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요즘 산길서 맵시 뽐내는 나무… 누린내로 해충 물리치죠

입력 : 2018.08.17 03:02

누리장나무

누리장나무
/야사모 알리움
햇볕이 너무 뜨거워 괴로운 여름날 아차산·대모산·관악산 같은 산을 찾아보세요. 입구에서 머지않은 기슭에서부터 산길 양옆을 가득 메운 누리장나무〈사진〉의 시원한 그늘을 만날 수 있답니다.

누리장나무는 어른 키보다 약간 높게 자라는 키 작은 나무인데요, 한여름이면 오동잎처럼 넓고 풍성한 잎들 사이로 무더기로 모여 하얀색 꽃을 빼꼼히 피워내요. 붉은빛 동그란 꽃받침 위로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기다란 하얀색 꽃잎 다섯 장이 피고, 그사이로 암술과 수술의 대를 하얗게 길게 뽑아내 마치 깊은 산 속 신비한 안개가 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답니다.

숲 속 여름 풍경을 만드는 누리장나무 근처에 다가서 보아요. 꽃의 향긋함이 스치는 것도 잠깐, 누린내가 고약하게 올라오지 뭐예요. 나무를 흔들거나 잎을 문지르면 코를 찡그릴 정도로 강한 냄새랍니다. 상한 된장이나 오래된 시골의 곳간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해요. 누린내가 얼마나 심하면 누리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누리장나무는 옛날부터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여서 냄새와 얽힌 이야기도 많답니다. 양반집 규수와 사랑을 이루지 못한 백정 아들이 묻힌 무덤에서 이 나무가 나왔는데, 나무에서 나는 누린내가 백정 냄새와 닮아 누리장나무가 됐다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어요. 구릿대나무나 개똥나무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누리장나무가 이런 냄새를 풍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클레로덴드린과 같은 여러 화학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화학물질은 나무가 자라는 데 방해가 되는 해충 등을 물리치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살충제가 없었던 옛날에는 화장실 안에 누리장나무 잎과 가지를 꺾어놓아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막았고, 주변에 일부러 누리장나무를 심기도 했답니다.

또 누리장나무의 화학물질은 자신이 잘 자라는 데 해를 주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타감(他感) 작용을 해요. 누리장나무의 잡초 제거 능력을 실험했더니, 벼를 제외한 잡초들만 골라서 자라지 못하게 해 제초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어요. 누리장나무는 멀구슬나무, 독말풀과 같은 식물들과 함께 천연 제초제로 주목받고 있어요.

누리장나무를 관찰할 때는 주변을 맴도는 제비나비에도 관심을 가져 보세요. 검은색과 청록색 띠가 박혀 있는 날개가 화려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비나비는 누리장나무나 무궁화·곰취 등의 꽃에서 꿀을 빨아 먹으며 살아요. 누리장나무는 비록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그 냄새를 이용해 자연에서 살아가고 다른 곤충에게 먹이를 공급해준답니다.



최새미·식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