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구두모자, 매니큐어 칠한 장갑… 고정관념을 깬 디자이너 이야기
입력 : 2018.07.13 03:05
'피어나다'
- ▲ /봄의정원 제공
엄마는 베아트리스 언니만 좋아해서 언니는 "벨라(예쁜이)", 나는 "브루타(못난이)"라고 불렀어요. 어느 날 유모차에 혼자 앉아있는데, 주변에 온통 핑크빛 꽃이 피어 있었어요. "안녕!" 화사하고, 또렷하고, 강렬한 핑크빛. 그 색깔이 내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꽃시장에 갔다가 눈부신 꽃들의 색과 모양, 탐스러운 향기에 마음을 뺏겨 버렸어요. 일곱 살인 나는 궁금했어요. 대체 무엇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까? 나도 크고 화려한 작약처럼 예뻐질 수 있을까? 나도 작지만 야무진 데이지만큼 당당해질 수 있을까? 그때 꽃가게 아저씨가 내 원피스에 꽃을 꽂아줬어요.
나는 얼른 집으로 달려가 내 귀와 입과 코에 진짜 꽃씨를 심었어요. 얼굴이 꽃으로 덮이면 천국에 있는 정원처럼 멋질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날이 저물자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의사들은 내 몸에 있던 씨앗들을 빼냈어요. 하지만 나는 곧 다시 씨앗을 심었어요. 내 몸이 아니라 상상 속에 말이에요.
그해 여름 밀라노에서 조반니 삼촌을 만났어요. 유명한 천문학자였던 삼촌은 상상하는 걸 참 좋아했지요. 우리는 삼촌의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세었어요. 하나, 둘, 셋…. 언니는 내 왼쪽 뺨에 난 점 일곱 개도 별처럼 세었어요. 삼촌은 내 뺨의 점들이 북두칠성만큼 예쁘다고 했지요. 그러고는 나를 높이 올려줬어요. "사랑하는 우리 엘사. 저 우주를 향해 날아볼래?"
어디에나 멋진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빠의 서재에 꽂힌 책도, 다락방에 있는 엄마의 큰 가방 속도 맘껏 탐색했어요. 가방에는 멋진 드레스와 액세서리도 가득 들어 있었지요. 나는 탐험가가 돼 보고, 밤하늘도 돼 보고, 옷을 입고 연기도 했어요. 그러면 세상이 더욱 밝게 느껴졌어요. 나는 예술가로 자라고 있었던 거예요.
맞아요. '피어나다'(봄의정원)는 훗날 세계 패션 디자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나, 엘사 스키아파렐리(1890~1973)의 삶과 예술을 압축한 그림책이에요. 쨍하게 눈을 사로잡는 나만의 컬러 '쇼킹핑크'가 표지부터 넘실대고요. 구두를 머리에 쓴다는 발상으로 만든 구두모자, 손톱에 바르는 매니큐어를 겉부분에 칠한 장갑, 나비매듭을 옷의 무늬로 그려넣은 스웨터 등 고정관념을 박찼던 나의 혁신들이 꿈처럼 펼쳐져요. 여자였고, 가난했고, 사랑받지도 못했지만 실패하고 엎어지면서도 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용기를 냈기에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었던 거예요. "예술가가 된다는 건 큰 꿈을 꾸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