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부시·고르바초프, 1989년 몰타 유람선서 냉전 종식 알렸죠

입력 : 2018.04.27 03:00

[몰타 회담]

'총성 없는 전쟁' 이끌던 미·소 지도자, 중립국 몰타서 정상회담 가졌어요
군비 축소·경제협력 등 합의 이뤄
美北회담, '제2의 몰타 회담' 주목

내일 판문점에서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요. 이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간 미·북(美·北)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지요. 미국과 북한 정상 간 대화는 6·25전쟁 이후 처음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아주 높아요. 일부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회담이 제2의 몰타 회담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답니다.

1989년 몰타 해역의 유람선에서 미국 부시(오른쪽·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왼쪽) 서기장이 정상회담 만찬을 갖고 있어요.
1989년 몰타 해역의 유람선에서 미국 부시(오른쪽·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왼쪽) 서기장이 정상회담 만찬을 갖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오늘은 냉전(冷戰·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벌이던 대결) 시대를 종식시킨 미국과 소련 간 정상회담이었던 몰타 회담(미·소 정상회담)을 알아볼게요.

◇총성 없는 전쟁 끝낸 몰타 회담

몰타 회담(Malta summit)은 1989년 12월 2일과 3일 지중해 몰타 해역의 배 위에서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가진 정상회담이에요. 두 정상은 이 회담에서 동유럽의 민주화, 미국과 소련의 군비(군사 관련 비용) 축소, 경제협력 체제 만들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요. 1945년 이후 사사건건 대결을 벌이던 두 나라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총성 없는 전쟁'을 끝내자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거예요.

이 역사적 회담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에요. 196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이 몰타 회담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지요.

몰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간 정치·군사·외교·이념 대결인 냉전 시대에 접어들었어요.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경쟁, 우주 발사체 경쟁 등을 펼쳤지요.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중국 등도 잇따라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미국·소련 간 핵무기 경쟁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또 어느 이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개발도상국(제3세계)이 등장하면서 국제사회는 미국·소련의 '양극(兩極) 체제'를 벗어나 '다극(多極) 체제'로 흘러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더 이상 이념을 위해 엄청난 국력(國力)을 소모할 때가 아니며, 경제 발전과 성장을 우선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요. '데탕트(détente·긴장 완화) 시대'가 시작된 거예요.

이런 상황 속에 국제연합(UN)은 1969년 '핵 확산 금지 조약(NPT)'을 승인해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같은 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앞으로 베트남전쟁(1960~1975) 같은 전쟁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아시아 국가의 정치·외교 문제에 깊게 관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을 선언했어요. 이후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공산국가 중국의 UN 가입을 승인하는 등 변화한 모습을 보였어요. 1972년에는 닉슨 대통령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방문해 세계를 놀라게 했어요.

◇데탕트 시대를 열다

몰타에 세워진 몰타 회담 기념비.
몰타에 세워진 몰타 회담 기념비.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외교 철학으로 '노보에 미셀레니에(새로운 사고)'를 제시합니다. 미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핵심으로, 더 이상 미국을 소련의 주적(主敵)으로 생각하지 않고 경제성장과 안보를 함께 꾀하는 협력 국가라고 인식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는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리는 것보다,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정책을 통해 현실적인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1987년 미국과 사정거리(미사일 등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 1000~5500㎞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는 '중거리 미사일 협정'을 체결하며 다시 화해 분위기에 불을 지핍니다.

이후 몇 차례 미·소 정상회담을 거쳐 두 나라는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어요. 이러한 합의는 냉전 시대의 끝을 알리는 1989년 12월 몰타 회담으로 이어졌지요. 자본주의 서독과 사회주의 동독 사이를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였어요.

정상회담이 몰타에서 이뤄진 이유는 지중해 중앙에 있는 몰타공화국이 지리적으로 동과 서, 남과 북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데다, 19세기 영국 식민 지배를 받은 뒤 '비동맹 노선'을 선언하며 사실상 중립국처럼 남았기 때문이에요.

몰타 회담 후 미국이 주도한 국제기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반공산주의 군사동맹에서 유럽의 경제적 안정을 돕는 기구로 바뀌었고, 소련이 주도해 만든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해체 수순을 밟습니다. 1991년 7월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양국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장거리 핵무기를 점점 축소하는 협정도 체결했지요.

몰타 회담은 전 세계에 이념 대립의 시대는 가고 협력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회담이었어요. 조만간 열릴 미·북 정상회담을 몰타 회담에 비유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전 세계인들이 진정한 평화 시대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이 신(新)데탕트 시대를 이끄는 행사가 되기를 기대해볼게요.


윤서원 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