곡식에 섞인 돌멩이나 쭉정이를 날려 보내고 알곡만 가려내려고 키질을 했어요. 그림 속 농부는 무릎을 구부린 채 튼튼한 손으로 키를 단단히 움켜쥐고 키를 흔들고 있어요. 농촌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그림을 보면 농사일이 얼마나 고된지, 열심히 일하는 게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느낄 수 있어요.

밀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그림이 '가을, 건초더미'〈작품4〉예요. 사계절 농촌 풍경을 그린 연작 중 한 점이죠. 한 해 농사가 풍년이었음을 알려주듯, 추수가 끝난 넓은 들판에 커다란 건초 더미 세 개가 높이 쌓였어요. 건초 더미 앞에는 양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요. 더없이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지만,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어요. 관람객은 한편으로 건초 더미를 보면서 풍요로운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 먹구름을 보면서 '삶이 얼마나 고단한가' 생각하게 되지요.

밀레의 작품은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연꽃 그림으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강렬한 색채로 남프랑스 들판을 그린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린 한국 화가 박수근이 모두 밀레의 영향을 받았지요. 최첨단 디지털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농촌과 농민의 삶을 그린 밀레의 작품은 여전히 깊은 감동을 주지요.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