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공직자 선출할 때 군 복무·납세 등 꼼꼼하게 살폈죠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
오는 13일 제7회 전국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져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지요.
민주 사회에서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나라 주인으로서 자기 의견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답니다.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제도는 민주주의의 발원지인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됐어요. 오늘은 고대 아테네의 정치 체제에 대해 알아볼게요.
◇고대 아테네, 참주정에서 민주정으로
기원전 8세기 그리스에는 아테네 같은 도시국가들이 하나둘 생겨났어요. 이런 도시국가들을 폴리스(polis·성채)라고 해요. 가장 세력이 강했던 폴리스는 아테네였는데, 아테네 시민들은 도시를 방어하고 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겼지요. '폴리스'에서 '정치'를 뜻하는 영어 단어 'politics'가 유래했다고 하니, 아테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지금과 다른 점이 많았어요. 오늘날 국가들은 인구나 사회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모든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없어요. 이에 따라 나라를 운영할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참정권(參政權)을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국가가 많지요. 하지만 고대 아테네 인구는 20만~30만명 수준이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20세 이상 성인 남성 인구는 불과 3만~6만명 정도였기 때문에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어요.
기원전 6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테네에서 폴리스 운영에 관여하는 계층은 귀족들이었는데요. 다른 나라와 무역이 늘면서 상공업자들의 영향력이 커졌지요. 또 평민들이 폴리스 방어를 책임지는 군인이 되거나 전쟁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들은 기득권 계층인 귀족들에게 정치권력 확대를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기원전 594년, 아테네 정치가 솔론(Solon)이 최고 집정관인 아르콘(archon) 자리에 오르면서 귀족과 평민들의 참정권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는 아테네의 분열을 조장하는 혈통 중심의 참정권 부여 방식을 폐기하고 재산을 기준으로 시민들을 4등급으로 구분해 참정권을 차등 부여했어요. 가난한 노동자들은 제4계급으로 분류돼 관직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지요.
결국 평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페이시스트라토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는 독재 정치 체제의 일종인 '참주정(僭主政)'을 수립하고 참주가 됐어요. 참주란 혈통과 관계없이 무력으로 군주의 자리를 빼앗은 뒤 왕처럼 통치하는 독재자를 말해요. 기원전 527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세상을 떠나고 권력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 히피아스가 수년 후 추방되자 아테네는 비로소 민주정치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책임은 막중했던 직접민주주의
기원전 6세기 초반 아르콘 자리에 오른 클레이스테네스는 신분이나 경제력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고 아테네 전 시민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습니다. 그는 10개 행정 구역마다 50명씩 추첨해 임기 1년짜리 '500인 평의회'를 구성하고 모든 시민에게 정치 참여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했지요. 500인 평의회는 아테네의 전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民會·아고라)에서 논의할 의제를 결정했고, 민회는 평의회가 제안한 의제에 따라 국가의 중대사를 토의한 뒤 투표로 결정했어요. 클레이스테네스는 '디카스테리아'라 불리는 시민 법정도 설치해 500명 이상의 시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도록 했지요.
- ▲ 아테네 민주주의 전성기를 만든 페리클레스 장군과 시민들 모습. /위키피디아
아테네 정치의 주도권은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기원전 448년)을 거치면서 귀족 출신 집정관에서 장군들에게 넘어갔는데요.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던 지도자가 기원전 5세기 후반 아테네를 통치한 페리클레스 장군입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이룩한 인물로 평가받아요. 먼저 가난한 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공직 수당'을 주기 시작했어요. 생계에 바쁜 빈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뿐만 아니라 국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관들도 시민들 가운데서 추첨(제비뽑기)해서 임명했고, 시민 법정의 배심원이나 민회, 500인 평의회 구성원들도 지원자들 가운데 추첨으로 뽑았어요.
이처럼 아테네에선 누구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 책임은 막중했습니다. 주요 공직 후보자로 선출될 때에는 군 복무를 마쳤는지,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와 같은 정밀 조사를 받아야 했고, 고위 행정관이 되려면 두 곳의 위원회로부터 이중으로 꼼꼼하게 자격 심사를 받아야 했지요. 공직이 끝난 후에도 자신이 제안한 법안의 실효성, 평소 행실 등에 따라 재판을 받거나 가혹한 처벌을 받기도 했어요. 또 모든 공직자가 임기가 끝난 후 공금(公金)을 정당하게 사용했는지 회계 감사를 받았지요.
- ▲ 도편추방제에 쓰인 도자기 파편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발달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더욱 용이해졌어요. 정치 참여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도 컸던 아테네 민주주의를 되새기며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일 것 같아요.
☞도편추방제
클레이스테네스는 페이시스트라토스처럼 독재할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을 미리 추방하는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를 만들었어요. 독재자가 될 것 같은 위험인물의 이름을 조개껍데기나 도자기 파편에 적은 뒤 6000표 이상이 나오면 10년간 아테네에서 추방하는 제도였지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안전 장치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이념이 다른 인물을 제거할 목적에 활용될 위험성도 있는 제도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