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빠른 박자·정교한 선율로 '한여름밤의 꿈' 표현했어요

입력 : 2018.08.25 03:05

여름에 어울리는 작곡가, 멘델스존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 /위키피디아

정말 못 참을 것 같이 더웠던 여름도 끝나가네요. 예전에는 더워서 잠이 잘 오지 않는 여름밤에 흔히 '납량 특집'이라 부르는 공포 영화나 드라마를 보곤 했는데요. 굳이 무서운 내용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빠져들 만한 재미있는 줄거리가 있다면 그 순간 짜릿한 시원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클래식 음악에도 여름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곡이 정말 많아요. 특히 여름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든 대표적인 작곡가로 독일의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Mendelssohn-Bartholdy·1809~1847)를 추천하고 싶어요.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은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굉장한 재능을 보였어요. 작곡 활동도 아주 빨리 시작했는데요. 17세에 발표한 '한여름밤의 꿈' 서곡(序曲·공연 전 연주하는 곡)은 청소년이 쓴 작품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갖춘 관현악곡이죠.

멘델스존이 작품의 소재로 택한 '한여름밤의 꿈'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초기작으로,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十二夜)'와 함께 '5대 희극'으로 불리는 걸작이에요. 그리스 아테네를 배경으로 인간 세계의 사랑과 그들을 바라보며 흥미로운 장난을 하는 요정들의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입니다.

여주인공 헤르미아는 부모님 때문에 드미트리어스라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돼 있지만 라이샌더라는 다른 젊은이와 사랑에 빠져요. 그래서 요정의 왕인 오베론의 숲으로 달아나죠. 약혼자 드미트리어스, 라이샌더를 짝사랑하는 헬레나가 두 사람을 뒤쫓아가며 사건이 진행돼요.

네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오베론은 자신의 부하인 요정 퍼크를 시켜 사랑의 묘약을 그들의 눈에 바르게 합니다. 이 약은 눈에 바른 후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데, 퍼크는 드미트리어스에게 약을 바르려다 사람을 착각해 그만 라이샌더 눈에 바르고 말아요. 그 후 오베론이 직접 드미트리어스에게 약을 발라주는데, 일이 꼬여 두 남자가 모두 헬레나를 사랑하게 되지요. 놀란 오베론이 주인공들을 모두 잠들게 만든 후에야 운명은 원래대로 되돌아갑니다. 마침내 헤르미아와 라이샌더, 드미트리어스와 헬레나가 결혼하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요. 귀족과 서민, 요정의 세계 모두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연극입니다.

‘한여름밤의 꿈’ 한 장면을 그린 19세기 그림.
‘한여름밤의 꿈’ 한 장면을 그린 19세기 그림. /위키피디아
1842년, 33세의 멘델스존에게 '한여름밤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 인물은 프로이센(옛 독일)의 왕 빌헬름 4세였어요. 그의 요청으로 멘델스존은 5막으로 구성된 연극 전체를 위한 극음악을 만들었지요. 10대 때 먼저 만든 서곡을 포함, 총 13곡을 만들었어요.

극음악 중 몇 곡은 별도로 연주할 만큼 인기가 있는데요. 1막과 2막 사이에 연주되는 '스케르초', 3막과 4막 사이의 '야상곡' 등이 유명합니다. '스케르초'는 빠른 세 박자 춤곡인데, 가벼운 리듬과 음표들이 정교하면서도 재빠른 움직임으로 요정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어요. 극 중 연인들이 마법에 걸려 잠들어 있는 장면에서 나오는 '야상곡'은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죠.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극음악에서 제일 유명한 곡은 4막과 5막 사이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이에요. 성대한 결혼식에서 흘러나오는 이 음악은 지금까지 전 세계 결혼식장에 울려퍼지는 마지막 곡으로 누구에게나 친숙합니다.

38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멘델스존은 여행을 무척 사랑해서 자신이 머물렀던 곳의 인상을 작품으로 남긴 경우가 많았어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역시 스무 살 때 여행했던 스코틀랜드 지방의 여러 추억을 음악으로 만들어 낸 걸작이죠. 영감을 빨리 떠올리기로 유명했던 멘델스존이었지만 이 곡을 완성하는 데는 13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요. 특히 당시 방문했던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에 얽힌 홀리루드 성의 비극적이고도 무서운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메리 스튜어트라고도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1542~1587)은 16세기를 살던 인물입니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 왕비가 되었다가 2년 만에 남편을 잃는 불행을 겪고 그 후 스코틀랜드 여왕이 됐지요. 하지만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분쟁, 친척이던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의 권력 다툼 등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죠.

에든버러 홀리루드에 있는 메리 여왕 성은 메리의 남편인 헨리가 아내 메리와 신하 리치오 간 불륜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 끝에 리치오를 살해하는 비극이 벌어진 곳입니다. 멘델스존은 이 어두운 이야기를 교향곡 1악장 서두에 슬픈 멜로디로 만들어 실었어요. 아울러 2악장에는 소박한 느낌의 스코틀랜드 민요 선율을 사용하고, 스코틀랜드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는 느린 3악장, 민속 춤곡을 통한 활기찬 마무리를 보여주는 4악장 등 전곡에서 스코틀랜드 정서가 물씬 풍기도록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 곡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이죠.

다소 침울한 느낌의 '스코틀랜드' 교향곡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지만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멘델스존의 밝고 건강한 면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표작입니다. 교향곡 3번처럼 뚜렷한 이야기는 없지만 누구나 한번 듣기만 하면 이탈리아의 찬란한 하늘과 뜨거운 태양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꺼번에 도약하는 멜로디가 무곡(춤곡)풍 리듬과 멋지게 어우러지는 1악장, 나폴리 순례 행렬에서 영향을 받은 2악장, 독창적인 미뉴에트(17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3박자 춤곡)풍 3악장, 열정적인 춤곡 살타렐로(로마 궁정에서 시작된 전통 춤)로 만들어진 4악장까지 매력이 무궁무진하죠.

다양한 얼굴을 가진 작품을 남긴 멘델스존은 가슴속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품고 있었던 인물 같아요. 이번 여름이 가기 전 그의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들을 꼭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김주영·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