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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 인물] 점·선 그림으로 유명… 현존 국내 작가 중 작품 값 최고

입력 : 2018.04.04 03:02

이우환

이우환 작가
/장련성 객원기자

최근 세계적인 거장 이우환(82·사진) 작가의 야외 조각품이 훼손됐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부산시립미술관 정원에 있는 이우환 작가의 철판 조각 작품 '관계항―길모퉁이'에 누군가 뾰족한 도구로 긁어 놓은 듯한 여러 낙서가 발견된 것이지요. 이 작품 가격은 현재 7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경찰은 방범 카메라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확인 중이라고 합니다.

이우환 작가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작가로 평가받고 있어요. 그의 작품 상당수가 경매시장에서 10억~20억원대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요. 이는 현재 살아 있는 국내 작가 중 높은 수준이라고 해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전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지요.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 작가는 대여섯 살 때부터 시(詩)와 글, 그림을 배우고 고교 시절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을 만큼 문학을 사랑하는 청년이었어요. 서울대 미대 진학 후 진로를 놓고 잠시 방황하다 우연히 일본을 방문한 길에 유학을 결심했다고 해요. 니혼대 철학과에 편입한 이우환 작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물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는 훗날 그의 작품 세계를 만드는 토대가 됐지요.

그의 초기 작품 '관계항'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자연 그대로의 돌 밑에 산산이 깨어진 유리판이 있습니다. 이우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유리는 잘 깨어지고 돌은 파괴적이라는 고유의 특성을 드러내 보였어요. 해석은 관람객들에게 맡겼지요.

이런 식으로 이우환 작가는 일본의 획기적인 미술 운동인 '모노파(物派)'를 주도하며 명성을 얻었답니다.

대중에 많이 알려진 대표작은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시리즈예요. 1973년 도쿄화랑 개인전에 처음 선보인 작품인데, 붓에 물감을 묻혀 그 물감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점 또는 선을 그려 보이는 독창적인 작업이지요. 두 시리즈 모두 한쪽 가장자리에서 다른 쪽 가장자리까지 붓을 다시 물감에 담그지 않고 점이나 선을 그리기 때문에 물감의 농도가 갈수록 점점 옅어져요. 이를 통해 이우환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제작 과정의 중요성, 어떤 존재의 탄생과 소멸에 이르는 본질적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여백이 많으면서도 매우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에 위조작도 많았어요. 지난 2016년에는 그의 작품을 둘러싸고 위조범은 '내가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우환 작가가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요. 당시 이우환 작가가 한국 언론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작가한테 어떻게 조국이 이렇게 대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는데요. 이번 조각품 훼손 사건으로 이우환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