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눈 내리는 마을에 두고온 그녀, '사랑의 색'으로 담았죠

입력 : 2018.07.07 03:07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김춘수 시인이 1969년에 발표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의 첫 구절입니다. 이 유명한 시 덕분인지 샤갈의 이름을 들으면 제일 먼저 눈 내리는 마을의 그림이 떠오르지요. 요즘같이 덥고 끈끈한 여름에 눈 내리는 그림을 보며 푸른 겨울 나라를 상상하면 시원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오는 9월 26일까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해줄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작품1에서도 눈이 내린 마을이 보여요. 샤갈의 고향인 러시아 비테프스크 마을이랍니다.

작품1 - ‘비테프스크 위에서’, 연도 미상.
작품1 - ‘비테프스크 위에서’, 연도 미상. /국립이스라엘미술관

화면 오른쪽엔 러시아풍의 교회가 있고, 그 옆으로 수염이 덥수룩하고 모자를 쓴 남자가 지팡이를 든 채 자루를 메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려 하고 있어요. 이 남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방랑해야 하는 화가 자신의 운명을 말해줍니다. 차림새에서 화가가 유대인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어요. 유대인은 조국을 잃은 채 오래도록 다른 나라들을 떠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이렇듯 자루와 지팡이, 모자와 수염이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곤 하지요. 화면 왼쪽의 집 담벼락에선 연인이 이별을 아쉬워하듯 서로 꼭 끌어안고 있는데, 둘은 아마도 샤갈과 그의 아름다운 연인, 벨라의 모습인 듯해요. 샤갈은 1911년, 스물넷의 나이에 세계적인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어요. 당시 파리는 예술에 대한 열망이 있는 젊은이라면 꼭 한 번쯤 거쳐 가야 할 대도시였으니까요. 하지만 사랑하는 벨라와의 이별을 생각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파리에서 혼자 지내면서 샤갈은 고향에 있는 벨라를 늘 그리워했어요. 행여 그녀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일단은 빨리 돌아가서 그녀와 결혼부터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해가 1914년인데 샤갈이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정확히 2주 후에 서유럽에서 전쟁이 터졌어요. 러시아 측에서는 사람들이 몰래 입국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인 1917년에는 러시아에서도 커다란 혁명이 일어났어요. 만일 귀향 계획을 조금만 미루었더라면 샤갈은 벨라를 영영 못 만날 수도 있었겠지요.

1923년에서야 샤갈은 파리로 돌아갔고 '라퐁텐 우화'의 삽화 작업을 의뢰받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염소나 수탉 등 동물을 자주 그려왔던 덕분에 그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화 작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어요. 작품2를 볼까요? 여우가 나무 밑에서 까마귀를 부러운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해요. "까마귀님, 검은 코트가 정말 멋져요. 틀림없이 그와 어울리는 목소리도 가졌겠지요?" 우쭐해진 까마귀는 여우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려다가 그만 입에 물고 있던 치즈 덩어리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치즈를 노린 여우에게 속은 것이지요.

작품2 - ‘까마귀와 여우’, 1950~1952년(왼쪽), 작품3 - ‘삼손이 가자의 성문을 옮기다’, 초판 1931년(오른쪽).
작품2 - ‘까마귀와 여우’, 1950~1952년(왼쪽), 작품3 - ‘삼손이 가자의 성문을 옮기다’, 초판 1931년(오른쪽).

우화뿐 아니라 성서 속 이야기도 샤갈에게는 예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보물 창고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유대인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받아온 그에게 성서는 한마디로 위대한 시 그 자체였어요.

작품3은 성서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천하장사 삼손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스에 헤라클레스가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삼손이 있지요. 삼손은 자신의 능력을 소중히 여기지 않다가 남의 꼬임에 넘어가 힘의 원천이던 머리카락을 잘리고 눈까지 멀게 됩니다. 머리카락이 자라나 예전처럼 힘을 되찾기까지 그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참고 견뎌야 했지요. 이 장면은 삼손이 문기둥을 번쩍 뽑아 들어 되찾은 힘을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작품4 - ‘연인들’, 1937년.
작품4 - ‘연인들’, 1937년.

파리는 샤갈에게 제2의 고향이었어요. 1937년에 샤갈은 프랑스 시민권을 얻게 되는데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예술이 뿌리내린 토지는 비테프스크였지만 나의 예술은 나무가 물을 필요로 하듯 파리를 필요로 했다." 작품4는 바로 그해에 그린 것으로 아내 벨라와의 꿈처럼 찬란한 시절을 보여줍니다. 아래로 멀리 비테프스크 마을이 보이고, 저 위에서는 날개 달린 천사가 하늘에 꽃을 뿌리고 있네요. 둥둥 날아오른 연인은 아늑하게 꽃들에 둘러싸여 있지요. 꽃다발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샤갈은 벨라를 그릴 때에는 언제나 꽃을 한 아름 함께 그려 넣었어요. 샤갈이 추구했던 '사랑의 색'이 이 작품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

그러나 둘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벨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그것도 전쟁이 끝나기 바로 한 해 전인 1944년에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고 맙니다. 심각한 병세도 아니었는데 전쟁 중이라 쉽게 약을 구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샤갈은 아내와 보냈던 나날들을 추억하며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그녀를 화면에 담았어요. 그의 그림 속에서 벨라는 꽃에 둘러싸여 꿈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문의 (02)332-8011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