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의심받는 핵 포기 약속… 미·이란 갈등 다시 고조됐어요

입력 : 2018.08.24 03:07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이란과 맺은 핵 협정을 공식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이란 핵 협정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인 2015년 7월 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 등 6개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된 것이에요.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나라들은 이란이 받고 있던 각종 경제·금융 제재를 해제해주는 것이었지요. 미국이 핵 협정을 탈퇴한다는 것은 이란에 다시 경제·금융 제재를 가한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이란은 왜 핵 개발을 하려 했을까요? 미국은 왜 경제·금융 제재를 했을까요? 이를 풀기 위해선 현재의 이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절친한 친구, 팔라비 왕조

과거 페르시아라고 불린 이란은 고대 로마에 맞설 만큼 강성한 나라였어요.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군주제 국가가 됐지요. 널리 알려진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이란으로 바꾼 것은 팔라비 왕조(1925~1979년) 때였어요. 팔라비 왕조 시기 이란에선 한때 쿠데타를 통한 민주화가 시도되었지만, 이란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의 지원으로 다시 강력한 국왕이 등장했습니다. 이후 팔라비 왕조는 미국에 우호적이었고, 중동에서 가장 서구화된 국가가 됐지요. 중동 지역 여성들은 보통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다녔는데, 팔라비 왕조 이란에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해요.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로 1974년에는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기도 했어요. 서울에 '테헤란로'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예요. 이란 수도 테헤란의 시장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각자 이름을 본뜬 도로를 건설하기로 약속했고, 그 결과 이란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 서울엔 '테헤란로'가 생겼죠.

지난 5월 9일(현지 시각) 이란 테헤란의 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이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 발표를 비난하며 종이로 만든 성조기와 핵 협정안 등을 불태우고 있는 모습.
지난 5월 9일(현지 시각) 이란 테헤란의 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이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 발표를 비난하며 종이로 만든 성조기와 핵 협정안 등을 불태우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하지만 팔라비 왕조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강하게 통제했어요. 경제 수준은 높았지만 빈부 격차가 심했고, 노골적인 친미 정책을 추진해 저항 운동이 나타났어요. 결국 1979년 호메이니라는 시아파 이슬람 사제를 중심으로 혁명이 일어나 입헌군주제인 팔라비 왕조는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갖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만들어집니다. 이후 이란은 팔라비 왕조 때 서구화된 모습은 사라지고, 이슬람 율법에 충실히 따르는 사회가 됐죠. 이슬람 율법을 지나치게 강요하다 보니 인권 탄압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스웨덴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란 시민들이 다른 참가자들과 악수했다는 이유만으로 99대 채찍질을 선고받았어요. 이란에선 친족 이외 이성과 악수하는 것은 부적절한 성적 행위로 간주된다고 해요.

이란 혁명으로 이란의 군사력이 쇠퇴하자,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해 전쟁을 벌였어요. 이 전쟁으로 이란은 큰 피해를 입었죠. 미국은 'USS 빈센스' 함선을 바다에 파견했는데, 이란 민간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했어요. 이 사건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어 이란 내 반미(反美) 감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란의 핵 개발과 국제사회 제재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이란은 수니파 이슬람 국가를 비롯한 주변 국가와 서구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이란의 핵 개발이 국제사회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이란에 대해 경제적·금융적 제재를 가하기로 해요. 다른 국가들에 이란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또한 2002년 미국 부시 대통령은 이란·이라크·북한을 '악(惡)의 축'으로 선포하고, 이 국가들의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이렇게 안 좋던 미국·이란 관계는 2015년 7월 미국 등 6개국이 이란과 핵 협정을 맺으며 호전됐어요. 이란 핵 협정 핵심은 '이란은 농축우라늄·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하고, 유엔은 이란 제재를 푼다'는 것이었어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의심되는 모든 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죠. 핵을 평화적 이유로 개발하는지, 무기로 개발하는지 국제사회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한 겁니다. 대신 이란은 사찰에서 핵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확인되면 경제·금융 제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어요. 이행하지 않을 땐 경제 제재를 다시 받는다는 내용도 포함됐어요.

하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핵 협정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해왔어요. 그가 가장 문제 삼은 것은 우라늄 농축 시설 등에 대한 제한을 10~15년 뒤에 풀어주는 조항이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항에 대해 "사실상 이 합의는 이란이 계속 우라늄을 농축해서 시간이 흐르면 핵무기를 만들 수준까지 도달하도록 허락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어요.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협정을 체결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진보적 관점에서 이란이 15년에 걸쳐 태도가 서서히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이란 핵 협정에 대해 "많은 돈을 주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파기할 수도 있다고 했죠. 지난 5월 초엔 이란과 사이가 안 좋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이 핵 협정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자국 정보기관 모사드가 입수한 증거를 공개하기도 했죠. 이렇게 국제사회 일부에서 이란에 대한 의심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주장하던 대로 핵 협정을 탈퇴해버린 것입니다.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이런 결정이 세계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어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979년 11월 사형선고 받은 팔라비 왕조 국왕을 미국이 보호해주자 이란이 미 대사관을 습격해 직원 50여 명을 인질로 삼은 사건이에요.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무렵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졌고, 전쟁에 정신이 없던 이란이 미국에 완화된 요구 조건을 제시하며 인질 사건은 희생자 없이 해결됐어요. 하지만 인질들은 444일간 갇혀 고통을 받았죠. 당시 잡히지 않고 도망친 대사관 직원 6명에 대한 이야기는 벤 애플렉 감독 영화 ‘아르고’로 만들어졌어요.



안영우·명덕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