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세상 볼 수 없어도… 로드리고, 악보에 무한한 상상력 담았어요

입력 : 2018.04.21 03:01

[장애를 극복한 음악가들]

예술혼으로 한계 뛰어넘은 음악가들… 장애 딛고 생명력 넘치는 활동했죠
소아마비 펄먼, 바이올린 줄 끊기자 "지금 상황서 최선" 중단 않고 연주

오늘(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에요. 예술의 세계가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신체와 정신이 불편했던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결과물로 큰 감동을 준다는 점이지요. 클래식 분야에서도 심각한 장애를 극복하고 멋진 예술가로 살아온 사람이 많아요. 오늘은 그들의 인간 승리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해요.

오랫동안 TV 주말 영화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프로그램 첫 부분이나 끝 부분에 연주되는 상징적 주제곡)으로 사용된 작품이 있어요. 원곡은 '아란후에스(Aranjuez·스페인 왕궁 이름)'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기타 협주곡입니다. '아란후에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이 시그널 음악은 몇 초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아름다운 곡을 만든 음악가는 스페인의 호아킨 로드리고(Rodrigo·1901~1999)입니다.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서 태어난 로드리고는 네 살 때 위험한 전염병을 앓았어요. 그 후유증으로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잃는 불행을 겪었지요. 형제 10명 중 막내였던 로드리고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연극 공연을 보러 가곤 했는데, 앞을 볼 수 없는 그가 관심을 가진 건 연극에 사용된 흥미로운 음악이었어요.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우며 학업을 이어가던 그는 1927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당대 최고 음악가들과 교류하면서 예술 세계를 살찌웠어요.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면서 잠시 활동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다시 일어나 기타, 하프, 바이올린, 첼로 등을 위한 협주곡과 가곡(歌曲·시에 곡을 붙인 노래)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많이 남겼죠. 움직임이 불편했어도 로드리고의 작품은 어느 곡이나 에너지가 넘치고 신선한 악상(樂想·음악의 주제 등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제약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음악 속에 숨겨진 무한한 상상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죠.

함께 공연을 많이 펼쳤던 그뤼미오와 하스킬(오른쪽).
함께 공연을 많이 펼쳤던 그뤼미오와 하스킬(오른쪽). /조선일보 DB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Haskil·1895~1960)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아직도 열혈 팬이 많은 연주자입니다. 특히 모차르트 음악 해석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죠. 그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는데, 척추 측만증으로 허리가 굽어 큰 고통을 겪었어요. 또 열여덟 살에 찾아온 세포 경화증(감각·운동 장애 등을 보이는 난치성 질병)이라는 질병 때문에 4년간 석고 붕대를 하고 지냈지만 끝내 회복되지 않았죠.

하스킬은 병약한 체질과 소극적 성격 때문에 젊었을 때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유명 음반사인 필립스 레이블(음반사)과 녹음 작업을 시작하면서 뒤늦게 전성기를 맞습니다. 전쟁 전부터 친분이 있던 음악가들과 연주를 재개했지요. 존 바비롤리,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등 명지휘자들과 인상적 연주를 펼쳤고, 특히 말년에 벨기에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녹음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는 지금도 최고 명반으로 남아있어요.

하스킬의 연주는 부드러운 음색, 살아 숨쉬는 듯한 영혼의 울림이 특징인데요. 건강상 많은 불행을 겪었지만 하스킬은 항상 신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요. 1960년 12월 하스킬은 벨기에 브뤼셀의 기차역에서 내리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고 그 뒤 증상이 악화돼 결국 세상을 떠났어요.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그는 "내일 연주를 못 하게 됐으니 그뤼미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했는데, 이 말이 유언이 되었어요.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살았던 하스킬을 기억하기 위해 1963년 그의 이름을 딴 피아노 콩쿠르가 스위스에서 시작됐지요. 지난 2005년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이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기도 했어요.

연주 내내 양손도 모자라 온몸을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는 직업이 지휘자죠. 그런데 지휘자 중에도 신체 장애를 갖고 활동했던 인물이 있었어요. 바로 영국의 제프리 테이트(Tate·1943~2017)입니다. 작년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지만 그로부터 2개월 후인 2017년 6월 이탈리아에서 연주 리허설을 하다 쓰러져 숨을 거둔 명 지휘자이지요.

테이트는 어려서부터 척추 장애를 앓아 지팡이 없이는 걷기가 힘들었어요. 원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음악가가 되기 위해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단 연습 지휘자로 들어갔고 훗날 상임 지휘자까지 올랐지요. 그는 고전파 레퍼토리(연주 곡목)를 즐겨 연주했는데요. 특히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모차르트 교향곡 전집은 높은 완성도로 클래식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음반이에요.

상반신이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어 의자에 앉아 지휘했지만 테이트의 해석은 늘 생동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불편한 자세에서 어떻게 지휘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간단하죠. 오른손으로 지휘봉을 잡으면 됩니다."

1958년 열세 살이던 이츠하크 펄먼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공연을 마치고 격려받는 모습이에요.
1958년 열세 살이던 이츠하크 펄먼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공연을 마치고 격려받는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대표적 장애(소아마비) 음악가로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Perlman·73)의 일화도 감동적입니다. 어느 공연 무대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던 펄먼의 바이올린 줄이 갑자기 끊어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보통은 새로운 줄을 바꿔 끼우지만, 그날 펄먼은 지휘자에게 계속 연주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남아있는 세 줄만으로 끝까지 연주했지요.

공연이 끝난 후 박수 갈채를 보낸 청중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때로는 부족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 불만보다는 감사를, 내가 처한 상황에 좌절보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는 말 같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