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백금에서 전자기력으로… 130년 만에 ㎏ 기준 변해요

입력 : 2018.02.21 03:05

[㎏의 정의]

㎏, 원래 물 1000㎤ 무게로 재다 1889년 백금 기둥을 기준 삼았죠
시간 흘러 원래 질량 변화하자 전자기력으로 새롭게 정의할 예정

무게를 재는 단위인 '㎏(킬로그램)'의 정의가 조만간 바뀔 것으로 보인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오는 11월 프랑스에서 열릴 국제도량형총회에서 1889년부터 사용해오던 ㎏의 정의를 폐기하고, 이번에 새롭게 다시 정하기로 했다는 것인데요. 새로운 ㎏은 내년 5월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답니다. 130년 만에 바뀐다는 ㎏이란 과연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바뀌는 걸까요?

◇㎏의 나이는 130년?

우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몸무게를 잴 때 ㎏이나 g(그램) 같은 단위를 많이 사용해요. 1㎏은 1000g과 같지요. 이 단위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똑같이 쓴답니다. 그렇다면 1㎏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만든 단위인 걸까요?

옛날에는 무게를 재는 기준이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각각 달랐어요. 이집트에서는 보리 한 톨을 기준으로 삼았고,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쌀 한 톨이나 쌀 한 가마니를 기준으로 무게를 쟀지요. 요즘엔 '호동이가 160㎏짜리 역기(바벨)를 들었어'라고 말한다면 과거에는 '호동이가 쌀 두 가마니 무게를 들었어'라고 표현했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무게를 재는 기준이 서로 다르면 물건을 사고파는 데 불편함이 많지요. 그래서 18세기 말 과학자들이 모여 순수한 물(증류수) 1000㎤(세제곱센티미터)에 해당하는 무게를 1㎏으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이것이 ㎏의 시작이랍니다.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하지만 물은 시간이 흐르면 증발되기도 하고, 이물질이 섞여 변질되기도 하지요. 이렇게 되면 무게를 잴 때 기준이 자주 바뀌고 부정확해지는 문제가 생겨요. 이에 과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물 1000㎤ 무게에 해당하는 '거의 변하지 않는' 물체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재 1㎏의 기준이 되는 '원기(原器)'랍니다. 백금과 이리듐(백금속 중 하나)을 9대1 비율로 섞어 만든 지름 3.9㎝, 높이 3.9㎝짜리 원통 모양의 금속 기둥이 그것이에요.

왜 백금일까요? 백금은 모든 원소 중에서 가장 반응성이 작은 금속이에요. 공기나 이물질 등에 노출돼도 본래 성질을 잃지 않고 모양과 부피·무게 등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지요. 이런 성질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아야 하는 무게의 기준으로 삼기에 딱 알맞았어요. 현재 프랑스 파리에 세 겹의 유리에 둘러싸인 원기가 어두운 지하 금고 깊숙이 보관돼 있는데, 혹시나 모를 변질 사고를 우려해 거의 금고 밖으로 빼낸 적이 없다고 해요. 대신 전 세계에 똑같은 복사본 100여 개를 배포해 각 나라에서 ㎏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백금 원기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아무리 안정적인 금속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밖에 없는 '물체'라는 점이었지요. 조금씩 공기 속 이물질에 노출되면서 성질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예요. 실제 과학자들이 백금 원기의 질량을 자세하게 재봤더니 1889년보다 약 5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 정도 가벼워진 것으로 추정했답니다.

50㎍은 성인 남성의 머리카락 약 0.5㎝에 해당하는 무게로 일상생활에선 무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차이예요. 하지만 미미한 차이도 계속 쌓이면 수십㎏ 차이가 날 수 있는 데다 나노그램(10억분의 1g)까지 측정하는 첨단 과학에선 이런 작은 무게 차이를 무시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단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의 기준을 다시 정하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백금도 질량 미세하게 변해

모든 물체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변하게 돼 있어요. 그렇다면 ㎏의 기준을 물체가 아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언가'로 해야 나중에 기준을 또 바꿀 일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영원히 변치 않는 무언가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요?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자연 속에 이런 '영원한 숫자'가 있다는 걸 발견했답니다. 바로 '플랑크 상수'였어요. 플랑크 상수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인 원자의 에너지 크기를 나타내는 값으로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발견한 개념이에요. 영국 국립물리연구소의 키블 박사가 고안한 '키블저울(와트저울)'을 이용해서 측정할 수 있어요.

우리가 보통 '무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지구의 중력이 질량을 가진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을 말해요.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에 가면 우리 몸무게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런데 중력은 전기와 자기의 힘인 '전자기력'에 비례해요. 키블저울은 이 원리를 이용한답니다.

먼저 키블저울 한쪽에 1㎏짜리 물체를 올려놓고 반대편 저울과 정확한 수평을 이루도록 일정한 전류를 흘려줘요. 그러면 양팔 저울이 평형을 이루는 순간이 생기는데, 이를 통해 1㎏에 해당하는 전자기력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거예요. 이때 전자기력을 측정해 물리학 방정식에 넣으면 '플랑크 상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1㎏의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요.

우리가 이미 쓰고 있는 단위 중 변하지 않는 숫자(상수)를 기준으로 만든 것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길이예요. 과거엔 1m를 백금과 이리듐으로 만든 자 1m로 정의했지만, 1983년 '빛이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가는 길이'로 바뀌었어요. 빛의 속도는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의 정의도 플랑크 상수를 이용해서 바뀔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키블저울을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2019년 국제도량형국에서 확정된 플랑크 상수를 발표하면 새로운 1㎏의 기준이 탄생하는 것이랍니다.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