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가족의 잇단 죽음에 괴로워한 화가… 현대 사회 불안 그려냈죠

입력 : 2018.03.17 03:06

[에드바르 뭉크]

세계적으로 유명한 뭉크의 '절규'
검고 붉은 색채·꿈틀거리는 구도로 오싹한 감정 눈으로 느낄 수 있어요
공포 시달리면서도 예술혼 불태워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인기가 많아요. 빙하가 깎아 만든 U(유)자 형태 골짜기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피오르, 하늘의 커튼으로 불리는 오로라(북극광),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여름철 백야(白夜) 현상을 경험할 수 있지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바이킹박물관'을 방문하면 스칸디나비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바이킹 시대(800~1050년)에 제작한 배와 유물,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답니다.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 국민이 전 세계에 자랑하는 화가가 있어요. 바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에드바르 뭉크(Munch·1863~1944)예요.

노르웨이는 뭉크의 초상〈사진1〉을 1000크로네(우리 돈 약 13만8000원) 화폐에 새겨 기념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로 숭배하고 있어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각 나라 미술 교과서, 영화, 출판물, 각종 복제품에 자주 등장하는 명화(名畵)거든요.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회사 소더비는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와 함께 〈작품1〉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꼽고 있어요.

사진1 - 뭉크가 그려진 1000크로네 지폐.
사진1 - 뭉크가 그려진 1000크로네 지폐.
'절규'는 왜 불후의 명작이 되었을까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두렵거나 불길한 감정, 느낄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와 불안, 절망감을 그림에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오슬로 에케베르그 언덕에 서서 양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공포심이 생겨요.

뭉크는 그림의 주제, 구도, 색채를 활용해 두려운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했어요. 겁에 질린 남자의 눈과 입, 피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구름, 꿈틀거리는 검푸른 바다, 사선(비스듬하게 그은 줄) 방향의 다리로 소름 끼치도록 오싹한 감정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해주었죠. 공포 영화처럼 섬뜩한 이 그림은 현대인들이 매우 위급하거나 몹시 두려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어요.

오슬로 시민들이 저녁 시간에 카를요한 거리를 오가는 장면을 그린 〈작품2>의 주제도 불안과 공포의 감정입니다. 카를요한 거리는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오슬로시 최대 쇼핑가이며 문화 중심지예요. 그러나 그림 속 시민들의 모습에서 쇼핑의 즐거움이나 밤의 여유로움이 느껴지지 않아요.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들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어요. 건물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란 불빛, 오른쪽에 서 있는 커다란 검은색 형체도 보는 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작품1~3
작품1 -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년. 작품2 - 에드바르 뭉크, 카를요한 거리의 저녁, 1892년. 작품3 - 에드바르 뭉크,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 1940~1943년.
게다가 도로 한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으로부터 떨어져 힘없이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어요. 남자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소외된 사람을 상징해요. 뭉크는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불안으로 고통받는 현대인의 내면을 이 그림에 담았답니다.

뭉크는 '불안과 두려움을 그린 화가'로 불립니다. 8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인간 내면에 자리한 불안과 공포, 두려움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거든요. 뭉크가 어두운 감정에 집착한 사연이 있어요.

그는 평생 죽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살았어요. 5세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14세 때 누이 소피에 역시 결핵에 걸려 죽었지요. 이후 아버지와 동생 안드레아스가 죽음을 맞았고, 여동생 라우라는 정신병을 앓다가 저세상으로 갔어요.

어릴 때부터 차례로 부모·형제들의 죽음을 경험했던 뭉크는 불행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울 수 없었어요. 자신도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환각과 피해망상, 신경 과민증을 앓았어요. 1908년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수개월이나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요.

뭉크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3〉은 그가 노인이 되어서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뭉크는 침실에서도 편안해 보이지 않아요. 불안한 표정과 차렷한 자세에서 긴장감이 감도는군요. 언제 자신에게 죽음이 닥쳐올까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그 증거로 뭉크는 이 자화상에 죽음을 암시하는 상징물들을 그렸어요. 오른쪽의 침대와 왼쪽 벽에 세워진 고장 난 시계는 죽음을 의미해요. 인간은 침대에 누운 채 죽음을 맞이하고, 삶의 시곗바늘은 죽음과 함께 멈추니까요.

그러나 벽에 가득 걸려있는 그림들은 뭉크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뭉크는 자신이 느꼈던 불안과 공포의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두려움이 닥칠 때마다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어요.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불안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요.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오직 뭉크의 작품을 감상하려는 목적으로 오슬로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을 방문해요. 인간의 숙명인 질병과 죽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웠던 뭉크를 기리기 위해서죠.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