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부모가 관료면 자식도 자동 등용… '문벌 귀족' 만들었죠

입력 : 2018.03.28 03:11

[음서 제도]

부모가 공 세우거나 5품 이상이면 그 자손들 관직에 특별 채용했어요
최승로 '시무 28조' 정식 제안… 조선시대 혜택 줄자 과거제로 몰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공기업인 강원랜드에 부정한 방법을 써서 합격한 직원 226명을 사실상 해고하라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수년 전 강원랜드가 취업 청탁 등을 받고 자격 안 되는 지원자들을 '낙하산 채용'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 거예요. 이처럼 공공기관 채용이 부정으로 얼룩져 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언론에선 '현대판 음서(蔭敍)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음서 제도가 무엇이기에 특혜 채용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것일까요?

◇부모 덕택에 관직에 오르다

997년 고려 제7대 왕 목종이 다스리던 시절이었어요. 과거 시험에 합격해 벼슬(관직)에 나아가려는 뜻을 품고 열심히 공부를 하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한숨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어요.

"음서 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된다며? 열심히 공부한 게 너무 억울해."

"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한다는 그 친구는 펑펑 놀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네."

[뉴스 속의 한국사] 부모가 관료면 자식도 자동 등용… '문벌 귀족' 만들었죠
/그림=정서용
음서 제도란 조상이 나라를 위해 특별한 공을 세웠다거나 부모가 높은 관직에 있을 때 그 자손들을 별도의 과거 시험을 치지 않고 관직에 등용시켜 주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부모가 고위 공무원이면 그 자녀를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해주는 셈이지요.

신분제 사회였던 삼국시대에는 국가에 공로가 있는 사람의 자손에게 벼슬을 주는 경우가 있었어요. 이런 관습을 문음(門蔭) 또는 음직(蔭職)이라 불렀는데, 조상의 음덕(蔭德) 덕택에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말이었지요. 특히 신라는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골품 제도'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신라 사회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고려는 음서 제도를 통해 왕족 대신 관료 중심의 세습 체계를 만들려고 한 거예요.

◇시무 28조에도 나오는 음서

고려 제4대 왕 광종은 중국 후주 출신 귀화인인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실시했어요. 국가가 실시하는 시험을 통해 공평하고 공정하게 관료를 뽑아야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과거 제도가 실시된 후에도 음서제를 통해 벼슬에 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어요. 제6대 왕 성종 때 문신(文臣)인 최승로는 임금이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 28가지를 뜻하는 '시무(時務) 28조'를 써서 임금에게 올렸는데 그중에는 음서제에 대한 내용도 있었어요.

"청컨대 여러 차례 공신(功臣)의 자제들에게 은혜를 내리신 대로 그들 공신의 등급에 따라 그 자손들을 채용하고…."

성종은 이 같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5품 이상의 관리들을 대상으로 한 음서 제도를 마련했고 이것이 목종 때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이에요. 그 범위도 5품 이상 관리의 경우 친가와 외가 자손들에게까지 적용돼 대상 범위가 매우 넓었어요. 3품 이상 고위 관리인 경우엔 자식뿐 아니라 양자로 삼은 아들, 사위, 조카에게까지 그 혜택이 미쳤지요.

◇과거 시험 때 일어난 부정행위

고려 제11대 왕 문종은 5품 이상 관리들에게 '공음전(功蔭田)'이라는 땅을 지급하는 제도도 마련했어요. 이 토지는 자손에게 상속을 해줄 수 있었어요. 이 같은 제도에 힘입어 고려는 부와 권력이 고위 관료와 귀족들에게 집중되고 이것이 대대로 세습되는 '문벌 귀족 국가'가 되었답니다.

이들은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오직 가문의 힘으로 갖가지 지위와 혜택을 누렸고, 서로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더욱 막강한 세력을 일구었지요. 문벌 귀족들이 이런 식으로 나라의 주요한 자리를 독점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무신(군인)들이 쿠데타(1170년 무신정변)를 일으켜 문벌 귀족 사회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지요.

음서 제도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지만 그 범위나 혜택이 크게 줄었어요. 공신이나 2품 이상 관리의 아들과 손자·사위·아우·조카나 3품 이상의 자손만이 대상이 되었고 음서를 통해 벼슬에 오르더라도 승진할 수 있는 관직 등급에 한계가 있어 재상 같은 높은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출세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과거 시험에 매달리게 되었고, 과거 합격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답니다.

이 때문에 과거 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시험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관원들이 온갖 부정행위를 일으킨 거예요. 이를 과옥(科獄) 사건이라 불러요.


[기묘과옥과 임진과옥]

조선시대 숙종 때 벌어진 대표적인 과거 시험 부정 사건이에요. 기묘과옥이란 1699년 과거 시험에 일부 관원이 청탁을 받고 수험생 답안지 내용을 고쳐주거나 시험 주제를 미리 유출해 부정 합격시킨 사건이지요. 임진과옥이란 1712년 시험 출제자가 친구의 아들 등 가까운 사람에게 미리 시험 주제를 알려주거나 답안지에 별도의 암호를 써서 특정인을 부정 합격시킨 사건이에요. 두 사건에 연루된 관원들은 유배를 가거나 처형당하는 등 큰 처벌을 받았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