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反독재 시위가 내전으로… 종교 갈등에 미·러 대립까지 얽혔죠

입력 : 2018.03.22 03:12

[8년째 접어든 시리아 내전]

2011년 민주화 시위에서 내전 시작… 33만명 사망… '21세기 최악의 전쟁'
'시아파' 정권에 '수니파' 반정부군, 이란·이스라엘까지 내전 개입했죠

지난 15일은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지 7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국제연합(UN)에 따르면 2011년 3월 이후 현재까지 시리아에서 최소 33만명이 내전으로 사망하고, 난민 558만명이 발생했다고 해요. 정식 보고되지 않아 집계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아마 사상자의 규모는 더 클 거예요.

시리아 내전을 끝내기 위해 국제사회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답니다.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화학무기가 무차별 사용되면서 시리아 내전은 21세기 최악의 전쟁으로 꼽혀요. 이처럼 끔찍한 전쟁이 왜 좀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걸까요?

◇프랑스 통치, 내전의 씨앗을 심다

시리아는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해 있어요. 이곳은 일찍이 농경문화가 자리 잡았고,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3000여 년 전부터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죠. 7세기 이슬람 세력이 들어온 시리아는 16세기 초 튀르크족이 세운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했어요.

[숨어 있는 세계사] 反독재 시위가 내전으로… 종교 갈등에 미·러 대립까지 얽혔죠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벌어지자 영국·프랑스 등 연합국은 적군인 오스만제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랍인들에게 '오스만제국을 몰아내면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아랍인들은 이를 믿고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고 현재의 레바논·팔레스타인·요르단 일대를 포함하는 '시리아 왕국'을 세웠지요. 하지만 연합국인 프랑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시리아 왕국을 위임통치하기 시작했어요.

프랑스는 시리아를 통치하면서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어요. 시리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수니파가 아닌, 소수파인 시아파를 지배 세력으로 키운 것이에요. 그러자 오랜 세월 이단으로 몰려 탄압받던 알라위파(시아파의 한 종파)가 득세하기 시작했어요. 오늘날 시리아를 장악하고 있는 '아사드(Assad) 가문'이 바로 이 알라위파 출신이에요.

◇아사드 가문 집권과 '아랍의 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이 끝나자 1946년 시리아는 프랑스로부터 정식 독립했어요. 하지만 1960년대까지 10여 차례 군인들이 쿠데타를 벌이는 등 혼란이 계속됐지요. 혼란은 1970년 아사드 가문 출신의 '하페즈'가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끝났어요. 1971년 시리아 대통령에 오른 그는 2000년까지 독재를 했어요.

하페즈의 뒤를 이은 것은 그의 둘째 아들 '바샤르'였어요. 바샤르는 의대를 나와 안과 의사로 일하는 등 정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막상 권력을 잡자 자신에게 반대하는 언론인과 운동가들을 체포하고 탄압하는 공포정치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시리아 인구 153명당 1명꼴로 비밀경찰을 붙일 정도로 국민을 철저하게 감시했어요.

건물이 부서지면서 하얀 콘크리트 가루에 뒤덮인 시리아 소년의 모습.
건물이 부서지면서 하얀 콘크리트 가루에 뒤덮인 시리아 소년의 모습.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반(反)정부 시위인 '아랍의 봄'이 시작됩니다. 민주화를 위한 아랍 민중의 열망을 담은 이 운동은 이집트를 넘어 바레인·예멘·리비아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죠. 시리아 국민도 민주화를 열망하고 있었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어요. 1982년 '하페즈'가 반정부 항쟁에 나선 민중 2만여 명을 고립시켜 대대적으로 학살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도시 '데라'에서 몇몇 청소년이 장난삼아 담벼락에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구호를 썼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아이들을 석방해 달라는 부모들의 시위가 시작됐고, 여기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전국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확산됐지요. 그런데 정부군이 시위대를 잔혹하게 유혈 진압하면서 사태는 내전으로 발전합니다.

반정부군(이하 반군) 조직의 중심이 된 것은 정부군에서 이탈한 군인과 수니파 출신 군인들이었어요. 그러자 사우디아라비아·터키 등 주변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에 무기와 숨을 곳을 제공해주었어요. 이에 맞서 시아파의 우두머리 격인 이란이 '초승달 벨트(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동맹)'를 보호하겠다며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시리아 내전은 두 이슬람 종파를 대리하는 중동전 성격을 띠게 되었지요.

이스라엘은 바로 옆 나라인 시리아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이란·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내전에 끼어들었어요. 그러자 미국이 '독재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세력'을 지지한다는 명분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란·헤즈볼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반군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지요.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비극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같은 미국의 반군 지원에 힘입어 세력을 키운 테러 조직이 있었어요. 바로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 단체인 'IS(이슬람국가)'였지요.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진출한 그들은 급속히 세력을 키워 2014년 시리아 북부 도시 '락까'를 함락하고 IS 수립까지 선포했답니다. 미국의 공습 등으로 지난해 10월 락까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서구의 지원이 잔혹한 테러 단체를 키우고 이로 인해 시리아 내전이 더 길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났죠.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아사드 정권은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바샤르가 2015년 7월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갑자기 전세가 역전됩니다. 러시아는 중동·지중해 일대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했고, 시리아 정부는 그런 러시아제(製) 무기를 대거 사들이는 단골 고객이었지요. 게다가 러시아 입장에서 시리아 내전은 자국에서 만든 새 첨단 무기의 성능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어요. 러시아·이란의 지원에 힘입어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에 무차별 공격을 퍼부으며 현재 전세를 압도하고 있답니다. 안타까운 것은 민간인 사상자 수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지요.

시리아 내전에는 독재 정권과 민주화 세력, 수니파와 시아파, 미국과 러시아, 이스라엘과 이란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어요. 일각에선 "서구 국가들이 사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지요. 전쟁이 길어질수록 어느 한 쪽을 굴복시키려는 움직임만 강해지면서 시리아 사태는 해결이 힘든 비극으로 치닫고 있어요.


[시리아 내전의 화학 무기]


시리아 내전은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사용해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어요. 대표적으로 '사린가스'는 맹독성 신경가스로 조금만 들이마셔도 중추신경계가 손상될 수 있는 무서운 무기예요. '염소가스'는 피부에 닿으면 살이 짓무르고 소량만 흡입해도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무기이지요. 아사드 정권은 민간인 공습에 이 같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가 참혹한 피해가 알려지면서 맹비난을 받았어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정부군 공군기지를 공습하는 초강수까지 두었지만, 최근 정부군이 또다시 반정부군 점령 지역을 염소가스로 공격하는 등 처참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공명진 숭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