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백인에게 자리 양보 안 했다"고 체포… 흑인 인권 운동 촉발했죠

입력 : 2018.04.20 03:08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

링컨의 '흑인 노예 해방 선언' 불구 100여 년간 美 인종차별 여전했어요
백인 우대 규칙 어긴 로자 파크스, '버스 안 타기 운동' 이끌며 승리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흑인들이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매장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체포돼 논란이 일고 있어요. 스타벅스 CEO가 직접 사과를 했지만, 이번엔 LA 스타벅스 매장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화장실 사용을 거부 당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사태가 커지고 있지요.

이처럼 미국 내 흑인 인권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랍니다. 인종차별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미국의 대표적 흑인 인권 운동에 불을 지핀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Montgomery bus boycott)'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노예 해방 이후 계속된 인종차별

많은 사람이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링컨 대통령의 '흑인 노예 해방 선언'으로 미국 내에서 흑인에 대한 '공식 차별'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흑인들은 그 뒤에도 100여 년간 각종 법과 관습에 따라 차별받아왔답니다. 특히 남부 지역에서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을 제정해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등 지속적으로 흑인을 차별했어요.

짐 크로 법에 따르면 흑인은 백인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었어요. 흑인은 백인과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도 없었고, 같은 수돗가에서 물을 마실 수도 없었어요. 수돗가에는 백인 전용(White Only), 유색인 전용(Colored) 팻말이 붙어 있었지요.

흑인들은 때때로 저항했지만 그 움직임은 체계적이지 못했어요. 오히려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은 저항하는 흑인들 집에 불을 지르고 흑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지요. KKK단은 '신이 자기 모습을 본떠 창조한 것은 오직 백인뿐'이라며 흑인이 다니는 교회에도 테러를 가했어요.

◇흑인들 불만 폭발시킨 인종 분리 버스

20세기 중반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市)에서는 '인종 분리 버스'가 운영되고 있었어요. 버스 규칙은 까다롭고 엄격했어요. 버스 맨 앞줄은 '백인 전용'이었고, 흑인은 뒤쪽 몇 줄에만 앉을 수 있었죠. 흑인들은 백인 전용석이 텅텅 비어있어도 앉을 수 없었어요. 버스 중간 줄은 백인에게 우선권이 있었지만 자리가 비어있으면 흑인도 앉을 수 있었는데, 만약 백인이 오면 흑인은 누가 됐든 자리를 양보해야 했어요.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버스 기사는 흑인에게 자리 양보를 명령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듣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 그 흑인을 체포할 수 있었지요.흑인들은 이러한 규정에 불만이 컸는데, 1955년 벌어진 한 사건으로 누적된 분노가 폭발하고 맙니다.

1956년 2월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촉발한 로자 파크스가 경찰에 체포된 모습.
1956년 2월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촉발한 로자 파크스가 경찰에 체포된 모습. /위키피디아

1955년 12월 1일 일요일, 로자 파크스(Parks·1913~2005)라는 한 흑인 여성이 인종 분리 버스 중간 줄에 앉아 집에 가고 있었어요. 버스가 극장 앞에 멈춰 서자 백인 승객들이 한꺼번에 올라탔고, 그중 한 명이 자리를 찾지 못해 서 있었죠. 버스 기사는 중간 줄에 앉은 로자에게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지시했어요.

하지만 로자는 기사 말을 따르지 않았어요. 10여 년 전 인종 분리 버스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 강제로 버스에서 하차당했던 로자는 부당한 규칙을 따르고 싶지 않았죠. 게다가 그는 미국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에서 흑인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끝까지 자리를 양보하지 않자 로자는 경찰에 체포됐고 결국 재판에 넘겨지고 맙니다.

NAACP는 로자 사건을 계기로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부터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시작했어요. "버스 승객의 4분의 3이 흑인인데,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다음번에는 당신, 당신 딸, 당신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했지요.

몽고메리에 사는 흑인 3만5000명이 이 운동에 적극 동참했어요. 흑인 택시 기사들은 버스 차비만 받고 흑인들을 태워주었고, 덕분에 흑인들은 택시를 타거나 걸어다니는 방법으로 버스를 타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백인들이 주로 운영하던 버스 회사들은 큰 손실을 입었지요.

◇인종주의와 끈질긴 싸움

체포 당시 로자가 앉아 있던 버스 중간 줄에 착석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체포 당시 로자가 앉아 있던 버스 중간 줄에 착석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판 결과 로자가 벌금형을 선고받자, 흑인들은 분노했어요. NAACP는 '몽고메리 인권 위원회'라는 조직을 꾸리고, 위원장으로 20대 젊은 목사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선출했어요. 몽고메리 인권 위원회는 흑인들을 불러 모아 각종 강연회와 토론회를 열고 인종 분리 버스가 위헌이라는 소송도 제기했어요. 버스 안 타기 운동도 계속 이끌고 갔지요.

흑인들이 합법적이면서 체계적으로 저항하자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격분했어요. KKK단 회원도 빠르게 늘었고, 경찰은 흑인이 사소한 법을 어겨도 트집 잡아 체포해갔어요. 킹 목사의 집을 비롯한 흑인 교회에도 테러 위협이 잇따르자, 킹 목사는 "그들은 언젠가 나를 죽일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내 횃불을 이어받아 이 나라 모든 국민이 피부색과 상관없이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그날이 올 때까지 싸워야 한다"며 평화롭게 운동을 계속하자고 당부했어요.

1956년 12월 20일. 미국 최고 연방법원은 '버스에서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어요.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이 1년 1개월 만에 승리로 끝난 거예요. 몽고메리 흑인들은 다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더 이상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됐어요. 용기를 얻은 흑인들은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한 운동을 계속했고, 1964년엔 인종·민족·국가·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연방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이 제정되었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인에게 버스 안 타기 운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당당하게 지킬 때 자신의 삶뿐 아니라 이웃의 삶, 공동체의 삶도 바뀔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짐 크로 법(Jim Crow Law)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으로 1876년부터 미국 남부 11개 주에서 시행됐어요. ‘짐 크로’는 1830년대 미국 코미디 뮤지컬에서 백인 배우가 연기한 바보 흑인 캐릭터 이름이에요. 그러나 1964년 민권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투표권법이 제정되면서 폐지됐지요.




 

공명진·숭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