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기업이 은행 지분 10%까지만 보유하도록 규제… 4차 산업혁명 걸림돌 될 수도

입력 : 2018.08.14 03:03

은산(銀産) 분리

"은산 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 은행에 대해 은산 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에요. 은산(銀産) 분리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최대 10%까지로 제한하는 규제예요. 문 대통령은 이를 19세기 말 영국의 '붉은 깃발법'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지난 7일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 참석, QR코드를 이용한 결제 기술을 체험하고 있어요. 문 대통령은 인터넷 은행에 대해 은산 분리 규제 완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7일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 참석, QR코드를 이용한 결제 기술을 체험하고 있어요. 문 대통령은 인터넷 은행에 대해 은산 분리 규제 완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합뉴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법의 핵심은 '자동차는 말보다 빨리 달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마부들이 실직을 걱정하며 당시로선 첨단산업인 자동차 운행에 거세게 반대하자 엘리자베스 여왕이 시혜를 베풀 듯 이 법을 만들었어요. 영국은 1826년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증기 자동차를 만들어 1865년 당시 이미 시속 30㎞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규제로 시속 6㎞, 그것도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타고 가는 마차 뒤'에서 달려야 했어요. 1896년까지 적용된 이 법으로 영국은 자동차 산업의 불모지가 됐고, 그 자리는 독일, 프랑스, 미국이 차지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붉은 깃발법을 인용한 것은 그만큼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죠.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금융 산업에서는 핀테크(Fintech)가 대세입니다. 핀테크는 금융과 정보통신 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입니다. 모바일, 빅데이터, 클라우드, IoT(사물 인터넷), VR(가상현실) 등 신기술을 활용해 현재와 전혀 다른 형태의 금융이 등장해 누구나 쉽고, 값싸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주식 거래의 절반을 모바일이 차지하고 있고, 은행을 경유하지 않는 개인 간 거래(P2P) 시장은 매년 수십 배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각종 간편 결제 제도가 도입되고 있고 신용카드는 이 시스템을 타고 스마트폰에 둥지를 틀고 있지요. 빅데이터로 가입자의 생활 습관을 분석해 개인별 맞춤 보험 상품이 나오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의 보험료를 깎는 보험 상품도 나옵니다.

하나같이 몇 년 전에 없던 '혁신'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인터넷 은행은 핀테크의 상징입니다. 지점 없이 온라인을 통해 운영해 인력과 사업비가 적게 들고 지역 제한도 없지요. 이렇게 아낀 비용으로 이자와 대출 등의 혜택을 금융 소비자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산 분리'는 주요 주주들의 투자를 제한하는 규제가 됐고 초기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터넷 은행은 지금 '찻잔 속의 태풍'이 돼버렸습니다.

은산 분리를 둘러싼 논란은 첨단 기술 관련 규제를 혁파하는 큰 틀을 정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은산 분리가 핀테크, 더 나아가 금융 산업 전체의 '붉은 깃발법'이냐 아니냐는 곧 판가름 날 것입니다. 워낙 변화가 빠르니까요.


박원배·이코노아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