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경제 불안 속에 움튼 극단적 민족주의… 무솔리니 독재 낳았죠
[무솔리니와 파시즘]
초등 교사 출신 伊 독재자 무솔리니 1922년 쿠데타로 파시즘 정권 수립
2차 대전 후 히틀러와 함께 몰락… 최근 극우정당 득세로 전 세계 불안
얼마 전 이탈리아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에서 극단적인 우파 정당들이 승리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이민자 추방을 주장하는 극우 세력이 득세하자 외국 언론은 '파시즘(전체주의·국수주의)'을 내세웠던 무솔리니(Mussolini·1883~1945)가 이탈리아에 다시 등장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답니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20세기 초 유럽을 비정상적인 광기(狂氣)로 몰아넣었던 독재자거든요. 오늘은 무솔리니와 파시즘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선전·선동에 능했던 무솔리니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는 스위스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어요. 무솔리니는 논리적인 이론으로 대중을 설득하기보다는 과격하고 감정적인 연설과 글, 격정적인 몸짓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지요. 대중을 이끄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그는 곧 이탈리아 사회당 기관지인 '아반티(전진)'의 편집장이 됐어요.
- ▲ 1935년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추종자들의 모습이에요. 손을 위로 들어 올리는 로마식 경례를 하고 있어요./위키피디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참전(전쟁 참여)에 반대하는 논조로 글을 썼어요.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자본주의 국가들 간 영토 야욕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고 봤거든요. 하지만 이탈리아가 영국·프랑스 등 연합국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하기로 하자, 갑자기 입장을 바꿔 참전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그는 사회당에서 제명당하고 편집장도 그만두게 되었지요. 이에 무솔리니는 '포폴로 디탈리아(이탈리아 인민)'란 신문사를 세우고 우파적 주장을 펼치는 글들을 게재하기 시작했어요.
원래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어요. 하지만 전쟁이 가열되자 동맹국(독일·오스트리아 등) 측과 연합국(영국·프랑스 등) 측은 이탈리아 같은 중립국들을 경쟁적으로 포섭하기 시작했지요. 19세기 말에야 겨우 통일 국가를 이뤄낸 이탈리아는 연합국에 가담하기로 했어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해외에 거의 식민지를 갖지 못했던 이탈리아는 그 대가로 일정한 영토 보상을 받기로 했어요.
전쟁은 연합국 승리로 끝이 났어요. 유럽은 평화를 되찾았지만 전례 없는 대규모 전쟁으로 잿더미가 됐지요. 실업자가 대거 발생하고 물가가 크게 오르는 인플레이션 현상도 심각했어요. 더구나 이탈리아는 승전국임에도 전쟁 승리에 기여한 점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당초 약속받았던 영토 중 일부만 보상받는 등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았어요.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선 사회에 대한 불만과 과격한 민족주의 열기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결국 1919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전쟁 후 혼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유주의 정당들이 패배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점점 커져가는 사회주의 세력과 정치·경제적 불안 속에서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앞세운 파시스트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전체 위해 개인 희생하는 파시즘 세우다
1919년 무솔리니는 정권을 잡기 위해 이탈리아 내 극우 세력들을 모두 모아 '파시 디 콤바티멘토(전투단)'라는 조직을 만들었어요. 이탈리아어로 '묶음'을 뜻하는 이 '파시(fasci)'에서 바로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탄생했지요. 이들은 검은 셔츠를 입고 손을 위로 올리는 로마제국식 경례를 하는 등 열렬한 민족주의로 무장했어요.
- ▲ 1936년 연대를 선언하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모습.
청년 계층까지 흡수하며 광범위한 대중 정당으로 개편한 국가 파시스트당은 신문사를 습격하는 등 폭동을 일삼으며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반파시스트 정치인들을 공격합니다. 이 과정에서 무솔리니의 선전·선동 연설이 큰 힘을 발휘했지요. 결국 1921년 총선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138석, 파시스트당이 35석을 얻었어요. 당시 사회주의 정당이 사회당, 공산당, 통일사회당으로 분열돼 있었기에 주도권은 파시스트당에 넘어갔지요.
파시스트당 지도자로서 정치적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무솔리니는 1922년 10월 28일 '검은 셔츠단'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이에 당시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무솔리니에게 총리직을 제안하면서 무솔리니의 쿠데타는 이틀 만에 성공을 거뒀지요. 그리고 10월 30일, 세계 최초의 파시즘 국가인 '무솔리니 내각'이 탄생했어요.
이후 무솔리니는 언론을 탄압하고, 노동조합을 해체하며, 파시스트당 외 모든 정당을 폐지하는 등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했어요. 또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1935), 파시즘 세력을 확대하겠다며 스페인 내전(1936~1939)에 간섭을 했지요. 또 독일과 일본에 이어 1937년 국제연맹까지 탈퇴하며 국제 질서에서 벗어났답니다.
히틀러도 손을 올리는 로마식 경례를 사용하는 등 무솔리니를 많이 모방했어요. 그가 이끈 나치당은 독일 대중의 불안과 공포, 극단적 인종주의를 이용해서 의석수를 늘려 갔지요.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는 독일 편에 가담했어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는 갈수록 미국·영국 등 연합국 쪽으로 기울었지요. 1945년 4월 28일 무솔리니는 연합국 유격대에 붙잡혀 총살을 당했고, 이틀 후 히틀러는 자신의 거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폭력을 정당화한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놀랍게도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이뤄진 것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며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답니다.
☞스페인 내전
1936년 2월 스페인에 사회주의·무정부주의자들이 힘을 합친 ‘인민 전선 정부’가 세워지자, 군부가 이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켰어요. 독일·이탈리아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반정부군을 지원했고, 소련은 인민 전선 정부군을 지지했지요. 내전은 점차 정부 측에 불리하게 돌아갔고 1939년 3월 수도 마드리드가 함락되면서 반정부군이 승리를 거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