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겁쟁이'가 지는 게임… 반도체업계 저가 경쟁처럼 극단 치닫기도
치킨 게임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00억달러(약 22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어요. 앞서 미국의 관세 부과에 중국이 맞대응하자 미국이 다시 보복 대응에 나선 거예요. 양국의 무역 전쟁이 자칫 '치킨 게임'으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에요.
치킨 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이었어요. 한밤중 도로 양쪽에서 경쟁자 두 명이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예요. 핸들을 꺾은 사람은 치킨('겁쟁이'를 뜻하는 속어)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아요. 어느 한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양쪽 모두 위험에 빠지죠. 즉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이에요.
- ▲ 치킨 게임은 국제 정치에서도 벌어져요. 1961년 케네디(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고 있어요. 그 후 양국은 전쟁 직전까지 갈등이 치닫게 돼요. /위키피디아
이러한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산업입니다. 2000년대 중반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세계 유명 반도체 업체들은 치열한 치킨 게임을 벌였어요. 각 업체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너도나도 반도체 가격을 내렸죠. 수요는 적은데 생산량을 늘리고 원가보다 싸게 제품을 판 거예요. 이 과정에서 독일, 일본, 대만 업체들의 규모가 대폭 쪼그라들었죠.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죽어라 싸우던 '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현금 동원력이 강했던 삼성전자가 최후 승자가 됐지요.
국제 정치 분야에서는 쿠바 미사일 사태가 대표적 사례예요.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이 한창이던 1962년 10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가 미국 해안에서 겨우 200㎞ 떨어진 쿠바에 핵탄두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기지 건설에 들어갔어요.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에게 이런 상황은 미국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죠. 이에 맞서 케네디 대통령도 쿠바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했어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초강수를 둔 것이죠. 쿠바 미사일 사태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에 소련이 쿠바에서 철수를 선언하며 평화적으로 사태가 수습됐습니다.
치킨 게임은 무모하고 소모적인 게임 같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복잡해요.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나는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 주는 것이 효과적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파국에 근접할수록 최소한 한쪽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치킨 게임을 반복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핸들을 꺾는 쪽을 선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결국 게임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