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한지로 감싼 스티로폼 조각들… 산업화 상처 치유해줘요
입력 : 2018.05.05 03:01
[전광영: WORKS 1975-2018 展]
세모난 입체 가득 채운 작품 '집합' 어릴 적 친척 한약방서 영감 얻었죠
천연·합성 대조로 세계적 작가 반열… 전광영의 43년 작품 세계 전시해요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을 100개쯤 모아 바닥 위에 겹겹이 이어 붙이면 어떤 모양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삼각김밥의 각진 부분이 두드러져 삐죽삐죽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 나겠지요.
전광영(74) 작가의 검은색 작품은 캔버스처럼 보이는 큰 네모 안에 작은 세모 모양 입체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마치 크고 작은 삼각김밥을 이어 붙인 것처럼 표면이 울퉁불퉁하답니다(작품1). 멀리서 보면 그림 같지만 입체 조형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전광영도 처음엔 그림을 그리다가 1995년부터 이런 식으로 입체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제목을 '집합(集合·Aggregation)'이라고 붙여 공개했는데, 곧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작품이 1998년 미국 시카고 아트페어에 출품됐을 때 유례없이 단번에 매진 기록을 낳는 등 전 세계로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 가면 오는 6월 5일까지 전광영의 1975년부터 최근 작품까지 관람할 수 있는 '전광영: WORKS 1975-2018' 전시를 볼 수 있어요.
전광영(74) 작가의 검은색 작품은 캔버스처럼 보이는 큰 네모 안에 작은 세모 모양 입체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마치 크고 작은 삼각김밥을 이어 붙인 것처럼 표면이 울퉁불퉁하답니다(작품1). 멀리서 보면 그림 같지만 입체 조형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전광영도 처음엔 그림을 그리다가 1995년부터 이런 식으로 입체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제목을 '집합(集合·Aggregation)'이라고 붙여 공개했는데, 곧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작품이 1998년 미국 시카고 아트페어에 출품됐을 때 유례없이 단번에 매진 기록을 낳는 등 전 세계로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 가면 오는 6월 5일까지 전광영의 1975년부터 최근 작품까지 관람할 수 있는 '전광영: WORKS 1975-2018' 전시를 볼 수 있어요.
그가 미국에 있을 당시 미술계에서는 '추상표현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었어요. 추상표현주의란 마치 화가의 온몸이 붓이 된 것처럼 물감으로 직접 화면 위에서 자신의 느낌을 끌어내는 그림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밑그림으로 완성한 뒤 색을 칠하는 기존 방식과는 조금 다르지요.
작품2에서 볼 수 있듯,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기 전광영은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하면서 당시 추상표현주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어요. 그뿐 아니라, 염색 공장에서 일했던 개인적인 경험 덕분에 천에 염색하는 기법도 그림에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통해 전광영은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배울 수 있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기만의 특성을 개발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어요.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드디어 한국에 돌아옵니다. 그러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1995년 늦은 봄이었어요. 감기 몸살로 약을 먹으려던 작가는 약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큰할아버지의 한약방을 떠올립니다. 한지(韓紙·닥나무 껍질 등으로 만드는 우리나라 고유 종이)로 감싼 뒤 꼬인 끈으로 묶은 약봉지가 한약방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모습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어요. 추억 속 이미지와 감성은 오직 전광영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고, 줄곧 그가 찾던 특별한 그 무엇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작가는 작품3에서 보는 것같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작품의 재료로 쓴 것은 한지로 된 우리나라의 고서(古書)인데, 옛 선비가 읽었던 책이든 어느 집안의 족보이든, 고서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지혜와 우리 조상이 살아온 생활의 흔적이 배어 있지요. 작가는 삼각형 모양으로 자른 스티로폼 조각을 고서의 한지로 싸고, 그것을 꼬아 만든 끈으로 동여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크기에 따라 적게는 1000여 개, 많게는 1만여 개 조각들로 꼼꼼한 계획 아래 '집합적인 입체'를 만들었어요.
한지는 천연 재료로 만든 전통적인 종이인데, 그것으로 싼 스티로폼은 공장에서 만든 합성 재료예요. 겉과 속이 이질적(異質的)이지요. 작품에 쓰인 스티로폼은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재료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 덕택으로 지금처럼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과다한 근로와 냉혹한 경쟁, 환경오염으로 인한 자연 파괴와 질병 등 부정적인 측면도 덩달아 얻었어요. 작가는 마치 한약사가 약재를 싸서 묶듯, 산업화가 초래한 상처들을 낫게 하려는 바람을 담아 하나하나 스티로폼을 포장했어요. 그래서 전광영의 작품에는 치유의 염원이 깃들어 있답니다.
최근에는 오미자의 붉은색과 치자의 노란색, 쪽의 푸른색 등 천연염료를 한지에 입히면서 작품의 색감이 이전에 비해 한결 화사해진 것을 볼 수 있어요(작품4). 이제는 어둠이 걷히고 이 땅의 주인공들이 환한 꽃길만 걷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