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한양서 허가받은 '시전'·무허가 '난전' 갈등 심했죠
입력 : 2018.08.22 03:00
[시장의 형성]
신라 '경시'·고려 '방시'·조선 '시전'… 국가 허락받고 열린 시장이에요
서울시가 내년부터 노점상(거리 가게) 허가제를 실시하겠다는 지침을 발표했어요. 현재 서울 지역 노점상 7000여 개 중 6000여 개는 허가를 안 받고 불법 운영해 늘 단속 대상이었어요. 노점상은 이동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고, 아무리 불법이라고 해도 영세한 상인들에게 갑자기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죠.
앞으로 서울시는 이 불법 노점상들에게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허가를 받게 한다는 입장이에요. 노점상들이 허가받고 운영하려면 식품위생 기준 등을 따라야 해 시민 안전도 보장되고, 노점상 역시 단속을 피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장사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불법 노점상들은 서울시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어요.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노점을 합법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고요. 서울시가 이런 갈등을 어떻게 수습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노점상은 이미 조선 시대에도 있었답니다. 당시에도 무허가 노점상이 성행해 사회문제가 된 적도 있었어요.
◇도읍지에 설치된 시장들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은 시장이에요. 우리 역사에선 고조선이나 삼한 시대부터 시장이 열려 장사가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시장은 신라 소지왕 때인 490년 신라 도읍지인 경주에 처음으로 열린 경시(京市)라고 할 수 있지요.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소지왕 12년인 490년에 '처음으로 시장을 열어 사방의 물자를 통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그 뒤 신라는 509년(지증왕 10)에 도읍지 동쪽에 동시를 설치하고,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시전을 뒀으며, 통일신라 시대인 695년(효소왕 4)에 서쪽과 남쪽에 각각 서시와 남시를 뒀어요.
앞으로 서울시는 이 불법 노점상들에게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허가를 받게 한다는 입장이에요. 노점상들이 허가받고 운영하려면 식품위생 기준 등을 따라야 해 시민 안전도 보장되고, 노점상 역시 단속을 피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장사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불법 노점상들은 서울시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어요.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노점을 합법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고요. 서울시가 이런 갈등을 어떻게 수습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노점상은 이미 조선 시대에도 있었답니다. 당시에도 무허가 노점상이 성행해 사회문제가 된 적도 있었어요.
◇도읍지에 설치된 시장들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은 시장이에요. 우리 역사에선 고조선이나 삼한 시대부터 시장이 열려 장사가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시장은 신라 소지왕 때인 490년 신라 도읍지인 경주에 처음으로 열린 경시(京市)라고 할 수 있지요.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소지왕 12년인 490년에 '처음으로 시장을 열어 사방의 물자를 통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그 뒤 신라는 509년(지증왕 10)에 도읍지 동쪽에 동시를 설치하고,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시전을 뒀으며, 통일신라 시대인 695년(효소왕 4)에 서쪽과 남쪽에 각각 서시와 남시를 뒀어요.
- ▲ /그림=정서용
그러나 도읍지에 세워진 이 시장에선 아무나 장사할 수 없었어요. 국가가 허락한 사람들만, 국가가 요구하는 대가를 내고 장사를 할 수 있었죠.
◇조선 시대 장시가 오늘날의 노점상?
도읍지에 나라가 주도해 만든 방시나 시전과 달리 지방에서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열린 시장을 향시 또는 장시라고 불러요. 《고려도경》에는 '한낮이 되면 남녀노소와 관리 및 온갖 직업의 사람들이 상설 점포가 없는 일정한 장소에 각자 소유물을 가지고 모여들어 교역을 행하였다'고 향시의 모습이 기록돼 있어요. 장시는 조선 시대에 더욱 활발해졌어요. 정부는 농업을 중요하게 여겨 상업 발달을 억제했지만, 조선 후기에 수공업이 발달하고 화폐가 활발하게 통용되자 전국적으로 1000여 개에 이르는 장시가 성행했어요. 보통 장시는 10~15일 간격으로 넓은 빈터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생겨났어요.
장시의 발달과 더불어 조선 후기에는 상인 집단이 등장했고, 5개 고을을 차례로 이동하여 5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성행했어요. 이렇게 전국에 장시가 열린 것에서 노점상이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허가 노점상 '난전'의 등장
조선 시대에는 한양에 '난전'이라는 것이 생겨났어요. 당시 시전 상인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특정 물품을 국가에 공급하는 대가로 국가로부터 상업에 대한 독점권을 받아 장사를 했어요. 난전은 시전과 달리 국가 허가를 받지 않고 몰래 물건을 팔던 가게예요. 이 때문에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가게'라는 뜻에서 난전(亂廛)이라고 불렀죠. 요즘의 무허가 노점상과 비슷한 것이죠.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인구가 늘어나고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자 난전이 부쩍 늘어났어요. 난전은 한양에서 시전이 모여 있는 종로 1·2가, 을지로 일대 운종가는 물론 남대문과 서소문 밖 칠패, 종로 4가와 5가 일대의 이현 등에 몰려들어 시장을 형성했어요.
◇금난전권과 신해통공
난전이 늘어나자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던 시전 상인들이 큰 타격을 받았어요. 이에 시전 상인들은 '금난전권'을 마구 휘둘렀죠. '금난전권'은 조선 정부가 국가에 세금을 내는 육의전과 시전 상인에게 도성 안과 도성 아래 십 리 이내 지역에서 난전 활동을 금지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이에요. 하지만 이 금난전권으로도 난전이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어요. 육의전과 시전 상인들이 물품 가격을 지나치게 올려 백성을 힘들게 하기도 했죠. 결국 정조 때인 1791년에는 '신해통공'이란 조치가 내려져 육의전만 빼고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신해통공은 시전 상인만 할 수 있었던 상업 활동을 모든 상인에게 허용한 제도예요. 조치가 시행된 1792년이 신해년이라서 신해통공이라 불러요.
☞육의전(六矣廛)
시전 상인 중에서 비단·명주·무명·모시·종이·어물 등 중요한 여섯 품목을 파는 상인.
☞전안(廛案)
시전에서 취급하는 물건 종류나 국가가 판매를 허락한 사람들 명단이 적힌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