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점·동그라미로 그린 하늘과 땅… 세 아들 향한 그리움 담았죠
입력 : 2018.04.14 03:00
[국립현대미술관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展]
1세대 서양화가 이성자 탄생 100주년
가족과 이별 후 파리서 첫 미술 공부… 동양적 관념 담은 음양 즐겨 그렸죠
직물로 짠 듯 촘촘한 추상화 개척해
캄캄한 밤 은하수(銀河水)를 본 적이 있나요? 맑은 밤하늘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수많은 별의 무리인데, 은빛 강(은하수)이나 흩뿌려놓은 우유(Milky way)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우리에겐 '견우와 직녀' 이야기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견우(염소자리 β별)와 직녀(거문고자리 α별)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다는 줄거리예요.
프랑스에서 활동한 서양화가이자 판화가였던 이성자(1918~2009)는 우리 전설 속 직녀와 같은 화가예요. 아이들을 두고 한국을 떠나야 했고, 프랑스 파리에서 매일 아이들을 그리워했어요. 그는 직녀가 베를 짜듯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멋진 모습으로 아이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답니다.
프랑스 남쪽 지역 투레트에는 산이 아름답고 날이 좋으면 저 멀리 지중해까지 보이는 언덕이 있는데 그 위에 이성자의 작업실이 있어요. 작업실 이름이 바로 '은하수'입니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가면 오는 7월 29일까지 이성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을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세 아들의 어머니로 살던 이성자는 남편과 헤어진 뒤 아이들을 모두 남편이 거두어가자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를 탔어요. 그때가 1951년, 그의 나이 33세 때 일입니다. 파리에 대한 첫인상은 놀라웠어요. 그곳은 살아 있는 예술품 그 자체처럼 보였으니까요. 이성자는 미술관을 구경하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유명 예술 학교인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에 입학해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했어요.
프랑스에서 활동한 서양화가이자 판화가였던 이성자(1918~2009)는 우리 전설 속 직녀와 같은 화가예요. 아이들을 두고 한국을 떠나야 했고, 프랑스 파리에서 매일 아이들을 그리워했어요. 그는 직녀가 베를 짜듯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멋진 모습으로 아이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답니다.
프랑스 남쪽 지역 투레트에는 산이 아름답고 날이 좋으면 저 멀리 지중해까지 보이는 언덕이 있는데 그 위에 이성자의 작업실이 있어요. 작업실 이름이 바로 '은하수'입니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가면 오는 7월 29일까지 이성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을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세 아들의 어머니로 살던 이성자는 남편과 헤어진 뒤 아이들을 모두 남편이 거두어가자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를 탔어요. 그때가 1951년, 그의 나이 33세 때 일입니다. 파리에 대한 첫인상은 놀라웠어요. 그곳은 살아 있는 예술품 그 자체처럼 보였으니까요. 이성자는 미술관을 구경하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유명 예술 학교인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에 입학해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했어요.
하늘은 거의 보이지 않고 눈 덮인 운동장과 나지막한 학교 건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그리고 한쪽에는 벌거벗은 겨울나무가 마치 작가의 마음을 말해주듯 홀로 서 있습니다. 이 그림은 1956년 파리 국립미술협회전에 당선돼 큰 관심을 받았어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작가는 그림에 더욱 몰두했습니다. 〈작품2〉는 '내가 아는 어머니'라는 제목의 그림인데, 어머니라는 사람을 그렸다기보다는 모든 생명의 보금자리인 땅을 그린 것 같아요. 그림이지만 마치 직녀가 베를 짜서 만든 직물처럼 점과 선이 촘촘하고 두껍게 배열해 있습니다.
작품 제목에 쓰인 '어머니'라는 단어는 여러 겹의 뜻을 지니고 있어요. 작가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 모국(母國)일 수도 있고, 또 세 아들의 어머니인 작가 자신일 수도 있지요. 그뿐 아니라 터를 잡아 씨를 뿌리고 계속 일구어 가야 할 이성자 자신의 미술 세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성자는 한국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파리에 공부하러 갔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프랑스에 가서 처음 미술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에요. 당시만 해도 여성, 그것도 이혼하고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외국에 온 여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지요. 그래서 이성자는 파리에 있는 다른 한국 화가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고, 대신 여러 나라의 화가들을 만나며 국제적이고 다양한 화풍을 익힐 수 있었어요. 그는 음(陰)과 양(陽), 대지와 하늘, 은하수와 우주 같은 주제를 좋아했고, 이러한 동양적 주제를 두꺼운 점과 동그라미로 묘사하는 독특한 화풍으로 프랑스에서 유명세를 먼저 얻었답니다.
1965년 한국과 프랑스 간 '한·불 문화·기술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자, 이성자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첫 귀국 전시회를 열었지요. 그 당시 파리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현 러시아)의 영공(領空·영토 위 하늘)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북극과 알래스카를 거쳐 가야 했어요.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작가는 눈 덮인 산과 오로라(극지방에서 대기가 형형색색 영롱한 빛을 내는 현상)를 보며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이를 훗날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작품3〉이라는 그림으로 남겼답니다. 작가는 그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속으로 수백 번이나 이 길을 오갔을 거예요.
'투레트의 밤'〈작품4〉이라는 그림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 정원을 그렸어요. 한가운데 있는 빨갛고 동그란 점이 작업실 '은하수'이고, 그를 둘러싼 커다란 동그라미가 정원인가 봐요. 작업실 '은하수'는 탁 트인 곳에 있어서, 아마도 이곳의 정원은 저 멀리 하늘에까지 맞닿는 모양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작가는 은하수의 수많은 별 중 하나가 되어 자신의 작업실과, 지금은 노인이 된 자신의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