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러시아 영광 이끈 절대군주… 왕비 잃자 폭군으로 변했어요

입력 : 2018.05.18 03:00

['첫 공식 차르' 이반 4세]

재임 초반엔 시베리아·볼가강 등 영토 확장하며 탁월한 리더십 발휘
후반기엔 반대파 잔혹하게 숙청했죠
푸틴 대통령 4선에 '차르 부활' 비판

얼마 전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대통령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네 번째 취임식이 열렸어요. 푸틴은 2000~2008년 연달아 두 번 대통령을 지낸 뒤 잠시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대선을 통해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했지요. 그리고 지난 3월 치러진 대선에서 또다시 당선돼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예정이랍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공화국인 러시아에 전제 군주(나라의 모든 권력을 군주가 쥐고 군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는 것) '차르(tsar)'가 부활했다며 비판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러시아 역사에서 차르는 어떤 의미일까요?

◇밝게 빛났던 이반 4세의 치세 전반

15세기 이전까지 러시아는 여러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있었어요.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시기에는 그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죠. 그러나 이반 3세(1440~1505)가 모스크바 대공(大公·작은 나라의 군주)이 된 뒤 몽골 지배에서 벗어났고, 러시아 동북부 일대를 통일하면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거듭났어요.

한 귀족(오른쪽)을 강제로 차르의 옥좌에 앉힌 뒤 반역죄라며 위협하고 있는 오프리치니크 모습이에요.
한 귀족(오른쪽)을 강제로 차르의 옥좌에 앉힌 뒤 반역죄라며 위협하고 있는 오프리치니크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이반 3세는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 황제의 조카와 결혼해 로마제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어요. 또 스스로를 '차르(황제)'라 부르고 강력해진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크렘린궁을 개축했어요. 이렇게 이반 3세는 러시아가 전제 군주 국가로 나아가는 기반을 닦아 '이반 대제(大帝)'로 불렸지요.

이반 3세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바실리 3세가 왕위를 이어받아 30여 년간 통치했어요. 그런데 바실리 3세가 사망하자 고작 세 살이었던 장남 이반 4세(1530~1584·이하 이반)가 왕위를 물려받았지요.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당시 유력한 두 귀족 가문이 번갈아가며 대신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이반은 어머니가 귀족들에게 독살당하는 등 귀족들의 치열한 권력 암투를 목격하며 자랐고, 그 과정에서 숱한 수모를 당하며 의심 많고 냉혹한 성격을 갖게 됐어요.

이반은 열일곱 살이 되자 교회에서 정식 대관식을 치렀어요. 이때 공식적으로 '차르'라는 칭호를 채택했지요. 이반 3세를 비롯한 이전 통치자들은 공식적으로 여러 작은 나라의 대공일 뿐이었는데, 이반 4세는 처음으로 '모든 러시아의 차르'인 황제 자리에 오른 거예요.

이반은 대관식 후 차르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주력했어요. 우선 귀족과 성직자, 고위 관료, 대(大)상인 등 각 계층의 대표자로 구성된 '젬스키소보르(전국 회의)'를 소집해 국정의 주요 사안을 논의했어요. 이를 통해 귀족의 일방적인 횡포를 막으려 했던 거지요. 대외 원정에도 적극 나서 카스피해 연안과 볼가강(러시아 서쪽 강)을 러시아 영토로 만들었어요. 또 시베리아 지역을 정복해 러시아가 동쪽으로 광대한 영토를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죠.

◇아내의 죽음, 폭군으로 돌변하다

치세 초반 탁월한 리더십으로 러시아의 영광을 이끌던 이반은 1560년 사랑하는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돌변해요. 어린 시절 귀족들의 궁중 암투를 경험했던 그는 왕비가 독살당했다고 믿었지요. 이반은 복수심과 분노에 찼고, 이후 자기 측근을 비롯한 주변 귀족 세력들을 숙청해나가기 시작했어요.

이반은 전 국토를 차르의 직영지인 '오프리치니나'와 귀족들의 영지인 '젬시치나'로 구분하고 자신의 땅을 충신들에게 나눠줬어요. 이반에게 영토를 받은 사람들을 '오프리치니크'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별도의 특별 군대를 조직해 차르의 손과 발이 되어 대규모 테러를 자행했어요.

오프리니치크의 테러 대상은 차르에게 저항하는 세력과 그 가족들이었어요. 하지만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 무차별적인 테러를 벌이기도 했지요. 희생된 귀족의 재산은 국가로 몰수되었고, 붙잡힌 사람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처형당했어요. 1570년 오프리치니크는 '노브고로드'라는 도시에 몰려와 6주간 3만여 명을 학살하고, 같은 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간첩 노릇을 했다는 혐의로 100여 명을 처형하기도 했어요.

오프리치니크는 검은 옷에 검은 말을 타고 개 머리와 빗자루를 말 안장에 매단 채 온 나라를 누볐어요. 차르에 반대하는 이들을 개처럼 물어뜯고 빗자루로 쓸어버리겠다는 의미였죠. 이들로 인해 러시아는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었고, 이반의 권력은 더 막강해졌어요. 이를 통해 정적(政敵)이 모두 제거됐다고 생각한 이반은 오프리치니크를 해산한 뒤 모조리 몰살했지요. 이에 당시 유럽 사람들은 그를 'Ivan the Terrible(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이반)'이라고 불렀어요.

◇번개처럼 빛나고 벼락처럼 두려웠던 황제

러시아 거장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죽어가는 아들.
러시아 거장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죽어가는 아들.
이반의 광기(狂氣)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말년엔 자신의 아들을 때려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어요. 1581년 11월 이반이 며느리인 황태자비의 옷매무새를 보고 잔소리를 했는데 아들인 황태자가 제 아내 편을 들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몽둥이로 아들의 머리를 내려친 거예요. 정신을 잃고 쓰러진 황태자는 며칠 후 죽고 말았지요. 이를 계기로 9세기 무렵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류리크 왕조'의 계보가 끊어졌고, 이후 러시아에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섰답니다.

이반의 통치 후반기, 러시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스웨덴에 발트 연안을 비롯한 많은 영토를 빼앗겼어요. 이반은 1584년 며칠을 울부짖으며 궁 안을 헤매다 죽었다고 전해지는데요. 훗날 소련에서 이반의 시신을 부검해본 결과 독살로 판명됐다고 해요.

러시아를 단단한 토대 위에 세운 능력 있는 군주이자 온 나라를 피로 물들인 폭군이라는 두 가지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이반 4세. 번개처럼 빛나면서 벼락처럼 두려운 군주였다는 의미를 지닌 '뇌제(雷帝)'라는 별명은 그의 삶을 정확히 표현해주고 있는 듯해요.


[차르(tsar)]

슬라브계 여러 국가의 군주(왕)를 부르는 이름이에요. 라틴어 '카이제르'에서 유래했는데, 로마 황제를 일컫는 말이었죠. 18세기 표트르 대제 때 정식 칭호가 '임페라토르(황제)'로 바뀌었지만, '차르'는 이후에도 러시아 황제를 일컫는 관습적 명칭으로 사용됐답니다.


공명진 숭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