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빈 거리서 연주하던 가난한 소년… '교향곡의 아버지' 되다

입력 : 2018.01.20 03:04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오늘날 교향곡 형식 확립한 하이든
에스테르하지 가문 악단서 활동하며 교향곡 104곡 등 주옥같은 곡 남겼죠
갑자기 큰소리 낸 '놀람교향곡' 유명

클래식 음악 역사에 등장하는 유명 작곡가 중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 있어요. '○○의 아버지' '○○의 어머니' '○○ 왕'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두 어떤 분야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쌓은 작곡가들이랍니다.

오늘 만날 작곡가도 그런 별명이 있어요. 바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Haydn·1732~1809)입니다. 교향곡(symphony)이란 여러 악기가 서로 조화롭게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큰 규모의 음악 작품으로 보통 4개 악장으로 구성되지요.

◇가난했던 천재 하이든

하이든은 살아 있을 때 104곡이나 되는 교향곡을 남겼어요. 그는 이전까지 명확하게 확립하지 못했던 교향곡 형식과 악장 개수, 각 악장의 성격과 구성 등에 대한 기준을 세웠지요. 예를 들어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빠르고, 2악장은 가곡 형식으로 느리며, 3악장은 춤곡 형식이고, 4악장은 매우 빠른 론도·소나타 형식이라는 식이지요.

현악 4중주곡을 지휘하는 하이든(가운데 지휘봉을 든 인물)을 그린 19세기 그림이에요.
현악 4중주곡을 지휘하는 하이든(가운데 지휘봉을 든 인물)을 그린 19세기 그림이에요. /게티이미지코리아

77세로 세상을 떠난 하이든은 당시로서는 꽤 오래 살면서 그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답니다. 교향곡뿐 아니라 현악 4중주곡(바이올린 2개 , 비올라 1개, 첼로 1개가 연주하는 음악)을 포함한 실내악(5~10명이 실내서 연주하는 음악), 오라토리오(대규모 종교 음악), 오페라(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종합 무대 예술) 등도 많이 남겼고 선생님으로서 베토벤을 직접 가르치는 등 많은 활동을 했어요. 하이든이 이런 유명 음악가가 되기까지는 예술가로서 그의 재능을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답니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의 로라우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마차를 수리하는 아버지와 요리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어요. 형제가 많고 늘 어려웠던 집안 형편 때문에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옆 마을에 살던 성가대 지휘자 요한 마티아스 프랑크가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음악을 가르쳤답니다. 하이든은 여덟 살 되던 해 수도 빈의 성(聖)스테파노대성당 소년 합창단에 들어가 단원으로 생활했어요. 변성기(사춘기로 성대에 변화가 일어나 목소리가 변하는 시기)까지 빈에 머물렀던 하이든은 합창단에서 나오면서 다시 가난에 시달렸는데, 다행히 당시 최고 인기 작곡가였던 이탈리아의 니콜라 포르포라를 만나 비로소 체계적인 음악 이론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후 하이든은 스테파노대성당 등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가수로 활동하고 밤에는 빈 거리에서 세레나데(저녁 음악이란 뜻으로 낭만적인 사랑 노래) 악단에 참여해 돈을 버는 일도 했어요. 그러던 중 하이든은 1761년 '평생직장'에 들어갑니다. 바로 헝가리 귀족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 악단에 일자리를 구한 것이죠.

하이든, 에스테르하지 후작
하이든, 에스테르하지 후작
처음 그를 고용한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음악을 무척 사랑했던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전용 악단을 갖고 있었죠. 부(副)악장으로 경력을 시작한 하이든은 1766년 악장으로 '승진'해 작곡과 연주 활동을 함께했어요. 오케스트라를 이끌기 시작한 하이든은 단원들을 통해 여러 가지 음악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면서 뛰어난 교향곡과 실내악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었죠.

◇마음 따뜻했던 '파파' 작곡가

하이든은 성실하기도 했지만 늘 낙천적이고 명랑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파파(아빠)'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해요. 그의 교향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인 작품 별명도 재미있어요. '놀람'이라는 별명의 94번 교향곡은 보통 느린 속도로 연주하는 2악장쯤에서 귀족 부인들이 자주 졸자 그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갑자기 아주 큰 소리를 중간에 넣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에요. 96번 교향곡 제목은 '기적'인데요. 이 곡을 연주하던 당시 공연장의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떨어졌는데 기적처럼 아무도 다치지 않았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해요.

하이든은 자신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도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어요. 45번 교향곡 제목은 '고별'인데요. 이 곡은 여름휴가 기간에도 연주를 하느라 오랫동안 자기 가족을 만나지 못했던 단원들에 대한 배려심이 깃들어 있어요. 교향곡의 4악장이 아주 빠르고 신나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차분한 멜로디로 이어지는데, 오보에와 호른을 시작으로 단원들이 자기가 맡은 파트를 연주한 후 하나둘씩 무대에서 퇴장하는 구성이에요. 단원들은 점점 줄어들다 마침내 두 사람만이 남아 교향곡을 마무리한답니다. 이 곡을 끝까지 들은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하이든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고 해요.

59세까지 건강하게 활동하던 하이든은 1791년부터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어요.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한 거예요. 1790년 자신을 오랫동안 고용했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세상을 떠나자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하이든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한 잘로몬의 권유로 영국 런던에 머물렀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뜨거운 환대를 받고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답니다.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 12곡이 이 시기 영국에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이 작품들을 흔히 '런던 교향곡'이라고 부른답니다. 100번 교향곡 '군대', 101번 교향곡 '시계'처럼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는 명곡이지요.

영국 음악 애호가들이 하이든에게 '계속 영국에 머물러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지만, 그는 오스트리아로 돌아왔고 말년까지 에스테르하지 가문과 교류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요. 그가 영국 생활을 접고 돌아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끝까지 믿고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대한 감사가 제일 컸을 거예요. 가난하지만 성실했던 젊은 음악가에게 큰 기회를 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았던 하이든의 일생은 그가 남긴 교향곡 선율만큼이나 아름다워요.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