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이중섭·박수근·오지호… 전통·서양 어우른 근대 미술 100점
입력 : 2018.06.16 03:01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 展]
일제가 80년 전 건립한 '덕수궁관' 올해로 재개관 20주년 맞았어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미술관 용도로만 지어진 건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8년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1880~1963)가 '이왕가(李王家·일제가 대한제국 황실을 낮춰 부른 말) 미술관'으로 설계했어요. 일제가 조선 고미술품과 일본 근대 미술품을 나란히 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지요. 건물은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새로 단장해 첫 전시를 했고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것이에요.
성년의 날이 되면 이를 축하하는 성인식이 있는 것처럼, 덕수궁관도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10월 14일까지 기념 전시를 열어요. 덕수궁관이 꾸준히 수집해온 이중섭·박수근·오지호 등 근대 작가의 걸작 100점을 엄선해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작품3처럼 2014년 일본에서 발굴된 덕수궁 미술관 설계도와 관련 자료들도 볼 수 있어요. 미술관 건물까지도 '근대 명품'의 하나로 보는 셈이지요.
성년의 날이 되면 이를 축하하는 성인식이 있는 것처럼, 덕수궁관도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10월 14일까지 기념 전시를 열어요. 덕수궁관이 꾸준히 수집해온 이중섭·박수근·오지호 등 근대 작가의 걸작 100점을 엄선해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작품3처럼 2014년 일본에서 발굴된 덕수궁 미술관 설계도와 관련 자료들도 볼 수 있어요. 미술관 건물까지도 '근대 명품'의 하나로 보는 셈이지요.
그러나 유럽과 달리 아시아 여러 국가는 내부적으로 제대로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서양의 근대 문화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더욱 복잡한 상황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했지요.
작품1은 장운상(1926~1982)이 그린 근대적인 미인이에요. 18세기 말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가 조선의 전통적인 미인상이라면, 장운상의 그림 속 여인들은 20세기에 어울리는 미인이지요. 조선시대 여자들은 정식으로 교육을 받기 어려웠고 부모님이 정해주는 대로 일찌감치 결혼해 집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어요. 거리를 다닐 때는 장옷(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부터 길게 내려 쓰던 옷)을 쓰고 얼굴을 감추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근대의 여인은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공부도 하고, 멋을 즐기기도 하고,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하기도 했지요.
그림 속 두 여인을 보세요. 자매처럼 얼굴이 닮았지만 옷차림은 대조적이네요. 한 사람은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어 신세대적인 멋을 내었고, 또 한 사람은 한복 차림에 땋은 머리를 머리띠처럼 둘러 예스러우면서도 세련되게 꾸몄어요. 이들의 옷차림처럼 서양식과 전통식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분위기는 근대 미술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작품2는 오지호(1905~1982)의 그림인데, 종이에 먹으로 그리는 전통 서화 기법 대신 서양 미술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캔버스에 유화 방식을 사용했어요. 화가는 여러 색의 물감이 화면 위에서 서로 어우러지도록 붓질을 짧게 찍어내듯 표현하는 인상주의 기법에 능했어요. 19세기 유럽의 인상주의자들이 햇빛이 비치는 야외 장면을 주로 그렸듯이, 오지호도 햇살 좋은 어느 날 대문 밖에 앉아 자기 집 풍경을 그렸답니다. 대추나무가 선명한 파란색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하얀 개는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네요. 빨간 옷을 입은 딸아이가 개밥을 주려는 듯 문밖으로 나오려는 게 눈에 띕니다.
근대에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그림도 많아졌어요. 조선시대 그림 속에서 어린이는 어른에게 차를 끓여 드리거나 말을 끄는 시동(侍童·어른을 모시는 아이)의 모습으로 주로 등장했어요. 하지만 근대 작품에서는 어린이의 모습이 종종 독립적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화가들은 철없고 순수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어린이를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장우성(1912~2005)이 그린 작품4는 홀로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았어요. 소가 먹을 여물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 어깨에 멘 이 소년은 아마도 온종일 소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소는 소년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좋은 친구였겠지요.
아마도 어른이 된 소년은 소를 고향에 두고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도시로 떠나갔을 겁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그런 거예요. 오랫동안 정든 것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전혀 새로운 것을 만나 설레기도 하는 과정이지요. 세월이 흐른 후 되돌아보면 눈물 어린 순간도, 두근거리던 순간도, 모두가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근대 작품들을 볼 때 왠지 마음 한편이 찡하다면 바로 그런 추억 때문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