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오스만제국의 최고 지도자… 군·정치 절대권력 가졌죠

입력 : 2018.08.31 03:07

술탄

셀림 1세
셀림 1세. /위키피디아

최근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터키에서 고급 브랜드 제품을 사들이는 일이 벌어졌죠. 미국의 관세 제재에도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미 정책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아 터키발(發) 금융 위기를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터키 정치체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고 2033년까지 장기 집권이 가능하도록 개헌을 진행했어요. 개헌 후 지난 6월 대통령에 당선돼 '21세기 술탄'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터키의 전신 국가인 오스만제국과 그 지도자 술탄의 유래에 대해 알아볼까요?

◇술탄, 정치적·군사적 권위를 갖다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를 뜻하는 말은 원래 '칼리프(무함마드의 대리인)'였어요.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무함마드를 대신할 정치, 군사, 종교적 통치자로서 칼리프를 선출한 것이지요. 4대 칼리프 이후 우마이야왕조(661~750)가 칼리프직을 세습했어요. 이후 아바스왕조(750~1258)가 우마이야왕조를 무너뜨리고 칼리프직을 가져오지요. 아바스왕조의 번영기는 길지 않았어요. 곧 주변에 파티마왕조, 부와이왕조 등 강력한 이슬람 국가들이 세워지면서 이슬람 세계에 미치는 칼리프의 권력도 약해집니다.

10세기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여러 왕조에서 맘루크(백인 노예 용병) 역할을 하며 이슬람교로 개종해온 셀주크튀르크는 1038년 이란 동부를 차지하게 돼요. 1055년 셀주크튀르크의 지도자였던 토그릴 베그는 아바스왕조의 수도였던 바그다드에 입성합니다. 셀주크튀르크는 당시 아바스왕조에 내정 간섭을 하고 있던 부와이왕조를 타도하고 칼리프로부터 '술탄(Sultan)'이라는 칭호를 받아요. '술탄'이라는 말은 원래 쿠란에 '도덕적 책임과 권위를 수행하는 통치자의 역할'을 뜻하고, 아랍어 어원으로는 '권위'를 뜻해요. 즉, 칼리프로부터 이슬람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나누어 받은 것이지요. 이때부터 이슬람 세계에서 칼리프는 종교적 권위만 갖는 지배자, 술탄은 정치적·군사적 권위를 갖는 지배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토그릴 베그 이후 다른 술탄들은 터키, 이란, 아라비아반도 지역을 다스리면서 이슬람 세계 지배자의 칭호로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인도에서는 13세기에 이슬람 왕국이었던 델리술탄 왕조(1206~1526)가 술탄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집트 지역의 아이유브왕조(1169∼1250)와 그 뒤를 이은 맘루크왕조(1250~1517)도 술탄이 최고 지도자였어요.

◇오스만제국의 '술탄 칼리프'

술탄 칭호를 받은 후 셀주크튀르크는 국경을 접했던 비잔티움 제국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았어요. 셀주크튀르크는 소아시아 지역과 동부 지중해 쪽으로 나아가며 1071년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해요. 이에 중세 유럽 세계의 기독교 국가들은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는데요, 길고 긴 200여 년의 십자군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셀주크튀르크는 세력이 매우 약해져요. 13세기에 몽골인들의 원정으로 아바스왕조와 셀주크튀르크가 무너지고 이란, 이라크 지역에는 몽골 칸이 다스리는 일한국(1259~1336)이 세워집니다. 아바스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유명무실했던 칼리프는 맥이 끊기는 듯하였으나 북아프리카에서 명성을 이어가요. 당시 이집트 지역의 맘루크왕조가 이슬람 왕조로서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마지막 칼리프의 숙부인 아부 아바스를 칼리프로 추대한 것이지요. 이후 250여 년간 카이로에서 13명의 칼리프가 지위를 이어갑니다.

30년 장기 집권 토대를 마련한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21세기 술탄’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오스만제국의 술탄들은 16세기 초 셀림 1세 때부터 종교적 권위를 갖는 칼리프를 동시에 수행했어요.
30년 장기 집권 토대를 마련한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21세기 술탄’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오스만제국의 술탄들은 16세기 초 셀림 1세 때부터 종교적 권위를 갖는 칼리프를 동시에 수행했어요. /EPA 연합뉴스

한편 셀주크튀르크 멸망 후 튀르크인들은 1299년 소아시아에 국가를 세우는데 이 국가가 바로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입니다. 16세기 초 군림했던 술탄 셀림 1세는 영토 확장 과정에서 맘루크왕조를 멸망시켜요. 이때 맘루크왕조 안에서 명맥을 이어오던 칼리프는 칼리프직을 오스만제국의 셀림 1세에게 양도하게 됩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들은 셀림 1세부터 술탄과 칼리프를 동시에 수행했으며 사실 이전부터 오스만제국 안에서 칼리프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술탄 칭호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18세기부터는 오스만제국의 국력이 쇠퇴하자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 술탄 칼리프라는 명칭을 외교 문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터키인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오스만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1920년 군사령관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은 술탄 전제 왕정을 없애기 위해 선거를 통한 새로운 터키 의회를 수립하기로 해요. 바로 대국민회의(Grand National Assembly·GNA)가 개설되고 무스타파 케말은 대국민회의 회장으로 선출됩니다. 그는 1922년 11월에 술탄 제도를 폐지하고, 1923년 7월에는 대국민회의를 유일한 터키의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로잔 조약을 연합국과 체결해요. 드디어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 것이지요. 술탄 정부를 없애고 터키에 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터키인의 아버지'라는 뜻인 '아타튀르크'라는 칭호까지 받았어요.

현재 터키에는 법적으로 술탄도 칼리프도 존재하지 않지만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술탄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공식적으로 터키에서 술탄은 더 이상 정치적 수장이 아니지만 현재에도 술탄의 지배를 받는 국가가 있는데요, 바로 아라비아반도의 오만 왕국, 보르네오섬의 브루나이 왕국, 말레이시아 등이랍니다.

☞술탄이 통치하는 국가 브루나이

브루나이는 보르네오섬 북서쪽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예요. 예전에는 힌두교의 마자파힛 왕조 지배 아래 있다가 15세기에 브루나이 이슬람 왕국으로 독립했어요. 지금도 절대적인 권력의 국왕, 즉 술탄이 다스리고 있답니다. 브루나이의 술탄은 헌법에 따라 총리·국방장관·재무장관을 겸임하며, 입법부와 의회, 사법부도 장악하고 있어요.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서 국민의 25%를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이들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와 부유한 생활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윤서원·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