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사람 나이 800살까지 사는 '늙지 않는 동물'… 不老의 비밀 밝혀질까요

입력 : 2018.02.08 03:03

벌거숭이두더지쥐

영원히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가능한 이야기 같지만, 현대 과학자들이 얼마 전 '늙지 않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해 화제가 됐답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의 생명공학 회사인 칼리코가 인터넷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 최신호에 "벌거숭이두더지쥐〈사진〉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노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는 동물"이라고 발표한 거예요.

벌거숭이두더지쥐
벌거숭이두더지쥐(Naked mole-rat)는 아프리카에 사는 몸길이 8㎝의 땅속 동물로, 이름처럼 몸에 털이 거의 없어요. 쭈글쭈글한 피부에 생김새가 볼품없지만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인기 최고 동물이랍니다. 수명이 32년으로 같은 몸집의 쥐보다 10배나 오래 사는데, 사람으로 치면 800살 이상 사는 것이라고 해요. 암이나 다른 병에도 잘 걸리지 않고 통증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데다, 산소가 없어도 20여 분을 견딜 수 있는 신기한 재주가 있어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포유류이지만, 그중에서 거의 유일한 변온(變溫·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어서 바깥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것) 동물이에요. 그런데 피부에 땀샘이나 피하지방이 없어 더위와 추위에 모두 약하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가 일정한 땅속에서만 살지요. 덕분에 눈과 귀가 깨알만큼 작고 시력도 좋지 않아요. 대신 입가에 고양이처럼 여러 개 길게 삐친 털이 예민한 더듬이 역할을 해요. 다리가 가늘고 짧은 편이라 싸움하거나 도망치는 데도 별 능력이 없어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뉴트리아(늪너구리)처럼 앞니가 두 개 길게 삐져나와 있고 주둥이가 뭉툭해요. 입술이 이빨 뒤쪽에 있어 앞니로 굴을 팔 때도 흙이 입안에 들어가지 않아요. 반면 온몸에 털이 있고 주둥이가 긴 두더지는 튀어나온 앞니가 없어서 길고 억센 발톱으로 땅굴을 파요. 두더지는 지렁이와 벌레 등을 먹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살아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번식을 맡은 여왕 한 마리를 중심으로 일과 싸움을 도맡는 개체와 새끼까지 수십 마리가 한집에 모여 살아요. 보통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생쥐 정도 크기로 몸무게가 40g이 안 되지만, 여왕은 그 두 배인 80g까지 나가지요. 여왕이 죽으면 다른 암컷 중 한 마리가 체중이 두 배 늘어나며 번식을 도맡는 여왕으로 살아가요. 그래서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사는 땅굴은 개미굴처럼 복잡한 구조랍니다.

곤충 중에선 땅속 나무뿌리에서 굼벵이로 10년이나 사는 매미가 대표적 장수(長壽)족이에요. 벌거숭이두더지쥐나 굼벵이나 땅속에서 웅크리고 느리게 살아가는 방식이 무병장수를 도왔을지도 몰라요. 동물은 대부분 햇살(빛)과 산소를 소비하면서 짧지만 활기찬 삶을 살거든요. 죽기 전까지 거의 병에 걸리지도 않고 컴컴한 곳에서 살아가는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 인류는 어떤 불로(不老)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김종민 박사·전 국립생태원 생태조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