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최고 화가만이 '절대 권력' 그려… 명예와 특권 누렸어요
입력 : 2018.01.06 03:06
[궁정 화가]
펠리페 4세가 사랑한 벨라스케스… 왕족·귀족만 가입한 기사단 들어가
루벤스는 외교관으로도 활약했어요
"예술을 정치 도구화" 비판도 있죠
매년 세계 미술계는 국제적 명성을 얻은 예술가들 명단을 발표해요.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유명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는가, 국제적인 미술 행사에 자주 초대됐는가, 권위 있는 미술상을 받았는가 등을 바탕으로 종합 평가해 순위를 정하지요.
19세기 이전에는 누가 유명 예술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의외로 쉽게 알 수 있었답니다. 궁정에서 보수(일의 대가)를 받고 일하던 궁정 화가들이 국제적 명성을 떨친 유명 예술가였거든요. 최고의 그림 실력을 갖춘 화가만이 절대 권력자인 왕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자격을 가졌어요.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가 돈과 명예, 특권도 누렸다는 것을 작품1에서 보여줍니다.
19세기 이전에는 누가 유명 예술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의외로 쉽게 알 수 있었답니다. 궁정에서 보수(일의 대가)를 받고 일하던 궁정 화가들이 국제적 명성을 떨친 유명 예술가였거든요. 최고의 그림 실력을 갖춘 화가만이 절대 권력자인 왕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자격을 가졌어요.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가 돈과 명예, 특권도 누렸다는 것을 작품1에서 보여줍니다.
펠리페 4세는 그림 실력이 뛰어난 벨라스케스를 무척 아꼈고 특별한 혜택을 많이 주었어요. 먼저 왕족과 귀족만 가입할 수 있었던 산티아고 기사단에 들어가게 해주었지요.
벨라스케스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 가슴 부분에 새겨진 붉은 십자 문양이 그가 명예로운 산티아고 기사 단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왕은 벨라스케스를 궁정 화가보다 훨씬 높은 자리인 궁정 최고 시종장에 오르게 했어요. 왕이 소장한 미술품들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임무도 맡겼지요.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라는 자기 신분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어요. 벨라스케스의 눈빛과 자세를 보세요. 출세와 성공을 스스로 이뤄냈다고 관객에게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17세기 플랑드르(현 벨기에 일대 지역)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궁정 화가 경력을 활용해 외교관에 임명되는 특이한 사례를 남겼어요. 1603년 루벤스는 이탈리아 만토바 공국을 다스리는 빈센초 곤차가 공작의 궁정 화가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신입 외교관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했답니다. 1630년엔 영국과 스페인 간 평화 협상을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냈고,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영국 왕 찰스 1세와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에게 기사 칭호를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어요.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화가이며 외교관이었던 루벤스의 명성은 유럽 왕실에 널리 퍼졌지요.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도 루벤스의 명성을 듣고 1621년 그를 파리로 초청해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했어요. 유럽에서 인기가 높은 루벤스의 그림을 꼭 갖고 싶었던 거죠. 루벤스는 왕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천재성을 발휘해 작품2에서 왕비를 백마 탄 여전사로 변신시켜 찬사를 받았답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궁정 화가 지위를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활용했어요. 작품3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가 오스트리아군을 무찌르기 위해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미술을 정치 선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한 권력자 중 한 사람이었어요. 황제는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권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 화가인 다비드를 궁정 화가로 임명하고 홍보·선전하는 임무를 맡겼어요.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뜻을 받들어 황제를 남성적인 영웅으로 연출하는 그림들을 그렸지요.
이 그림도 인간 나폴레옹을 '전쟁의 신'으로 연출한 선전 그림 중 한 점입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며, 불멸의 영웅으로 만드는 데 궁정 화가의 지위를 이용했어요. 그런 이유에서 뛰어난 화가라는 긍정적 평가와 예술을 선전 도구로 이용한 화가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답니다.
궁정 화가는 동서양 문화를 융합하는 다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는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군대 열병식에 참석한 모습을 작품4에 담았어요.
왜 서양인 화가가 청나라 황제 초상화를 그렸을까요? 카스틸리오네는 화가이자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였어요. 1715년 선교사로 청나라에 건너온 후 궁정 화가로 임명돼 무려 50여 년간 청나라 황실을 위해 그림을 그렸어요. 낭세녕(郞世寧)이라는 중국 이름도 얻었어요. 건륭제는 서양화와 중국화를 창의적으로 융합한 카스틸리오네 화풍에 깊은 관심을 보였어요. 그 덕분에 카스틸리오네는 황제 초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요.
그림 속 황제와 말, 풍경을 관찰해보세요. 서양화의 특징인 빛과 그림자 효과, 입체감이 뚜렷한 사실적인 표현 기법이 두드러진답니다. 카스틸리오네는 청나라 궁정 화가로 활동하면서 중국화 기법과 서양화 기법을 융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답니다.