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안개와 결합한 석탄 매연, 런던 시민 공격… 1만2000명 사망했죠

입력 : 2018.04.06 03:08

[런던 스모그 사건]

영국, 13세기부터 대기오염 심각해… 1952년 최악 스모그 사건 발생했죠
심장 발작·호흡기 장애 사망 잇따라… '청정 대기법'으로 재난 극복했어요

반가운 봄이지만 전국 곳곳이 '미세 먼지' 때문에 말썽이에요. 지난달 말부터는 미세 먼지 '나쁨' 기준이 공기 1㎥당 51㎍(마이크로그램) 이상에서 36㎍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올해 미세 먼지 '나쁨' 일수가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0만명당 미세 먼지로 인한 '조기(早期) 사망자'는 2005년 276명에서 2015년 361명으로 껑충 뛰었어요. 정부에서 미세 먼지를 줄일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그런데 66년 전 영국 상황도 우리와 비슷했어요. 아니, 우리보다 더 심각했죠. 오늘은 런던 하늘을 잿빛으로 만들었던 스모그 사건과 더불어 영국이 환경 재난을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런던을 잿빛 하늘로 만든 스모그

역사적으로 영국의 수도 런던은 짙은 안개와 석탄 사용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각한 도시였어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1273년, 영국 왕 에드워드 1세는 세계 최초로 대기오염 방지를 위해 석탄 사용량을 줄이는 칙령(왕이 내린 명령)을 발표할 정도였지요. 그리고 이를 위반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어요. 이처럼 영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땔감 대신 석탄을 연료로 많이 사용했고, 거기서 생기는 엄청난 매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18세기 석탄을 연료로 쓰는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본격적인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됩니다. 석탄 사용이 늘면서 대기오염이 더욱 심각해지자, 1866년 영국 의회는 매연을 줄이기 위한 '위생법(Sanitary Act)을 제정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큰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수차례 스모그(smog·연기를 뜻하는 'smoke'와 안개를 뜻하는 'fog'의 합성어)가 발생했지요. 1948년에는 스모그에 따른 사망자가 300여 명이나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1952년 발생한 스모그에 비하면 그 정도 수치는 새 발의 피였지요.

1952년 12월 4일 목요일, 런던의 아침은 상쾌했어요. 그런데 오후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느닷없이 바람이 멈추고 습도가 높아지면서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어요. 템스강을 오가던 화물선이 멈추고 도로에서는 교통사고가 잇따라 일어났지요. 추돌 사고 위험 때문에 운전자들은 차량을 길에 방치하고 걸어가야 했어요.

1950년대 스모그가 가득한 영국 런던 전경. 다리 건너 빅벤 시계탑도 흐릿하게 보여요.
1950년대 스모그가 가득한 영국 런던 전경. 다리 건너 빅벤 시계탑도 흐릿하게 보여요. /게티이미지코리아

런던 시민들은 태연하기만 했어요. 항상 겪어왔던 '전형적 런던 초겨울 날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런던은 대낮에 경찰이 횃불을 들고 교통 지도를 해야 했을 정도로 스모그가 심각했지만, 시민들은 궂은 날씨 때문에 스포츠 경기나 오페라 공연이 취소됐다고 불평하는 수준이었을 뿐 대기오염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당시 영국은 가정·기업·공장은 물론 대부분 운송 수단이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별다른 공기 정화 장치 없이 대기 중에 곧바로 배출된 석탄 매연은 짙은 안개와 결합해 스모그를 만들었지요. 그렇게 안개 속으로 스며든 아황산가스는 황산으로 변해 런던 시민들의 호흡기를 공격했어요.

심각한 스모그가 발생한 날 저녁, 런던 시민들은 깜짝 놀랐어요. 집 청소를 하다 끈적끈적하고 시커먼 물질이 걸레에 묻어 나온 것을 보고 경악했죠. 식사를 준비하거나 빨래를 널던 사람들은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갔어요. 병원은 몰려든 응급 환자들로 포화 상태가 됐고, 쓰러진 사람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갔지요.

◇영국의 대기오염 방지 대책

최악의 스모그는 12월 9일 아침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졌어요. 하지만 스모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2주 동안 호흡기 장애와 질식 등으로 런던 시민 4000여 명이 사망했지요. 이듬해에는 만성 폐 질환으로 8000여 명이 더 사망하면서 1만 2000여 명이 스모그로 생명을 잃었어요. 사망자들은 노인, 어린이, 환자들처럼 면역력과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이었지요.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나서야 영국 정부는 근본적 대응책을 모색하기 시작했어요. 대기오염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영국은 특별조사위원회인 비버위원회를 만들고, 1956년 청정 대기법(British Clean Air Act)을 제정했어요. 이 법은 런던 스모그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는데, 가정용 난방 기구에서 발생하는 연기나 재, 먼지 등을 억제하는 최초 법안이었어요. 또 가정에서 난방용으로 석탄 대신 가스나 석유, 무연탄, 전기 등을 사용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주는 내용도 포함했지요.

'무연 지구(Smokeless zone)'라고 불리는 오염 물질 규제 지역도 만들었어요. 지정된 지역 내에서 오직 정부가 허가한 연료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이 법은 석탄 사용을 줄이고 런던 대기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어요.

1962년, 런던에서 또다시 스모그 현상이 나타났어요. 이때 기상 상태는 10년 전과 매우 비슷했지만 피해 규모는 훨씬 줄어들었지요. 이는 정부가 대기오염의 위험성을 예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시민들을 적절히 대피시킨 데다, 가정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사용량을 늘리고 공장·발전소를 도시 외곽으로 이전시켰기 때문이었어요. 매연 농도 역시 1952년과 비교했을 때 90% 이상 줄었어요.

런던 스모그 사건은 전 세계 각국에 대기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어요. 특히 영국인들은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정부에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했죠. 그 결과 오늘날 런던은 세계 대도시 중에서 비교적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는 도시가 됐답니다. 런던 스모그 사건처럼 우리도 대기오염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고 장기적이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나쁜 공기 때문에 시민들이 고통받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로스앤젤레스 스모그 사건

런던 스모그 사건과 함께 대표적인 스모그 사건으로 꼽히는 것이 1943년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스모그 사건이에요. 런던 스모그가 석탄 연소로 발생하는 아황산가스 때문에 발생했다면, 로스앤젤레스 스모그는 자동차가 배출하는 질소 산화물과 탄화수소 등이 강렬한 태양빛에 의해 화학 반응을 일으켜 발생했지요. 그래서 이 스모그를 런던 스모그와 구분해 ‘광화학 스모그’라고 불러요.

공명진·숭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