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핫 피플]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 사망 50주기 맞아 추모 열기 뜨겁죠

입력 : 2018.01.19 03:09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위키피디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략)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사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광장. 25만여 명 군중 앞에 선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Luther King Jr·1929~1968·사진) 목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비폭력 저항을 강조한 이날 연설은 흑인 인권 운동의 전설로 남았어요.

올해는 킹 목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을 맞은 해예요. 미국은 킹 목사의 업적을 기려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법정 공휴일('마틴 루서 킹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갖고 있지요. 그런데 올해는 킹 목사를 추모하는 목소리가 예년보다 높았다고 해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아프리카 국가를 향해 '거지 소굴(shithole)'이라고 말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미국 사회가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지요.

킹 목사는 1929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지요. 원래 킹 목사의 이름은 아버지와 똑같은 '마이클 킹'이었지만,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독일의 종교 개혁가 마르틴(마틴) 루터 이름을 본떠 개명(改名)하면서 '마틴 루서 킹'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당시 미국은 흑인 노예 해방 선언(1862년)을 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백인과 흑인 간 차별이 만연한 사회였어요. 버스는 백인·흑인 전용 좌석이 분리돼 있었고, 흑인 출입을 금지하는 상점·음식점도 많았지요.

킹 목사는 1954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한 교회에서 담임 목사를 맡았어요. 그런데 이듬해 12월, 몽고메리시에서 미국 전역을 뒤흔든 인종차별 사건이 벌어지면서 킹 목사의 인생이 큰 전환점을 맞아요.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퇴근길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연행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에 킹 목사는 흑인들을 독려해 '버스 타지 않기 운동'을 펼쳤어요. 수많은 흑인이 동참하면서 반(反)인종차별 운동으로 확산했지요. 1956년 12월 미국 연방법원이 인종에 따른 버스 좌석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킹 목사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답니다. 이후 베트남전쟁 반대, 노동자 인권 보호 등 전방위적 인권 운동을 펼쳤고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신변을 둘러싼 위협은 끊이지 않았어요. 킹 목사는 1968년 흑인 청소 근로자의 파업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테네시주에 왔다가 한 백인 우월주의자가 쏜 권총에 맞고 숨을 거뒀어요.

킹 목사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을까요?


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