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용맹·신성·재미와 친근함까지… 韓中日 미술 속 호랑이 이야기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展]
동아시아서 사랑받던 호랑이 그림
韓, 꽉 찬 그림으로 관객 압도하고 中, 호랑이 베개 등 생활용품 유행
日, 관찰한 듯 실감나게 묘사했죠
호랑이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동물입니다. 시베리아와 인도에도 있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만큼 호랑이 이미지를 미술 작품과 일상용품에 많이 남긴 나라는 없을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이 살아서, 중국의 옛 신화 책인 '산해경'에는 "털이 아름다운 호랑이 두 마리를 곁에 두고 심부름시키는 나라"라고 우리나라를 소개할 정도였어요.
우리의 시조 설화인 단군신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하는데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하늘신의 아들인 환웅은 동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간 햇빛을 보지 말라고 지시했지요. 곰은 그 지시를 지켜서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지만, 약속을 포기한 호랑이는 영원히 야생성을 지닌 맹수로 남게 됐답니다.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한국·일본·중국' 전시가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면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중국 국가박물관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로 오는 3월 18일까지 볼 수 있어요.
작품1은 18세기 조선시대 때 그린 유명한 호랑이 그림이에요. 누가 그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1707~1769)의 낙관(도장)이 찍혀 있기는 하지만, 낙관이 찍힌 갑오년(甲午年)은 1714년이나 1774년이기 때문에 심사정이 활동했던 시기와 맞지 않거든요.
막 산에서 내려오는 사나운 호랑이를 아무런 배경 없이 화면에 꽉 차게 그려 관객을 압도하는 느낌을 줍니다. 호랑이의 눈빛이 매서운데, 무엇보다 호랑이 털을 가느다란 붓으로 일일이 세밀하게 묘사한 점이 놀랍지요. 흰 수염은 위로 솟구친 듯 빳빳해서 감히 누가 이 사나운 호랑이의 수염을 건들 수 있을까 싶습니다. 나쁜 기운이 힘을 펼치려 드는 어수선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강자(强者)가 나타나 모든 근심을 잠재우길 기대하며 이런 그림을 걸어놓았을 거예요.
- ▲ 작품1 - ‘호랑이(맹호도)’, 18세기, 종이에 먹(사진 왼쪽). 작품2 - 마루야마 오쿄, ‘바람을 일으키는 호랑이의 포효’, 1786년, 비단에 채색(사진 오른쪽).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展
작품2는 이와 비슷한 시기에 그린 일본의 호랑이입니다. 이 무렵 일본은 에도 시대(1603~1867년)였어요. 정권의 본거지를 에도(현 도쿄)에 두고, 무사(武士) 계급의 최고 위치인 쇼군(장군·將軍)이 막강한 권력을 쥐어 전국을 지배하던 시기를 말하지요.
일본은 호랑이가 살지 않는 나라여서 한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늦게 호랑이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일본을 오래도록 지배하던 계층이 무사 계층이었는데, 무사 가문에선 용맹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호랑이를 최고로 여겼지요. 또 일본인들은 호랑이가 참선(參禪·명상을 통해 수행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이 그림을 그린 18세기 일본 화가 마루야마 오쿄(1733~1795)는 마치 호랑이를 실제로 관찰한 듯 실감 나게 그렸어요.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 동물 호랑이가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나 위엄 있게 으르렁 소리를 내는 듯한 모습이에요.
작품3은 중국 생활용품에 그린 호랑이예요. 자기(磁器·흙을 빚어서 높은 온도로 구운 그릇)로 만든 베개인데, 중국 금나라 시대(1115~1234년) 유물이랍니다. 호랑이 몸체는 붉은빛이 도는 황토색 안료(분말 물감)로 칠하고, 털과 줄무늬는 검은색 안료로 칠했어요. 호랑이의 등 부분은 평평하게 깎아 머리를 받치는 면으로 만들었지요.
호랑이 베개는 기원전 3세기쯤에도 만들었을 만큼 오래도록 중국인의 사랑을 받은 물건인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이후랍니다. 중국 인구가 점점 늘어나 사람들이 호랑이 활동 구역까지 넘나들면서 한밤중에 호랑이가 사람 사는 마을에 나타나는 일이 잦았다고 해요. 잠들기 무서웠던 사람들은 그 옛날에 황제를 지켜주었던 신성한 호랑이 베개가 자기들도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거지요.
중국의 옛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는 인간과 대결하기도 하고, 인간으로 변신하기도 해요. 중국 옛 책에 보면 인간 모습을 한 호랑이들은 발꿈치가 없다는 대목이 종종 나옵니다. 실제로 호랑이는 발에 뒤꿈치가 없는데, 인간으로 변신하고서도 발꿈치가 여전히 없어 호랑이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인간인지 호랑이인지 의심스러우면 발부터 살펴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요.
- ▲ 작품3 - 호랑이 모양 베개, 중국 금(金)시대, 자기(사진 왼쪽). 작품4 - 최영림, ‘호랑이 이야기’, 1968년, 캔버스에 유채와 토분(사진 오른쪽).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展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야생 호랑이를 볼 수 없어요. 하지만 호랑이는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그리고 미술 작품 속에서 용맹하면서 신성하고 재미있고 친근한 동물로 우리와 아주 가까이 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