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의 책] 씨앗으로 만든 잉크, 금속으로 짠 활자… 놀라운 '인쇄 혁명' 이야기

입력 : 2018.02.09 03:02

'구텐베르크 책 이야기'

/소년한길
/소년한길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글은 종이 위에 쓰였어요. 종이에 코를 박고 '쓰흡' 숨을 들이마셔 보세요. 바짝 말라 있으면서도 알싸한 냄새가 나죠? 바로 종이 냄새예요.

우리가 늘 접하는 책은 종이로 만들어졌어요. 반듯한 크기의 글자와 그림이 무척 예뻐요. 하지만 예전에 책은 값이 아주 비쌌어요. 손으로 글자를 일일이 베껴 만드느라 손쉽게 구할 수 없었죠.

1450년 독일 마인츠에서 귀금속 다루는 일을 하던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글자를 쇠붙이로 만들어 종이에 대고 인쇄기로 누르면 엄청 빠른 속도로 책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제임스 럼포드가 쓰고 그린 '구텐베르크 책 이야기'(소년한길)는 훗날 자기 가문의 저택 이름인 구텐베르크로 더 잘 알려진 겐스플라이슈의 공방으로 훌쩍 떠나요.

구멍 난 양말, 낡은 속치마, 너덜너덜한 윗옷을 모아 잘게 찢고 물에 담가 빻으면 종이의 원료인 펄프(pulp)가 돼요. 커다란 통에 걸쭉한 펄프를 붓고, 제지 틀로 한 장씩 얇게 떠낸 다음 판판하게 눌러서 말려요. 이걸 뼈, 가죽, 뿔, 발굽으로 만든 풀에 담갔다가 꺼낸 뒤 다시 누르고 말려주면 종이가 됐죠.

새까만 잉크는 아마풀 씨앗을 모아 만들었어요. 씨앗을 압축기로 으깨 금빛 기름이 흘러나오면 꿀처럼 되직하게 끓여요. 씨앗에서 나온 기름과 그을음을 섞어 돌판에서 쓱쓱 갈아주면 버터보다 부드럽고 밤보다 새까만 잉크가 됐어요.

활자는 오래된 파이프에서 얻은 납과 찌그러진 컵에서 구한 주석으로 만들었어요. 여기에 안티몬 가루를 넣어 녹이면 은처럼 반짝거리죠. 녹아서 뜨거워진 액체를 한 숟갈씩 틀에 부으면 조그만 금속 조각으로 금방 굳어 버려요. 드디어 활자가 준비됐네요.

구텐베르크는 이 활자로 낱말과 문장을 짜 맞췄어요. 그러곤 참나무로 만든 인쇄기에 넣었죠. 꾸러미를 풀어 종이도 한 장 한 장 적셨어요. 물을 머금어 부풀어 오른 종이는 점점 부드러워졌어요. 구텐베르크는 가죽공 두 개에 잉크를 묻혀 활자 위에 바르곤 젖은 종이를 인쇄기에 넣었어요. 손잡이를 당기자 나사가 돌아가면서 활자판 위에 놓인 종이를 꽉 눌렀어요. 눈 깜짝할 새에 종이가 반짝이는 단어들로 가득 찼어요.

인쇄를 마친 구텐베르크는 공방으로 인쇄물을 가져갔어요. 한 사람은 인쇄된 종이에 꽃과 새와 대문자를 그려 넣고, 한 사람은 알록달록한 가루를 기름과 벚나무 수액에 개어 그림에 색을 입혀요. 금박으로 나뭇잎을 장식하는 사람도, 종이를 접고 꿰매 잇는 사람도 보이네요. 그다음 종이 가장자리를 다듬고 풀로 묶은 뒤 가죽을 덮은 목판 사이에 끼워 꿰매면 작업이 모두 끝나요. 그건 바로 인쇄된 책. 세상을 영원히 바꾸게 된 책이랍니다.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