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컬링 선수가 빙판 닦는 이유… 마찰열로 얼음 녹이기 위해서죠

입력 : 2018.02.28 03:12

[얼음은 왜 미끄러울까]

- 얼음 미끄러운 이유 200년 논쟁 중
①일정한 압력 받으면 얼음 녹아
②마찰열이 얼음 녹여 미끄러운 것
③얼음 표면에 항상 얇은 물층 존재

'세계인의 겨울 스포츠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폐막했어요. 우리나라는 올해 얼음판을 달리는 스케이팅 종목과 썰매 종목, 스톤을 미끄러뜨리는 컬링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답니다.

선수들이 얼음 위에서 씽씽 달리고 회전하는 건 기본적으로 얼음이 미끄럽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얼음은 왜 미끄러울까요? '얼음이니까 당연히 미끄럽지'라고요?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답니다. 놀랍게도 과학계에선 아직 '얼음이 왜 미끄러운지'에 대한 속 시원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오늘은 지난 200년 동안 과학자들이 탐구해온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를 살펴보도록 해요.

◇'압력' 때문에 미끄럽다고?

얼음이 미끌미끌한 이유는 사실 얼음이 아닌 물 때문이랍니다. 얼음 표면을 자세히 보면 살짝 녹은 물이 있는데, 이 때문에 얼음이 미끄러운 것이지요. 얼음뿐 아니라 마루나 식탁에 물을 쏟으면 사람이나 그릇이 쉽게 미끄러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처럼 물은 물체와 물체 사이의 '마찰력(물체가 어떤 면과 접촉해서 움직일 때 그 운동을 방해하는 힘)'을 줄여주지요.

'얼음은 왜 미끄러울까' 과학계 논쟁중
/그래픽=안병현
그렇다면 얼음의 표면은 왜 녹아있는 걸까요? 얼음은 섭씨 0도(녹는점) 이상에서 물이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0도 이하(영하) 날씨에도 얼음 표면에 물이 생긴다는 건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1849년 영국의 과학자 캘빈은 '얼음은 일정한 압력을 주면 녹는다'는 '압력 녹음' 현상을 주장했답니다.

실제 얼음 덩어리에 실을 올려놓고 양쪽 끝에 무거운 추를 매달면, 실이 얼음을 파고들다가 아예 얼음을 통과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요. 이는 추의 무게에서 생긴 압력이 얼음을 녹이기 때문인데요. 압력이 커지면 녹는점(얼음이 물로 변하는 온도)이 0도보다 낮아져 영하 날씨에도 얼음이 물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지요.

캘빈의 '압력 녹음' 이론은 스케이팅 원리를 설명하는 데도 쓰였어요. 빙판 위를 달리는 스케이팅 선수들은 스케이트 날로 얼음을 강하게 눌러요. 그 압력으로 순간적으로 얼음이 녹아서 물을 만들고 스케이트가 잘 미끄러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2005년 이 이론에 대한 과학적 반론이 제기됐답니다. 미국 로런스대의 로버트 로젠버그 교수는 몸무게가 68㎏인 사람이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에 선 경우를 예로 들었어요. 일반적 스케이트 날은 길이 30㎝에 두께 3㎜ 정도인데요. 이걸 기준으로 계산하면 두 스케이트 날이 얼음판과 닿는 면적은 18㎠예요. 이것을 무게 68㎏이 누르면 얼음의 녹는점은 대략 -0.017도가 돼요.

하지만 이 정도 차이로는 아주 추운 날씨에도 얼음 표면에 물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영하 20도인 날씨에서도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거든요. 또 녹는점이 충분히 낮아지려면 얼음판에 가하는 압력이 아주 강해야 하는데, 몸무게 가벼운 어린이들까지 얼음 위에서 잘 미끄러지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어요.

◇마찰열? 지금은 '표면 녹음'이 대세

다른 유력한 가설은 '마찰열'이에요. 1939년 영국의 과학자 보든과 휴스가 주장한 이론인데요. 손바닥을 비비면 마찰열이 생기듯 물체와 물체가 서로 마찰하면서 생기는 열이 얼음을 일시적으로 녹여 물을 만든다는 설명이었어요. 이 이론을 '마찰 녹음' 현상이라 불러요.

컬링 경기에서 선수들이 빗자루로 얼음판을 열심히 닦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빗자루로 닦아낼 때 발생하는 마찰열이 얼음 표면을 녹여서 스톤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물(윤활유)을 만들어내는 거지요. 하지만 '마찰 녹음' 이론만으로는 얼음판 위에 가만히 서 있어도 미끄러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답니다.

최근에는 얼음 표면에 필름처럼 얇은 층의 물이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요. 이 주장은 일찌감치 1850년대 '전기학의 아버지'라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내놓은 것인데요. 패러데이는 각진 얼음 두 덩이를 위아래로 놓았을 때 서로 붙어버린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그는 얼음 표면에 있는 얇은 물층이 순식간에 얼어버리면서 두 얼음이 하나로 붙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즉 얼음 표면에 있는 얇은 물층이 얼음 표면을 미끌미끌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본 거예요.

당시에는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실험을 하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1987년 과학자들이 얼음 표면의 얇은 물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영하 1도에서 1~94㎚(나노미터·10억분의 1m) 두께의 아주 얇은 물층이 얼음을 뒤덮고 있었던 거예요. 이 정도 두께는 박테리아 평균크기 1000분의 1인 매우 미세한 수준이에요. 또 얼음 표면에 전자나 원자를 쏜 뒤 튕겨져나오는 모습을 분석했더니 고체 얼음이 아닌 액체 물과 충돌했다는 게 밝혀졌어요.

이 같은 '표면 녹음'은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일부 물 분자가 표면에 남아서 생기는 현상이에요. 액체인 물은 고체인 얼음으로 변할 때 분자가 육각형 고리 모양으로 결합해요. 그런데 표면의 분자들은 결합할 수 있는 이웃(다른 분자)이 없어서 육각형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액체 상태로 남아있게 되지요. 여럿이 한 줄로 손잡을 때 처음과 끝에 서 있는 사람의 한쪽 손이 남는 경우를 떠올리면 돼요.

과학자들은 아직도 논쟁을 계속하고 있어요. 스케이트가 미끄러지기에는 얼음 표면의 물층이 너무 얇은 거 아니냐는 반박도 있지요. 앞으로 과학자들의 끈질긴 탐구가 이어지면 조만간 물과 얼음의 신비가 명확하게 밝혀질 거예요.


박태진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