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인물] 약체 베트남을 축구 강국으로… '박항서 매직' 어디까지?
입력 : 2018.08.29 03:00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
지난 27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박항서(59)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시리아를 1대0으로 꺾고 4강에 올랐어요. 베트남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2위로, 지금까지 2010년과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16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어요. 그런 베트남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사상 첫 4강까지 오르자 나라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기적을 이끈 것은 바로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에요. 박 감독은 지난해부터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최약체 베트남을 바꿔놓아 '박항서 매직(magic·마법)'이라는 말까지 생겼답니다.
- ▲ 베트남에 최초의 축구 국제 대회 준우승을 안겨준 박항서 감독. /조선일보 DB
'박항서 매직'은 올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선수권대회에서부터 발휘됐어요. 베트남이 결승까지 진출했어요. 비록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1대2로 져 준우승했지만, 기적 같은 성공을 이끈 박 감독은 베트남 정부 훈장도 받았어요. 이 대회의 열풍을 지금 열리고 있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애초 조별리그 통과가 목표였던 박 감독은 조별리그 3전 전승,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결국 4강까지 올랐어요.
박항서 감독은 선수 시절엔 주목받는 스타가 아니었답니다. 커다란 선수들이 즐비한 그라운드에서 눈에 띄게 작은 미드필더(키 166㎝)였어요. 끈질긴 압박 수비로 상대를 괴롭히는 근성을 갖고 있었지만, 선수 생활 기간이 7년으로 짧아 큰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 은퇴 후 코치로 경력을 쌓던 박 감독이 대중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입니다. 2000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기로 한 뒤 입국할 때까지 공백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에 치러진 한·일 축구 정기전에서 박 감독이 감독 대행을 맡았죠. 이후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 사이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던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넣고 나서 달려가 품에 안겼던 코치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박 감독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히딩크호'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생애 첫 감독직을 맡았지만, 준결승 상대였던 이란에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어요. 동메달을 땄지만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컸던 만큼 감독직을 떠나야 했죠.
이후 2005년 K리그 경남 FC 초대 감독으로 취임해 팀을 4위까지 올려놨고, 전남 드래곤즈와 상주 상무 감독을 맡기도 했어요. 국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한동안 야인 생활까지 했던 박 감독이 지금은 베트남에서 '국민 오빠'로 불린다고 합니다. 앞으로 그가 베트남에서 어떤 '매직'을 낳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