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전 세계 전파망원경이 궁수자리 블랙홀 관측하는 이유는?

입력 : 2018.03.07 03:09

[블랙홀]

거대 별 폭발 시 생기는 '검은 구멍' 강력한 중력으로 모든 물질 흡수
그동안 X선으로 형태·위치 추측해
국제연구진, 진짜 모습 분석 중이죠

블랙홀(Black hole)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나요? 블랙홀은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천체이지만, 아직 어느 누구도 그 모습을 확인한 적 없는 신비한 존재예요. 질량이 매우 큰 별이 극단적으로 쪼그라든 상태로, 중력(잡아당기는 힘)이 엄청나게 강해서 주변 별과 행성은 물론 빛까지 빨아들이지요.

조만간 블랙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한국·미국·유럽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이 지난해부터 전 세계 전파망원경(천체가 방출하는 전파를 관측하는 망원경)을 통해 우리 은하계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블랙홀을 관측하고 자료를 검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블랙홀은 그동안 왜 확인하기 어려웠던 걸까요?

◇빛도 삼켜버리는 '사건의 지평선'

누군가 책이나 인터넷에서 블랙홀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건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추측해서 그려낸 '상상도'이지 진짜 모습이 아니에요. 블랙홀은 빛이 빠져나오지 않을뿐더러 빛을 모두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직접 관측할 수가 없지요. 블랙홀의 위치 역시 과학자들이 주변 천체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이곳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겠구나" 하고 추측한 거예요.

블랙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래픽=안병현
블랙홀은 우주의 거대한 별이 수명을 다하고 폭발할 때 생겨요. 보통 태양 질량의 3배 이상 되는 별이 블랙홀이 되는데, 원래 질량은 그대로 둔 채 크기가 엄청나게 줄어들기 때문에 밀도가 아주 높아져요. 이런 천체는 중력이 너무나 강력해서 근처에 있는 모든 물질과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구멍'이 되지요. 천문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 표면을 가리키는 말로, 어떤 사건이든 블랙홀로 들어가면 마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듯 단절된다는 의미예요. 물질이나 빛이 자유롭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중력 때문에 아무것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점이지요. 블랙홀을 벗어나려면 탈출 속도가 빛의 속도(초속 30만㎞)보다 커야하기 때문에 결국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블랙홀의 흔적, X선 방출

블랙홀의 존재 가능성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지리학자 존 미첼이었어요. 그는 '질량이 너무 커서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물체'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지만, 당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지요. 더구나 블랙홀은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없어 증명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20세기 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발표되면서 블랙홀은 과학자들의 큰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천체의 질량이 너무 무거울 때 자신의 중력에 의해 천체가 폭발적으로 수축하는 일(중력 붕괴)이 벌어져요. 천체가 급격히 쪼그라들면 블랙홀이 생기면서 주변의 시공간이 뒤틀리지요. 즉, 중력 때문에 시공간이 휘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예요.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관측 방법을 활용해 블랙홀을 연구했어요. 1964년 지구에서 6100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한 거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체인 백조자리 X―1에서 강한 X선이 방출되는 현상이 발견됐지요. 1975년 블랙홀 전문가로 유명한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명예교수가 백조자리 X―1이 블랙홀인지 아닌지를 두고 내기를 했어요.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아니다'고 주장했고 킵 손 교수는 '블랙홀이 맞는다'고 주장했는데, 결과적으로 킵 손이 이겼답니다.

그렇다면 백조자리 X―1이 블랙홀인지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만약 블랙홀 주변에 항성(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이 돌고 있다면 항성의 여러 가지 물질이 블랙홀 쪽으로 강하게 빨려 들어가고 있을 거예요. 그 결과 블랙홀 주위에는 '강착원반(降着圓盤)'이라 불리는 고리 모양으로 회전하는 물질 덩어리가 생겨요. 강착원반에서 물체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엄청난 마찰열을 일으키기 때문에 X선이 방출돼 지구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지요. 백조자리 X―1에서도 푸른색 초거성(태양보다 100배 이상 큰 거대한 항성)으로부터 물질이 흘러나와 어떤 '미지의 천체' 쪽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확인됐는데, 과학자들은 이 미지의 천체를 블랙홀이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블랙홀, 베일을 벗을까

2001년 셰퍼드 돌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블랙홀을 실제로 관측하기 위해 전 세계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활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어요.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파망원경을 연결하는 '사건의 지평선'(EHT)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예요.

EHT의 연구 대상은 우리 은하계 중심부에 있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이에요. 2002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과학자들이 발견한 블랙홀로, 지구에서 2만6000광년 떨어진 곳에 있어요. 태양의 450만배에 달하는 질량을 갖고 있는 거대한 블랙홀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연구팀은 궁수자리 블랙홀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파를 관측하고 그 해상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블랙홀의 형태를 분석하고 있어요.

2015년 킵 손 교수가 관측한 '중력파'도 블랙홀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로 꼽혀요. 그가 관측한 중력파란 태양 질량의 36배에 달하는 블랙홀과 29배에 달하는 블랙홀이 합쳐지면서 우주 공간에 거대한 파동을 일으킨 현상이지요. 과연 EHT팀은 올해 안에 블랙홀의 신비를 밝혀낼 수 있을까요?


서금영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