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한성 주변은 포도청, 군·현 치안은 지방관이 맡았죠
입력 : 2018.06.27 03:00
[고려·조선시대 경찰]
고려 땐 병사인 순검이 치안 담당
조선 성종 때 포도청 생겨나
정부가 최근 검찰·경찰의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자치경찰제를 추진하기로 했어요. 자치경찰제는 시장·도지사 소속의 지역 경찰이 관내 치안을 책임지는 제도예요. 경찰청장이 전국 경찰을 지휘하는 현재 제도와는 달리 지역별로 경찰 권한을 나누는 것이지요.
내년부터 서울과 세종, 제주에서 자치경찰제를 시범 실시해요. 자칫 과도해질 수 있는 경찰 권력을 견제하고자 마련한 제도예요. 그렇다면 옛날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치안을 어떤 곳에서 맡아서 했을까요? 요즘 논의하는 자치경찰제와 비슷한 제도도 있었을까요?
◇개경 거리 지키던 순검
고려 성종 때인 995년이었어요. 고려 도읍지인 개경 거리에서 군졸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순찰을 돌고 있었어요. 전날 장터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이 순검들은 '금오위'라는 중앙 군사 조직에 속한 병사들이었어요. 이들의 주요 임무는 고려 수도인 개경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이었지요. 순검은 오늘날 경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내년부터 서울과 세종, 제주에서 자치경찰제를 시범 실시해요. 자칫 과도해질 수 있는 경찰 권력을 견제하고자 마련한 제도예요. 그렇다면 옛날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치안을 어떤 곳에서 맡아서 했을까요? 요즘 논의하는 자치경찰제와 비슷한 제도도 있었을까요?
◇개경 거리 지키던 순검
고려 성종 때인 995년이었어요. 고려 도읍지인 개경 거리에서 군졸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순찰을 돌고 있었어요. 전날 장터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이 순검들은 '금오위'라는 중앙 군사 조직에 속한 병사들이었어요. 이들의 주요 임무는 고려 수도인 개경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이었지요. 순검은 오늘날 경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 ▲ /그림=정서용
최씨 무신 정권에서는 밤에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야별초(夜別抄)라는 군대를 설치했어요. 야별초가 폐지된 후엔 원나라 제도를 따라 충렬왕 때 순마소를 설치했지요. 이 역시 도적을 잡고 난폭한 자를 다스릴 목적이었죠.
◇한성 일대 치안은 포도청에서
순마소는 이후 순군만호부로 확대·개편돼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어요. 조선 태종 때 순위부로 바뀌었다가 이후 의용순금사, 의금부로 차례로 개편돼 경찰 업무를 맡았지요. 이후 경찰 일은 수도 경비를 맡는 군대인 5위에 넘겨주고, 의금부는 왕족의 범죄와 반역죄 등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한 특별 재판을 담당했어요.
제9대 왕 성종 때가 되자 '포도청'이 생겨나 치안을 담당했어요. 좌포도청은 한성부 동부·남부·중부와 경기도 서남부 지역을, 우포도청은 한성부 서부·북부와 경기도 동북부 지역을 관할했죠.
좌·우 포도청에 각각 있는 포도대장은 종2품 무관직이었어요. 포도대장은 맡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지요. 포도대장이 임금을 직접 수행할 때는 장수 중에서 일을 대행할 사람을 임명하기도 했어요. 속담 중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도 바로 이 포도청에서 유래했어요.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돼 포도청에 잡혀간다는 뜻이죠.
그 후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서양 여러 강대국들과 교류하게 됐어요. 1894년에는 갑오개혁을 통해 근대식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일본 제도를 따라 좌·우 포도청을 합쳐 '경무청'을 새로 만들었어요. 비로소 오늘날 경찰청과 같은 조직이 생긴 것이지요.
◇치안까지 맡은 수령은 고을의 절대 권력
고려와 조선시대엔 국왕을 대신해 각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어요. 사또 또는 원님이라고 불렀죠. 수령은 사법권, 행정권, 군사권을 가지고 치안까지 맡아 처리했어요. 조선시대 수령을 보좌하던 여섯 부서인 육방(六房) 중에서 군사 실무를 맡았던 병방(兵房)과 법률, 소송, 형벌과 감옥에 관한 실무를 맡았던 형방(刑房)에서 오늘날 경찰 업무를 나누어 맡았던 것으로 보여요.
조선 초기 포도청이 상설 기구로 자리매김하기 전에 도둑을 잡기 위해 중앙에서 각 지방에 포도장을 임명해 파견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임시적 성격을 띠었죠. 즉 경무청이 생기기 전까진 각 지방에서 수령들이 자치 경찰 형태로 치안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가 하면 고을 사정에 밝지 못한 수령을 돕기 위해 '유향소'라는 지방자치 기구도 생겨났어요. 지방의 풍속을 단속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향리를 감찰하며 고을 질서를 바로잡았죠. 임진왜란 이후엔 좌수·별감 등 임원을 배치해 체제를 정비했어요. 지방 행정기관이나 자치 치안 기관 역할을 한 것이죠.
[유향소를 견제했던 경재소]
조선시대 유향소를 통제하기 위해 경재소(京在所)란 기구가 설치됐어요.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각 지방 세력가들의 자식을 주로 경재소 품관으로 임명했죠. 이들은 그 지역 유향소 관리를 임명·감독했어요. 지방 수령이 지나치게 권한을 벗어나는 일을 하면 중앙에 이를 보고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수령이 하는 일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었어요. 선조 때인 1603년 경재소가 없어지자 유향소의 권력이 점점 커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