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듀엣이 만드는 건반 하모니… 호흡 맞춰야 명연주 나오죠

입력 : 2018.08.04 03:05

피아노 연탄(聯彈·두 명이 한 피아노에서 연주)

얼마 전 인터넷에 공개된 연주 동영상 하나가 화제가 됐어요. 지난달 25일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있었던 실황 공연이었는데요.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들과 나란히 무대에 섰습니다. 이날 연주는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축하하기 위한 이벤트였어요. 예브게니 키신, 언드라시 시프, 리처드 구드 같은 거장과 한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조성진의 모습에 많은 한국인이 뿌듯함을 느꼈지요.

◇서로 손 부딪치게 작곡해 재미 더해

피아니스트 두 명이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는 것을 1피아노 4핸즈 연주, 혹은 피아노 연탄(聯彈)이라고 불러요. 우리에게 익숙한 '젓가락 행진곡'(앨런 작곡)이나 '빈 행진곡'(체르니 작곡) 등도 피아노 연탄곡이죠. 피아노 건반은 모두 여든여덟 개인데, 연탄은 보통 가운데에 있는 '가운데 도'를 경계로 두 명이 양쪽에 앉아 연주해요. 오른쪽에서 고음을 연주하는 사람을 '프리모', 왼쪽에서 저음을 연주하는 사람을 '세콘도'라고 부르죠. 프리모는 주로 멜로디를 맡고, 세콘도는 화성과 리듬으로 멜로디 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예브게니 키신(맨 왼쪽)과 함께 연주 중인 조성진(왼쪽에서 둘째).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예브게니 키신(맨 왼쪽)과 함께 연주 중인 조성진(왼쪽에서 둘째). /유튜브

피아노 연탄곡은 18세기 중반 유럽 귀족의 살롱에 피아노가 놓이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어요. 네 손이 같이 연주하기 때문에 어려운 연주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곡도 많아서 연탄곡은 발표되자마자 아마추어 음악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곤 했죠.

피아노 연탄곡을 활발히 작곡한 첫 번째 인물은 다름 아닌 모차르트였어요. 처음에는 누나인 나넬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연탄곡들을 작곡했는데 그 후 친분이 두터워진 귀족 가문들의 살롱 음악회 등에서 연주하기 위한 곡을 쓰기도 했죠. 이 작품들에는 모차르트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유머 감각이 들어있어요. 프리모의 왼손과 세콘도의 오른손을 일부러 겹치고 부딪치도록 작곡해 두 사람이 연주하다가 웃게 되는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죠. 모두 7곡 정도가 남아있는 그의 연탄곡 중에 소나타 F장조 K497, C장조 K521 두 곡은 규모가 크고 구성도 잘 짜여 무대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입니다.

◇'헝가리 무곡'도 원래는 연탄곡

연탄곡을 제일 많이 만든 작곡가는 슈베르트였어요. 친구를 좋아했던 그는 크고 작은 모임에서 함께 즐기기 위한 용도로 소나타, 론도, 변주곡 등을 여러 곡 만들었죠. 그의 연탄곡 중 제일 유명한 곡은 역시 '군대 행진곡'이에요. 원곡은 세 곡으로 묶인 행진곡집 D(도이치, 슈베르트의 작품을 분류하는 기호)733 중 1번인데요, 지금은 여러 가지 편곡이 나왔지만 원곡은 한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 연주하는 곡이랍니다.

드라마에 나와 유명해진 곡도 있죠. D940의 환상곡 F단조 중 1악장이 김희애, 유아인 주연의 드라마 '밀회'에 등장해 우리에게 친숙해졌어요. 서정적이고 슬픈 멜로디가 인상적인 이 곡은 모두 4악장 구성에 전곡을 연주하면 20분이 넘는 대곡입니다.

연탄(聯彈)에서는 피아노 한 대를 두 명이 연주해요. 그래서 ‘원 피아노 포 핸즈’라고도 부르죠. 두 사람의 호흡이 맞아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답니다.
연탄(聯彈)에서는 피아노 한 대를 두 명이 연주해요. 그래서 ‘원 피아노 포 핸즈’라고도 부르죠. 두 사람의 호흡이 맞아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답니다. /이진한 기자

슈베르트는 이 곡을 캐롤린 에스터하지 백작 부인에게 헌정했어요. 캐롤린은 슈베르트에게 피아노를 배웠죠. 슈베르트는 캐롤린을 '평생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답니다. 일본 피아니스트 미쓰코 우치다는 이 곡에 대해 "손가락들은 계속해 서로를 스친다. 여기에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담겨있다"고 해석하기도 했어요.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하고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연탄곡 장면만큼 좋은 소재가 없었겠지요. 대만 로맨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도 비록 클래식곡은 아니지만 두 남녀 주인공이 연탄곡을 연주해요. 피아노를 연주하며 둘 사이 마음이 커가죠.

유럽 각 지방의 민속 무곡을 연탄곡으로 만든 작곡가도 있어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우리에게 관현악곡으로 친숙하지만 원곡은 네 개의 손을 위한 작품이었죠. 네 개의 곡집에 모두 21곡이 들어있는 헝가리 무곡집은 브람스가 스무 살 때 만나 연주 여행을 했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어요. 헝가리에 살던 집시 민족의 멜로디와 춤을 브람스가 자신의 방식으로 엮은 것이죠.

그래서 브람스는 이 곡들에 자신의 작품 번호를 붙이지 않는 방법으로 순수한 창작이 아니란 사실을 밝혔습니다. 브람스가 그의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와 1868~1880년 사이 공식 무대에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이 곡을 연주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1집과 2집은 1869년, 3집과 4집은 1880년에 출판돼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브람스와 절친했던 드보르자크는 슬라브 무곡집을 발표했어요. 이 곡들 역시 관현악 편곡이 유명하지만 원곡은 연탄곡이에요. 드보르자크의 조국인 체코 외에 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슬라브 지역의 다채로운 민속 리듬이 들어있어 무척 흥미로워요.

◇피아노 연탄은 연주자들 소통하는 자리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드뷔시도 피아노 연탄곡을 썼어요. 총 4악장으로 구성된 '작은 모음곡'은 드뷔시가 친구인 피아니스트 자크 뒤랑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작곡했어요. 드뷔시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복잡한 기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이 많이들 연주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특히 1악장 '조각배로'는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곡이에요. 조각배가 물 위를 유유히 떠가는 듯 살랑거리는 선율이 느껴지지요. 요즘같이 푹푹 찌는 날씨에 시원한 느낌의 음악을 찾아 들으며 '음악 바캉스'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올해 드뷔시 곡을 여기저기서 많이 공연하는 만큼 들을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한 대의 피아노에서 호흡을 맞추는 피아노 연탄은 무대 위 스타들이 음악을 통해 진솔하게 공감하는 자리로 여겨집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영국의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과 생전에 친한 친구 사이였어요. 1960년대 중반 영국 알데버그 페스티벌에서 두 사람이 만나 연주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연탄곡들은 지금도 최고의 명연주로 남아있어요.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좋은 연주가 만들어지는 피아노 연탄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 매력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요. 손을 맞춰야 비로소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지요.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