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부실기업에 왜 소중한 세금을 투입하는 걸까요?

입력 : 2018.03.23 03:10

[구조조정과 공적자금]

정부, 부실 조선사에 수십조원 지원… "기업 되살리는 게 이득" 판단 때문
자금 지원 후 구조조정 잘못하면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와요

우리나라의 중견 조선소(배를 만들거나 고치는 회사)였던 성동조선과 STX조선이 부도날 위기에 놓였다고 해요. 정부가 그동안 두 회사에 수년간 12조원의 돈을 지원하며 구조조정을 해왔는데, 이것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의미예요. 그러자 많은 언론에서 "정부가 세금으로 부실한 기업을 지원하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했다"고 비판했어요.

기업이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문을 닫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지요. 그러나 실제론 정부나 금융기관이 나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도맡고 사실상 세금이나 다름없는 돈(공적자금)을 지원해줄 때가 잦아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요?

◇줄이고 문 닫고… 뼈아픈 구조조정

구조조정이란 어떤 기업이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 경제·산업 여건의 변화에 맞춰 사업체 구조를 새롭게 다시 만드는 작업을 말해요. 비록 현재 경영이 부실해서 문 닫을 위기에 놓였지만 어떻게든 다시 되살릴 방안을 찾아내자는 게 목적이지요. 한 기업이 문을 닫을 때 수많은 근로자와 지역 사회,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예요.

경남 창원 STX조선소 작업장의 모습.
경남 창원 STX조선소 작업장의 모습.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직원 수를 크게 줄여 한산한 모습이에요. /김종호 기자
구조조정은 특수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랍니다. 모든 기업은 사회적인 변화나 경제 상황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위기를 맞닥뜨려요.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수익이 적게 나는 사업 분야는 과감하게 줄이거나 폐쇄해야 하고, 비슷한 내용의 중복 사업은 서로 통합하거나 한쪽을 정리하고,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돈이 될 만한 자산은 팔아서 적절한 경쟁력을 갖춰야 하지요.

세계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것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예요. 그는 당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공급 중심 경제 정책'을 펼쳤어요. 기업이나 공장 등 생산자 중심으로 기업의 구조를 새롭게 만들고 경쟁력을 높이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한 거지요. 미국 가전 기업 GE(제너럴일렉트릭)의 CEO(최고경영자) 잭 웰치는 당시 이런 구조조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행한 경영자랍니다.

우리나라에서 구조조정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했어요. 많은 기업이 빚을 줄이기 위해 직원 수를 감축하고, 수익이 안 나오는 계열사나 조직을 팔고, 불필요한 사업장을 폐쇄하는 등 고통스러운 작업에 나섰지요. 현재는 조선업을 중심으로 건설·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답니다.

◇부실기업에 세금 주는 이유

그렇다면 왜 정부는 부실기업에 소중한 세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일까요? 그 돈을 다른 곳에 쓰면 생산이나 고용 등에서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기업과 채권단(사업에 필요한 돈을 빌려준 그룹)의 문제랍니다. 최근 문제가 된 성동조선과 STX조선, 대우해양조선 같은 기업의 채권단은 바로 국책은행(국가 정책에 따라 설립된 은행)인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었어요.

수년 전 정부(국책은행)는 여러 조선 회사가 위기를 겪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자금)을 투입해 회사를 다시 살릴 방안을 모색했어요. 어떻게든 기업을 다시 살리는 게 일자리와 지역 경제, 나라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기업의 규모가 크고 고용한 직원 수가 많을수록 기업이 망하게 두는 것보다 최대한 살려보는 게 이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또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하면 정부로선 실업급여 등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수십조원의 세금을 쏟아부었는데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계속 적자에 시달린다면 결국 '구조조정이 실패했다'는 결론이 나는 거랍니다.

정부가 부실기업에 지원한 돈은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수출입은행이 약 4조원을 투입해 관리해온 성동조선은 앞으로 '기업 회생 절차', 즉 법정 관리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후 해외 기업에 회사를 파는 방식으로 투자한 돈을 거둬들이게 돼요. 이때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회사가 헐값에 매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러면 정부가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고, 이 부담은 결국 나라와 국민 몫으로 돌아오는 거지요.

◇성공한 구조조정도 많아요

2000년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된 대우조선해양은 실패한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예로 꼽힙니다. 총 12조원의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이 회사는 아직도 구조조정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한때 조선업 경기가 호황을 이뤄 국내외 다른 기업에 회사를 팔아 투자한 돈을 돌려받고 국민 부담을 줄일 기회가 있었는데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적절한 매각 타이밍을 놓치고 여기에 임직원 비리까지 겹치면서 아직도 부실기업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구조조정은 항상 실패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이닉스반도체는 2001년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SK그룹에 인수된 뒤 현재 SK하이닉스의 '효자'로 자리했답니다. 포스코, 현대건설도 구조조정의 아픔을 딛고 되살아났고, 최근 동국제강도 구조조정에 성공하면서 우량 기업으로 거듭났어요.

그렇다면 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기업 자체만 보고 판단하는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해요. 또 선거 등을 앞두고 지역민이나 근로자를 의식한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아야 하고 단기 실적이나 관료적 보신주의에 급급해 매각 시기 같은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되지요.


[잭 웰치의 구조조정]


1981년 45세 젊은 나이에 GE 회장을 맡은 잭 웰치(Welch)는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그는 세계 1~2위를 할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주저 없이 포기했고, 1700여 건의 인수·합병을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10만명이 넘는 직원에게 해고 통보를 했지요. 이런 그를 보고 언론은 '건물만 남기고 사람은 모두 녹여버린다'는 뜻에서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고 불렀어요.

잭 웰치의 이 같은 과감한 구조조정에 힘입어 취임 당시 미국 기업 가치 10위였던 GE는 2001년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답니다. 이후 잭 웰치는 혁신의 상징이 됐고 GE식 기업 구조조정은 세계적 이야깃거리가 됐어요.


박원배 이코노아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