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100년 전 이 땅에 당당하고 세련된 '新여성' 등장했어요
입력 : 2018.01.13 03:08
| 수정 : 2018.01.13 10:05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展]
차림새·행동 다른 새로운 여성상… 근대 이행하던 우리나라에도 확산
男女·新舊 사이 내면 갈등도 보여요
잡지 표지·사진 등 500여 점 전시
조선시대 여자들은 길게 땋은 머리에 댕기를 묶고 다니다가, 결혼을 하면 그것을 말아 비녀를 꽂았어요. 그렇다면 긴 생머리, 단발머리, 짧은 파마머리 등 우리나라 현대 여성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머리 스타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일까요? 바깥 외출도 못 다니고 사람도 못 만나고 나이가 차면 부모가 정해주는 집안의 남자와 무조건 결혼해야 했던 여자들이 요즘처럼 자기가 원하는 배우자를 선택해 연애하고 결혼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요?
바로 100년 전쯤이랍니다. 이 시기를 근대(近代)라고 하는데요. 근대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전(前)근대의 상징인 신분 제도가 무너지면서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거예요. 전근대 시절에는 남성들에게 글을 가르쳐 책을 읽게 했지만, 딸의 교육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80년대 최초의 여성 교육이 시작되었고 1920년대 중반부터는 여자도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요. 여자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힐 수 있었지요. 이런 근대의 여성들을 차림새부터 행동까지 완전히 새롭다는 뜻에서 '신(新)여성'이라고 불러요.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4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에서는 바로 100년 전 신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잡지 표지와 그림, 사진 등 500여 점을 통해 구경할 수 있답니다.
바로 100년 전쯤이랍니다. 이 시기를 근대(近代)라고 하는데요. 근대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전(前)근대의 상징인 신분 제도가 무너지면서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거예요. 전근대 시절에는 남성들에게 글을 가르쳐 책을 읽게 했지만, 딸의 교육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80년대 최초의 여성 교육이 시작되었고 1920년대 중반부터는 여자도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요. 여자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힐 수 있었지요. 이런 근대의 여성들을 차림새부터 행동까지 완전히 새롭다는 뜻에서 '신(新)여성'이라고 불러요.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4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에서는 바로 100년 전 신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잡지 표지와 그림, 사진 등 500여 점을 통해 구경할 수 있답니다.
이 시기에 나온 여성 잡지들은 여성 독자들에게 틈틈이 책을 읽어 교양을 쌓도록 권고했습니다. 부지런히 악기를 배우고, 바깥에 나가 걸으며 하루하루 건강해지라고 북돋웠지요. 집 안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기력하게 남자에게 기대어 사는 것은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고 일깨워 주었어요. 이런 생각을 확산하는 데는 여성 잡지가 큰 역할을 했답니다.
작품2는 주로 남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별건곤'이라는 잡지 표지예요. '별건곤'은 별세계 또는 별천지라는 의미로, 이제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뜻하지요. 표지 속 여성은 하이힐(높은 굽 신발)을 신고 한 손에는 책을, 다른 손에는 양산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갑니다. 그 뒤를 따라가는 남성의 양손에는 짐이 들려 있네요. 아마도 여자가 쇼핑한 물건을 들고 가는 것 같은데,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떨어지는군요. 이것은 신여성을 비난하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신여성으로 인해 이렇게 세상의 모습이 확 달라졌다고 발랄하게 풍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짧은 머리에 서양식 옷차림으로 차려입은 경쾌한 신여성의 모습은 회화 주제로도 자주 쓰였답니다. 작품3은 화가 손응성(1916~1979)이 그렸는데, 곧 외출을 하려는지 곱게 화장을 하고 꽃으로 장식한 자그마한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여자가 보입니다. 곱슬곱슬한 짧은 앞머리는 할리우드 배우 오드리 헵번을 생각나게 하네요. 가느다랗게 그린 눈썹과 빨간 립스틱을 칠한 입술, 화사하게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당시 서양 여성들의 최신 유행을 따라 한 것이지요.
작품4는 화가 이유태(1916~1999)의 그림인데, 흰 가운을 입고 과학 실험 기구들 곁에 앉은 능력 있는 전문직 여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책을 읽고 탐구를 하며 확신에 차 있는 이 여성은 지적인 자신감을 가진 신여성이에요. 그런데 실험복 속에 살짝 드러난 옥색 한복으로 전통적인 차분한 느낌을 주고 있지요.
이렇듯 신여성의 이미지에는 서양과 동양의 전통과 현재가 묘하게 결합돼 있답니다. 서양의 경우 근대화는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지켜주는 강력한 국가의 힘을 바탕으로 했지만, 우리나라 근대화는 그렇지 못했어요. 1920~1940년대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고, 그 상태에서 서양의 낯선 문물을 한꺼번에 받아들여야 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신여성도 옛것과 새로운 것,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개인과 국가 사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모순들을 한데 경험해야 했을 거예요. 세련되고 아름다운 신여성의 이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내면 속 갈등이 어렴풋이 숨어 있는 듯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