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구두모자, 매니큐어 칠한 장갑… 고정관념을 깬 디자이너 이야기

입력 : 2018.07.13 03:05

'피어나다'

책 속 일러스트
/봄의정원 제공
1890년 9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의 아름다운 저택에서 내가 태어났어요. 하지만 남자아이가 아니라서 아빠는 얼굴을 찡그렸어요.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어요. 간호사 이름을 따라서 '엘사'. 그마저도 잘못 부를 때가 많았지요.

엄마는 베아트리스 언니만 좋아해서 언니는 "벨라(예쁜이)", 나는 "브루타(못난이)"라고 불렀어요. 어느 날 유모차에 혼자 앉아있는데, 주변에 온통 핑크빛 꽃이 피어 있었어요. "안녕!" 화사하고, 또렷하고, 강렬한 핑크빛. 그 색깔이 내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꽃시장에 갔다가 눈부신 꽃들의 색과 모양, 탐스러운 향기에 마음을 뺏겨 버렸어요. 일곱 살인 나는 궁금했어요. 대체 무엇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까? 나도 크고 화려한 작약처럼 예뻐질 수 있을까? 나도 작지만 야무진 데이지만큼 당당해질 수 있을까? 그때 꽃가게 아저씨가 내 원피스에 꽃을 꽂아줬어요.

나는 얼른 집으로 달려가 내 귀와 입과 코에 진짜 꽃씨를 심었어요. 얼굴이 꽃으로 덮이면 천국에 있는 정원처럼 멋질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날이 저물자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의사들은 내 몸에 있던 씨앗들을 빼냈어요. 하지만 나는 곧 다시 씨앗을 심었어요. 내 몸이 아니라 상상 속에 말이에요.

그해 여름 밀라노에서 조반니 삼촌을 만났어요. 유명한 천문학자였던 삼촌은 상상하는 걸 참 좋아했지요. 우리는 삼촌의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세었어요. 하나, 둘, 셋…. 언니는 내 왼쪽 뺨에 난 점 일곱 개도 별처럼 세었어요. 삼촌은 내 뺨의 점들이 북두칠성만큼 예쁘다고 했지요. 그러고는 나를 높이 올려줬어요. "사랑하는 우리 엘사. 저 우주를 향해 날아볼래?"

어디에나 멋진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빠의 서재에 꽂힌 책도, 다락방에 있는 엄마의 큰 가방 속도 맘껏 탐색했어요. 가방에는 멋진 드레스와 액세서리도 가득 들어 있었지요. 나는 탐험가가 돼 보고, 밤하늘도 돼 보고, 옷을 입고 연기도 했어요. 그러면 세상이 더욱 밝게 느껴졌어요. 나는 예술가로 자라고 있었던 거예요.

맞아요. '피어나다'(봄의정원)는 훗날 세계 패션 디자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나, 엘사 스키아파렐리(1890~1973)의 삶과 예술을 압축한 그림책이에요. 쨍하게 눈을 사로잡는 나만의 컬러 '쇼킹핑크'가 표지부터 넘실대고요. 구두를 머리에 쓴다는 발상으로 만든 구두모자, 손톱에 바르는 매니큐어를 겉부분에 칠한 장갑, 나비매듭을 옷의 무늬로 그려넣은 스웨터 등 고정관념을 박찼던 나의 혁신들이 꿈처럼 펼쳐져요. 여자였고, 가난했고, 사랑받지도 못했지만 실패하고 엎어지면서도 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용기를 냈기에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었던 거예요. "예술가가 된다는 건 큰 꿈을 꾸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