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스포츠 이야기] 심리 안정 위해… 엉덩이 낀 바지 빼고, 카레만 먹고

입력 : 2018.05.23 03:00

징크스와 루틴

나달이 엉덩이에 낀 바지를 빼는 모습이에요.
나달이 엉덩이에 낀 바지를 빼는 모습이에요. /조선일보 DB
시험 보기 전 미역국을 먹으면 그 시험에 미끄러져 불합격한다거나, 축구 경기에서 골대에 공을 맞힌 팀은 패배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이는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의 특정한 행동이나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를 '징크스(jinx)'라고 하는데, 불길한 징조나 재수 없는 일을 뜻해요. 대표적인 것이 2년 차 징크스인데, 프로 데뷔 1년 차 때 맹활약을 펼친 선수가 그다음 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지요.

프로 선수 중에는 특이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선수가 많은데요.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과 야구선수 추신수는 빨간색 속옷을 입었을 때 승리한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해요. 또 전 축구선수 안정환은 현역 시절 경기에 나갈 때 수염을 깎지 않았고, 미국의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는 대회 기간 내내 같은 양말을 신는다고 합니다. 그래야 경기가 잘 풀린다 믿는 거지요.

징크스가 부정적인 의미라면 '루틴(routine)'은 긍정적인 실천을 말해요. 스포츠 선수가 심리적·육체적 안정감과 집중력을 얻고 가장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야구선수 박한이의 경우 타석에 들어서면 장갑을 조이고 팔꿈치를 쓰다듬고 바닥에 그린 금을 지우고 헬멧을 다시 쓰고 방망이로 스윙을 하는 동작을 반복하는 루틴을 갖고 있는데요. 이런 동작이 24초까지 소요되기도 하는데, '투수는 12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박 선수가 적응에 애를 먹었다고 해요.

세계 랭킹 1위 테니스 선수 나달의 루틴도 특이한데, 서브 직전 발로 땅을 고르고 테니스 라켓으로 두 발바닥에 묻은 흙을 털고 엉덩이에 낀 바지를 빼고 양 어깨와 귀, 코를 번갈아 만진답니다. 올해 8월 US오픈대회에선 서브를 25초 이내에 넣어야 하는 규정이 생기는데, 나달의 루틴이 어떻게 바뀔지 벌써부터 궁금해요.

미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최근 은퇴한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선수도 루틴을 잘 지키기로 유명했어요. 미국 생활 동안 거의 예외 없이 경기 전 똑같은 음식을 섭취했는데요. 홈경기 전엔 아내가 만든 카레 요리를, 원정 경기 전엔 치즈 피자만 먹었다고 해요. 일종의 '의식'인 셈인데 뇌와 위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지요. 의도적으로 자신감을 불어넣는 루틴도 있는데, 사격선수 진종오는 경기 전 "그래, 됐어, 됐으니까 다음 발도 10점 쏘자"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집중력을 높인다고 해요.


조보성 무학중 체육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