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종족 분쟁으로 국민 25% 떠나… 평화협정 결실 맺을까요

입력 : 2018.08.17 03:07

남수단 독립과 내전

지난 5일 남수단 대통령 살파 키르와 전 부통령이자 반군 지도자인 리에크 마차르가 평화협정을 맺었어요. 이에 따라 오랫동안 지속됐던 남수단 내전이 종지부를 찍을지 세계 언론이 집중하고 있어요. 한국도 남수단 평화를 위해 한빛부대를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하기도 했었지요.

남수단은 나일강 한 지류인 백(白)나일강 연안의 비옥한 토지와 열대우림을 끼고 있고 원유와 석재 등 천연자원이 풍부해 발전 가능성이 큰 국가였어요. 하지만 2011년부터 내전에 휩쓸리면서 국민이 전쟁터로 내몰리고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려왔지요. 남수단은 생긴 지 10년이 채 안 된 신생 국가인데요, 이곳의 독립과 내전 과정은 어땠는지 알아봅시다.

◇두 차례 내전으로 난민 400만명 발생

수단은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이집트 아래에 있는 국가예요. 18세기 영국과 이집트가 공동 통치한다는 명분 아래 식민지가 됐고 1956년 독립했지요. 영국은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수단을 북부와 남부로 분리해 통치했어요. 북부에서는 기존 이슬람교와 아랍 문화를 존중했고 민족 구성이 다양했던 남부에서는 기독교와 영어를 전파했습니다.

독립 후에도 북부 지역은 아랍계 민족이 살며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고 남부 지역은 딩카, 누에르족 등 다양한 아프리카 원주민이 살며 기독교와 토착 신앙을 믿고 있었어요. 경제 여건과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북부가 전(全) 수단의 이슬람화를 추진하자 남부에서는 수단인민해방운동이 결성되고 수단 지역은 50년간 두 차례의 내전(1955~1972년, 1983~2005년)을 겪게 됩니다. 난민 약 400만 명과 사망자 약 200만 명이 발생한 비극이었지요.

결국 2011년 남수단 분리·독립 국민투표에서 국민 90% 이상이 분리·독립에 찬성해 아프리카의 54번째 독립국인 남수단공화국이 탄생합니다. 수단인민해방운동을 이끌었던 존 가랑 장군의 후계자였던 살파 키르가 남수단 초대 대통령이 됐어요. 수단인민해방운동은 초대 국회 의석수 중 90% 이상을 획득하면서 여당 세력이 되었지요.

◇독립했지만 이번엔 정부·반군 갈등

그러나 남수단이 독립했다고 갈등이 끝난 건 아니었어요. 수단과 남수단 사이 해묵은 갈등은 원유 배분 문제로 이어졌지요. 원유의 약 70%가 남수단에 매장돼 있었지만 정유 공장, 송유관 등 시설은 북부 수단이 장악하고 있어 타협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이로 인한 갈등으로 전쟁 직전까지 위기가 높아졌는데 2012년 남수단이 수단에 송유관 사용료를 내기로 하는 비밀 협상을 맺으면서 일단락되었지요.

지난 5일 남수단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 수도 주바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기뻐하고 있어요.
지난 5일 남수단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 수도 주바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기뻐하고 있어요. /로이터 연합뉴스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남수단 내에서 지도층 간 분란이 일어나요. 바로 얼마 전까지 이어졌던 남수단 분쟁이지요. 2013년 7월 살파 키르 대통령은 쿠데타 전력이 있던 2인자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을 파면하고 내각을 해체했어요.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에 리에크 마차르 세력의 불만은 높아졌지요. 그해 12월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 민족해방위원회 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이때 살파 키르 대통령 세력과 독립 후 권력에서 밀려났던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 세력 사이 무력 충돌이 발생합니다.

내전 초기 살파 키르 대통령은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의 군사 쿠데타가 진압됐다고 발표했었지만 내전 지역은 수도를 넘어 북부로 확장되어가고 사상자 수는 늘어갔어요.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누에르족 출신 군인들은 종글레이주(州) 보르 지역을 장악하고 내전은 길어집니다. 살파 키르 대통령은 리에크 마차르 측의 일방적인 쿠데타라고 발표했지만 리에크 마차르 세력은 이를 부인하고 살파 키르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고 비난했어요.

◇종족 간 분쟁으로 번지면서 학살로 이어져

정부군과 반란군의 권력 갈등은 종족 간 분쟁으로 번지면서 전국적인 내분과 학살로 이어져요. 앞서 언급했듯이 남수단에는 다양한 아프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지요. 살파 키르 대통령은 남수단 인구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딩카족 출신이고,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은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누에르족 출신이었어요.

두 종족은 남수단 독립을 위해 2006년 '주바 선언'으로 부족 간의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고 수단에 함께 대항했었지요. 그러나 독립 후 권력 쟁탈 과정에서 다시 종족 간 분쟁으로 확장된 것이에요. 상대 종족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으로 죄 없는 민간인들이 성폭력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었지요. 양측 모두 가택수색을 일삼으며 상대 종족을 살인하고 성폭행했다는 증언이 주민들을 통해 나왔어요.

또 반란군과 정부군이 전쟁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벤티우, 보르 등 유전 지대 쟁탈전을 벌이면서 내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내전을 피해 남수단의 국민 300만 명이 해외로 떠났어요. 남수단 인구의 4분의 1 정도 되는 숫자입니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국내를 떠도는 난민이 되었지요.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해지자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 주변 국가들은 남수단의 평화협정 체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수단은 이번 평화협정 체결을 중재하기도 했어요. 유엔도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사태 해결에 적극 개입하고 있지요.

사실 이전에도 평화 협상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곧 내전이 일어나 협상이 파탄 났던 적이 많았어요. 작년 12월에 맺었던 휴전 협상은 몇 시간 만에 결렬됐지요. 이번 평화협정을 통해 정부군과 반란군은 군대를 합치고 연합 정부를 구성하기로 했는데요. 두 세력이 평화협정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내보이고 있는 만큼 비인도적인 내란이 완전히 끝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남수단 재건 돕는 한빛부대

유엔은 신생 독립국인 남수단의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 ‘유엔 남수단 임무단’을 만들고 회원국에 파병을 요청했어요. 우리 정부도 2013년 1월 280여 명 규모의 ‘한빛부대(대한민국 남수단 재건지원단)’를 창설해 그해 3월 남수단에 파병했지요. 공병과 의료부대원, 경비 병력 등으로 구성된 한빛부대는 남수단 보르 지역에서 도로나 비행장·교량 등을 건설하거나 난민들에게 의료 지원 활동을 하는 등 황폐화한 남수단을 다시 일으키고 있어요.






윤서원·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