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美의 영국령 캐나다 공격… 英, 백악관 불태워 보복했죠

입력 : 2018.06.22 03:07

미·영 전쟁(1812~1814년)

미·영 전쟁 당시 매킨리 요새에서 펄럭이던 성조기.
미·영 전쟁 당시 매킨리 요새에서 펄럭이던 성조기.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하면서 "당신들(캐나다)이 백악관을 불태우지 않았느냐"고 따졌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였어요. 앞서 미국이 캐나다산(産) 철강·알루미늄에 아주 높은 관세(수입품에 물리는 세금)를 매기자 트뤼도 총리가 항의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영 전쟁'(1812~1814년)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많은 학자가 미·영 전쟁 당시 캐나다가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캐나다는 1867년 영국에서 독립했거든요. 그러나 영국군이 미국 수도에 들어와 백악관을 불태운 것이었기에 미국인들에게 준 충격은 매우 컸지요. 그렇다면 미국과 캐나다가 언쟁을 벌인 '미·영 전쟁'이란 어떤 역사적 사건이었을까요?

◇영·프랑스 갈등으로 불거진 전쟁

17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미국은 8년간 치열한 독립전쟁 끝에 1783년 영국에서 독립했음을 정식으로 인정받았어요. 그런 미국이 3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영국과 또 다른 전쟁을 벌인 것은 다름 아닌 영국과 프랑스 간 대립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1789~1794년)이 한창이던 1793년 1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자 유럽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어요.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이 유럽 전역에 퍼질까 두려웠던 영국·네덜란드·스페인·프로이센 등 다른 왕정 국가들은 프랑스 혁명파를 응징하고자 대(對)프랑스 동맹을 결성합니다.

프랑스는 1799년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유럽 국가를 하나씩 격파하며 세력을 넓혀갔어요(나폴레옹 전쟁). 끝까지 프랑스에 굴복하지 않았던 강대국은 영국뿐이었지요.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전략을 바꿔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로 합니다. 1806년 나폴레옹은 유럽 국가들과 영국 간 통상·무역을 금지하는 내용의 '베를린 칙령'(대륙 봉쇄령)을 내렸어요. 유럽의 어떠한 나라도 영국 물건을 수입하거나 영국에 물건을 팔지 못하도록 한 거예요. 프랑스와 영국 간 갈등은 최고조로 치달았지요.

당시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모두와 통상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어요. 그러자 영국이 프랑스를 오가는 미국 선박을 억류하고 물건을 빼앗고 선원을 납치하는 등 훼방을 놓기 시작했지요. 1807년엔 미국 버지니아주 해안가에 들어오던 미국 무역선 체서피크호를 포격해 여러 선원이 죽거나 다치는 피해가 나기도 했어요. 영국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점점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1809년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 영국·프랑스 간 갈등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통상 금지법(Non-Intercourse Act)'을 제정합니다. 미국 상인들이 영국·프랑스와 더 이상 통상하지 못하게 막는 내용이었어요. 그러자 정부의 소극적 정책에 분노한 강경파가 영국에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남부 농업 종사자나 젊은 의원이 대부분이었지요. 이들은 전쟁에서 이기면 영국이 지배하던 캐나다 지역과 동남부 플로리다 지역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어요. 또 당시 오대호(미국 북동부의 거대한 다섯 호수) 일대에 원주민들이 쳐들어와 공격하는 일이 잦았는데, 영국이 원주민들에게 몰래 무기를 대주고 반란을 선동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영국을 응징하려 했지요.

◇미국 국가(國歌)를 탄생시킨 전쟁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1812년 7월 매디슨 대통령은 결국 영국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미·영 전쟁이 발발한 거예요. 하지만 피해를 우려한 상공업자들과 해상 운송업자들이 전쟁에 반대하며 잘 협조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미·영 전쟁이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매디슨씨의 전쟁(Mr. Madison's War)'이라며 비꼬기도 했지요.

전쟁 초기 미국은 영국령 캐나다를 집중 공격했어요. 하지만 여론에 떠밀려 선전포고한 탓에 전쟁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어요.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던 뉴욕 등 북동부 해안 주들은 아예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았어요. 여러 전투가 벌어졌지만 미국은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요.

1814년 8월 영국은 미국의 영국령 캐나다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수많은 공공 건물을 불태웠어요.
1814년 8월 영국은 미국의 영국령 캐나다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수많은 공공 건물을 불태웠어요. /위키피디아

그즈음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1812~1813년) 실패로 몰락하고 1814년 지중해 엘바섬으로 추방됐는데요. 영국으로선 가장 큰 위협이던 프랑스 문제가 해결되자 본격적으로 미·영 전쟁에 전력을 쏟기 시작했어요. 영국은 육·해상에서 펼쳐진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고, 미국의 캐나다 요크(현재 토론토)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1814년 8월 워싱턴 D.C.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수많은 공공건물을 불태웠지요. 매디슨 대통령은 급기야 버지니아주로 피신하기까지 했어요.

그해 9월, 메릴랜드주의 매킨리 요새도 영국군에게 기습 공격을 당했습니다. 매킨리 요새는 워싱턴 D.C.로 가는 길목인 체서피크만(灣·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해역) 북쪽 볼티모어 항구에 있는데요. 당시 요새를 공격했던 영국 함대에는 미국인 포로이자 변호사·시인·작가였던 프랜시스 스콧 키(Key·1779~1843)가 타고 있었어요.

그는 영국과 전쟁하면서 꿋꿋하게 펄럭이는 미국 국기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시 한 편을 남겼는데, 이 시가 바로 오늘날 미국 국가(國歌)인 '성조기(Star Spangled Banner)'의 가사입니다. 조국의 전쟁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안타까움과 애국심,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잘 드러나지요.

"Oh say, does that star spangled banner yet wave/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오 외치노라, 반짝이는 별을 품은 저 깃발은 자유의 땅과 용맹의 고향 위에서 영원히 물결치리라)."

1814년 12월 24일, 양국은 결정적 승리도 없고 별다른 성과도 없던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합니다. 벨기에 겐트(Ghent)에서 종전(終戰) 조약을 맺고 미·영 전쟁이 막을 내린 거지요. 그런데 당시 통신 사정이 나빠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지역에는 종전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며칠 후 뉴올리언스에서 또다시 전투가 발발했다고 해요. 이 전투로 영국군 2000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미국이 큰 승리를 거두었지요. 그래서 비록 종전 후 전투이지만 뉴올리언스 전투는 미국인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답니다.


윤서원·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