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삼국통일 완성한 문무대왕, 왜 경주 앞바다에 묻혔을까요?

입력 : 2018.04.11 03:06

[문무대왕(文武大王)]

나당전쟁으로 당나라도 몰아냈죠
"죽은 후에도 나라 지키겠다" 유언… 동해 큰바위에 무덤 만들어졌어요
해적 무찌른 구축함, 대왕 이름 땄죠

얼마 전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灣)의 가나 해역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우리나라 어선이 나이지리아 해적으로 추정되는 무장 세력에게 피랍(납치당함)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러자 우리 정부는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에 있던 '문무대왕함'을 급히 파견해 우리 국민들을 구출하기로 했답니다.

문무대왕함은 2003년 선보인 우리나라 최초의 스텔스(레이더 등 탐지 기능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기능) 구축함(대형 함정)이에요. 2011년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자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통해 우리 선박과 선원들을 구출한 청해부대 소속 특수요원들이 타고 있지요. 그렇다면 문무대왕(이하 문무왕)이 누구이기에 그의 이름을 딴 구축함까지 있는 걸까요?

◇당나라 공격을 명령하다

661년,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김유신 장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태종 무열왕 김춘추(603~661)가 세상을 떠났어요. 이후 그의 맏아들 법민이 왕위에 올랐지요. 그가 신라의 제30대 문무왕(626~681)이에요.

665년, 고구려의 실력자인 연개소문이 죽고 고구려가 내분에 휩싸이자, 문무왕은 당나라 군대와 다시 힘을 합쳐 고구려를 멸망시켰어요. 이후 당나라가 옛 백제와 고구려 영토를 요구한 것은 물론 신라까지 속국으로 만들고 우리나라를 직접 지배하려고 했어요. 그러자 문무왕은 당나라에 맞서 싸우기로 하고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어요.

"당초 당나라가 고구려 평양 이남과 백제 땅을 우리에게 주기로 했는데, 이 약속을 깨고 우리 신라 땅까지 넘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 땅에서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진정한 통일을 이루어야겠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정서용

670년, 문무왕은 옛 고구려 영토인 요동 지역으로 신라 군대를 보내 당나라군을 공격했어요. 고구려 출신 장수 고연무도 함께했지요. 이렇게 시작된 신라와 당나라 간 전쟁을 '나당(羅唐)전쟁(670~676년)'이라고 불러요.

신라의 선제공격을 받은 당나라는 대규모 군대를 보내 신라와 전투를 벌였어요. 신라는 672년 황해도 석문 전투에서 당나라군에 뼈아픈 패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675년 임진강 하구 천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당나라 수군(水軍)을 물리쳤지요. 이어 지금의 경기도 양주 지역인 매소성 전투에서는 20만 당나라 대군을 크게 무찌르면서 전세는 신라로 기울기 시작했답니다.

◇삼국 통일을 이루다

676년, 7년에 걸친 나당전쟁의 마침표를 찍는 전투가 기벌포(지금의 충남 서천)에서 벌어졌어요. 설인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금강 하구인 기벌포를 공격했는데, 신라 수군이 당나라 군대와 22차례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며 결국 승리를 거둡니다. 이 전투를 끝으로 당나라 세력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신라는 진정한 삼국 통일을 이루었어요.

비록 옛 고구려 시절 영토였던 만주 지역을 되찾지 못하고 대동강에서 강원도 원산만 이남에 이르는 영토만을 차지했지만 우리 민족이 스스로 이룬 최초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태자 시절부터 김유신 장군과 함께 전쟁터를 누비며 왕이 된 후에도 고구려 정벌, 나당전쟁 등으로 쉴 틈 없이 전쟁을 치른 문무왕은 삼국 통일을 이룬 후 나라의 기틀을 닦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펼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지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 했던 왕

"과인(寡人·임금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은 어지러운 운을 타고 태어나 전쟁의 시대를 만났다. 서쪽(백제)을 정벌하고 북쪽(고구려)을 토벌해 영토를 평정했고, 배반하는 자를 정벌하고 협조하는 무리와는 손을 잡아 멀고 가까운 곳을 모두 평안히 했다."

고려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나오는 문무왕의 말이에요. 이처럼 문무왕은 전쟁터에서 활약하다 병을 얻어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째인 681년 세상을 떠났어요. '삼국사기'에는 여러 신하가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 어귀 큰 바위에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요.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는 동해 가운데 큰 바위에 문무왕의 장사를 지낸 이유가 왕의 유언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과인은 죽은 후에도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지키겠소."

문무왕의 장사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장소가 바로 경북 경주시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문무대왕릉)이에요. 다시 말해 해적을 무찌르는 '문무대왕함'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뜻을 보여준답니다.

☞무의공 이순신 기리는 '이순신함'

우리 해군은 구축함·잠수함 이름을 문무대왕뿐 아니라 광개토대왕, 충무공 이순신 등 역사 속 위대한 영웅의 이름을 따 지었어요. 그런데 잠수함 ‘이순신함’은 충무공 이순신 이름을 딴 것이 아니라 그의 부하인 ‘무의공 이순신’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해요. 충무공과 이름이 똑같은 인물로, 1598년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하자 그를 대신해 조선 수군을 지휘했어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