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색 대비로 강렬한 명암 표현… 뉴요커의 외로움 그렸죠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 ▲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입니다. 호퍼는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꼽혀요. 미국인의 일상생활과 문화, 도시 풍경을 미국 화풍으로 표현했거든요.
〈작품1〉을 감상하면 미국인들이 왜 호퍼의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는지 알게 됩니다. 그림 배경은 늦은 밤 도심의 한 식당입니다. 식당에는 손님 셋과 종업원 하나, 단 4명뿐입니다. 남녀 한 쌍은 나란히 앉아있지만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등을 보이고 홀로 앉아있는 남자도 다른 사람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세 사람 모두 각자 자신만의 생각에 깊이 잠겨있어요. 흰옷을 입은 무표정한 종업원도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왜 늦은 시간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심야 식당에서 밤을 새우는 걸까요?
- ▲ 작품1 - ‘밤샘하는 사람들-나이트 호크’, 1942년.
집에서 반갑게 맞이해줄 사람이 없는 데다 외로워질까 두려워서입니다. 호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활기찬 도시에 사는 뉴욕인들의 메마른 감정을 심야 식당 풍경으로 보여줬어요. 미국인들이 이 그림을 유독 좋아하는 것은 추억의 풍경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퍼는 뉴욕 그리니치 애비뉴에 실제로 있었던 24시간 식당과 카페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어요. 단 실제 풍경에 예술가적 상상력을 더해 익숙하지만 낯선, 호퍼만의 화풍으로 표현했어요. 미국적 상징으로 가득 찬 도시 풍경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인 외로움을 결합한 것이지요. 오늘날 이 작품은 도시인의 고독과 소외감을 표현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답니다.
전형적 미국식 그림으로 평가받는 호퍼 화풍의 특징은 철길 옆의 집을 그린 〈작품2〉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림 속 집은 1920년대 미국 교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빅토리아 양식의 단독주택입니다. 19세기 중·후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죠. 영국에서 유행하던 양식이 미국에도 전해져 큰 인기를 끌었어요.
- ▲ 작품2 - ‘철로 옆의 집’, 1925년.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해 고급스럽고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다 어디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었거든요. 1849년부터 1915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빅토리아풍 주택을 4만8000여 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 등장한 빅토리아풍 주택은 마치 버려진 집처럼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호퍼는 구도와 색, 빛과 어둠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보이도록 연출했어요. 예를 들면 집은 수직, 철길은 수평이고, 철도는 주택 아랫부분을 칼로 자른 것처럼 배치했어요. 또 관객이 밑에서 집을 올려다보는 구도를 선택했어요. 하늘과 집은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과 노란색, 녹슨 철길과 침목은 붉은빛이 감도는 어둡고 진한 색을 칠했어요. 햇빛을 받는 부분과 그림자가 있는 부분을 대비해 강렬한 명암 효과를 만들어냈어요. 한때 미국에서 유행한 빅토리아풍 주택에 인간의 고독한 감정을 투영한 이 그림은 미국 대중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특히 공포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에게 영감을 줘 영화 '사이코'의 인상적 장면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 ▲ 작품3 - ‘주유소’, 1940년.
도시 주변 지역의 주유소 풍경을 그린 〈작품3〉에서도 미국적 색채와 미국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이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거예요. 호퍼는 오직 미국에서만 사랑받는 '국내용' 화가일까요? 아니에요. 호퍼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입니다.
2012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 전시장에서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가 열렸을 때 관객이 78만4269명이나 몰려들었어요. 서양 미술의 역사를 만든 프랑스 사람들이 하루 평균 1 만명이나 전시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을 정도로 호퍼는 세계 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국제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호퍼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유럽 미술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어요. 미국 예술가 대부분이 파리 미술을 본받으려고 노력했지만 호퍼는 오히려 가장 미국적인 자신만의 화풍을 개발해 미국 미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어요.
- ▲ 사진1 - 에드워드 호퍼 하우스 앤드 아트센터.
호퍼의 명성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높아졌어요. 앨프리드 히치콕,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리들리 스콧 등 거장들이 호퍼의 그림에 감동받아 영화를 만들었어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 마이클 코널리, 리 차일드를 비롯한 소설가 17명도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소설을 발표해 큰 화제를 일으켰지요. 올여름 뉴욕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나이액(Nyack)에 있는 에드워드 호퍼 하우스 앤드 아트 센터〈사진1〉를 꼭 방문해보세요. 미국 토종 화풍으로 세계인에게 감동을 안겨준 화가가 남긴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